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에 대한 반감은 주류의 것인가?

2007. 8. 20. 15:50Life

개신교에 대한 반감은 주류의 것인가?

한국의 개신교인의 숫자는 1995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4800만명 중 876만명이다. 이 숫자는 불교 1천 32만명보다 적은 숫자이고, 천주교 2백 95만명보다는 3배가 조금 안되는 숫자이다. 이 비율은 최근까지 별 변화가 없다. [수정 : 천주교 인구는 2005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490만에서 515만 사이에 해당된다. 통계를 내는 기관에 따른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인구로 볼때 한국 개신교는 한국의 대표적 종교 3개 중 두번째에 해당된다. 가장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한 규모의 종교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재미있는 또 다른 통계가 나와있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의 예배나 의식에 참여한다는 통계는 41.7% 가 나왔고, 한달에 한번 혹은 두세번 참여한다는 사람은 15.4%가 된다. 즉, 한달에 한번정도 교회나 기타 의식에 참여한다는 사람은 총 56.1%가 된다. 491만명 정도가 한달에 한번이상 모임에 참석하는 인원이다. 물론 이 통계자료는 스스로를 낫게 여기고자 하는 의식적 답안을 감안할 때 더 낮은 숫자가 부풀린 것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자료들이다.


불교에 비해 개신교의 특성상 한달에 한번정도의 모임 참여를 가지고 스스로를 기독교인으로 여기는 것은 일반적인것은 아니다. 대부분 알고 있듯이 주일 예배의 참석은 기독교인으로서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고, 한달에 한번 교회에 출석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다.


어쨌건 4천8백만의 인구 중 약 10%에 해당되는 490만명 정도가 한달에 한번 이상 교회에 출석을 하고 있다. 이런 통계를 들어 한국 기독교인의 숫자는 4백만 혹은 그 이하에 해당된다고 판단된다. 이유는 단순하다. 명목적 교회 출석은 하지만 정작 스스로를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있지만(그런 사람 많이 봤다), 그 반대의 경우는 극히 희박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미 한국의 개신교는 일부의 사람들이 느끼는 만큼 주류의 것이 아니라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물론 490만명의 인원을 적은 인원이라고 말할 수 없다. 충분히 큰 숫자이지만 그렇다고 10%의 비중 이상의 것을 전가할만큼 주류로 여길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주류는 종교가 없다고 답하는 2천159만명의 사람들이다. 그리고 종교 중 가장 큰 종교는 1천32만명의 불교이기도 하다. 불교의 종교적 특성상 개신교회처럼 정기적인 모임이 자주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이 불교 인원중 상당수가 역시 명목상 불교인구이기도 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큰 주류는 역시 스스로 아무런 종교가 없다고 자부하는 무교, 혹은 무신론자들일 것이다. 그것 역시 그들의 선택이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개신교에 대한 반감은 주류에 대한 비주류의 투쟁일까? 오히려 비주류가 주류의 대의에 거역하는 것에 대한 감정적 대응으로 보여진다. 이에 대한 파시즘이라는 말은 전혀 사용하고 싶지 않다. 파시즘은 차라리 의지와 신념을 가진 사람의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집단적 폭력성의 행사를 파시즘이라는 말로 거창하게 투영하는 것은 시대를 읽는 눈의 부족을 자인할 뿐이다.


최근 이랜드 사태를 통해 기독교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심해졌다. 거기에 아프간 피랍사태를