[기독단상] 철학은 발전되어 왔다? ??

2007. 9. 5. 14:36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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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약을 마시는 소크라테스



기독교에 대한 단상 03 : 철학은 발전되어 왔다? ??

*. 철학은 발전되어 왔다? ?? 정말 그럴까? ??

I. 대체, ...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제목을 보며 궁금해 했을지도 모르겠다. 궁금해 했다면 우선 결론부터 말해보자.

그럴수도 있지만 아닐수도 있다.

이 무슨 해괴망칙한 소리인가?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그러면 그렇고 아니면 아닌 거지 왜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도 아니고, 아니다도 아니면서 거기에 보태서 그럴수도 혹은 아닐수도 라는 말은 참 이해하기 힘든 말이다. 하지만 철학의 발전에 대해서 말할때 정말 쉽게 말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런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다.

우선 대학에서 철학 개론이라도 배운 사람들은 서양철학의 발전과정(이렇게 말하긴 정말 싫지만...)을 대충 머릿속으로 그려볼수 있을게다. 보통은 플라톤에서 시작한다. 그 전 단계에도 조금 강의할 꺼리들이 있기는 하지만 중요한 맥을 짚는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플라톤은 그 시발점에 해당한다.

거기서 출발한 서양철학은 다양한 사람들을 거치면서 결국은 마르크스까지 이어지거나 혹은 해체주의, 즉 포스트모던으로 빠진다. 간혹 동양철학에 심취한 분들은 서양철학의 대안으로 동양철학을 이어서 강의하기도 한다. 그래서 교양철학을 수강한 많은 사람들은 철학의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발전과정으로 인식한다. 또 그렇게 가르치기도 한다. 물론 이런 관점이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다만, 여기서 필자는 반드시 그렇지많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서양철학사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선'을 바탕으로 한다. 즉, 플라톤의 사상을 이미 습득한 이들이 그의 어깨위에 올라서서 조금 더 멀리 바라볼수 있다는 것이다. 바른 말이다. 무엇을 배운다, 혹은 습득한다는 것을 단지 그것을 지식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넘어서 그것을 활용해서 비록 내가 그(스승)보다는 지적으로 조금 뒤떨어진다 할지라도 그의 어깨에 올라서는 노력에 나의 자발적 노력을 더해 더 멀리 볼수 있다는 점은 무척 훌륭한 것이다. 이로 인해 많은 철학자들이 나왔고, 그들의 노력의 결과물들이 효용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거인의 어깨에 올라선'이들에게 박수를 보낼 따름이다. 진정으로 그들의 최선을 다했다.

다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다보니 정작 플라톤의 위치에 대해 많은 이들은 그저 그리스철학의 시작점정도의 의미밖에는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책을 조금 읽었다는 이들은 이후의 철학자들의 사상에 심취하면서 정작 그 기초로서의 거인이었던 플라톤을 무시하는 경향이 짙다. 여기서 조심스럽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플라톤을 무시하는 이들이 지식층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철학에 대해 깊은 공부를 한 이들은 그 근저를 이루는 플라톤에 대해 더 깊이 사유하고 있다. 오히려 플라톤을 무시하는 경향은 철학입문정도의 대학 초등 과정에서의 교양과목을 들은 이들에게서 주로 발견된다. 영국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플라톤에 대해 "서양 2000년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현재 많은 철학자들에 의해 철학은 지속적으로 발전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플라톤을 뛰어넘는 것인가에는 어쩌면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화이트헤드는 이에 대해 오히려 '플라톤을 각주하고 있는 것'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하고 있다. 이것도 발전이라면 발전이다. 하지만 그의 말을 받아들이면 플라톤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크고 뛰어넘기 힘든 존재인지를 말해주고 있기도 하며, 동시에 인문주의의 발전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반증하기도 하는 것이다.

왜 이런 말을 하는것일까? 기독교 단상이라면서 왜 철학자의 플라톤을 끄집어내는 것일까?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연관성은 다음과 같다.

II. 그러니까, ...

1. 진리를 논함에 있어 최근의 철학이라고 무턱대고 받아들이는 것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플라톤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새로운 철학사조를 만들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철학적 사유는 그 자체로는 인정받을 수 있다. 우선 새로운 것으로 과거의 것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거의 것보다 항상 좋다고 말할수는 없다. 더욱이 항상 옳다고 말할수는 더욱 없다. 거인의 어깨에 오르려 노력했지만 정작 그 어깨에 올랐다기보다는 동일한 논리의 한계를 당면하며 그것에 대한 다른 대안을 제시했지만 여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또 다른 대안을 내놓았을 뿐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철학이 17세기의 철학보다 우월한가?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적어도 단지 시간적으로 뒤에 나온 것이기 때문에 모든 21세기 철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보다 뛰어나다고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종종 오류를 범하는 이들의 논리가 "...이미 증명된 바..."라는 식으로 과거의 것은 그 이후의 철학체계에 의해 부정되었다고 전제를 한다. 이전의 사유체가가 어떻게 극복되었는지는 제대로 언급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정말 그런지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2. 플라톤의 방법론을 사용 하는 것을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치부하지 말라는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전에 나온 방법론을 쓰는 것은 부끄러운 것(혹은 잘못된 것, 악한 것)이고, 새로 나온 방법론을 사용하는 것만이 좋은 것 혹은 선한 것이라는 발상은 그 자체로 이미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1+1은 2 라는 것은 공리로 주어진 것이다. 이것을 사용하는 것이 너무 오래전에 나온 진리이기 때문에 부끄러워서 사용하기를 포기한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발전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플라톤에 어깨에 섰다는 이가 있더라도 정작 그는 100m 짜리 거인의 어깨에 올라선 50cm 도 안되는 난장이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플라톤이 보지 못한, 혹은 그의 사유체계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운다고 시도했지만 정작 그 부족분을 채우기보다는 삽질을 하는 오류를 범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3.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분류는 항상 바른것은 아니다.

사실 이 부분은 조금 조심스럽기는 하다. 현대 서양철학의 흐름은 동양철학의 기반을 가져와 사용하고 있다. 서양철학은 한계에 부딛혔고,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동양철학의 사유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미 많은 철학자들에 의해 서양 철학은 그 연구분야가 극소로 줄어들었고, 그로 말미암아 새로운 논문을 위해서는 또 다른 어떤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왜 이런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우선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회와 사상에 있어 완벽한 균형을 이루며 이상국가의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는 점이고, 이는 비록 사유체계가 다를 지라도 인간사의 문제는 비슷하게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전쟁과 풀기 힘든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때문에 동양에서는 서양철학을 받아들여 이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움직임들이 있었고, 이런 움직임은 한국에서도 나타나면서 서양 선교사들과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식자층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또한 서구 철학의 한계를 느껴 서양 철학자들도 동양의 신비주의나 철학을 배우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움직임은 환영할 만한 것이지만 이것을 잘못 이해해서 "동양철학은 서양철학보다 우월"하다는 식의 판단을 하게 되면 안된다는 것이다. 자문화우월주의는 위험한 것이다. 특히 이것이 배타주의나 민족주의등과 결합하게 되면 폭력성까지 띄게 된다. 이는 절대로 주의 해야 할 것이다. 서양철학을 하는 이들이 동양종교나 동양철학에 주의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자의적으로 무조건 좋게만 해석하기보다는 그들의 노력을 본받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필자가 기독단상을 말하며 이런 부분을 언급하는 것 역시, 작게나마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한 노력을 하자는 것이다.


III. 그래서, ...

가능하면 필자의 블로그에서는 필요한 이야기를 가능한 쉬운 단어와 문장으로 쓰기 원한다. 우선 필자가 어려운 단어나 문장력이 딸린다는 부족이 첫번째 이유이며 두번째 이유는 그렇게해야만 제대로 된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장을 어렵게 쓰고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는 여러 이유중의 하나는 그렇게함으로서 공격을 미연에 차단하여 글의 바른 이해를 돕기보다는 방어에 주력하기 위해서이다. 이 블로그는 개인의 공간이고, 누군가의 공격에 기꺼이 방어는 하겠지만, 귀찮으면 삭제해 버리면 그만이다(물론 고의적인 방해를 위한 악플의 경우를 제외하면 기꺼이 열린 마음을 보여줄 것이다. ^^;).

그래서 쉬운 단어와 문장을 쓰려고 노력할 것이다. 다만, 필자의 글 쓰는 특성상 쓰다보면 또 길어지면서 복잡해지고, 심지어 필자마저도 잘 안쓰는 단어들을 쓰게 될 가능성도 높다. 이런 부족은 글 읽는 이들이 알아서 처리해주기를 바랄 뿐이다(왜냐하면 개인 블로그니까... ^^;).






기독교에 대한 단상 01 : 마음을 추스리며...
기독교에 대한 단상 02 : 당신은 Christian 입니까?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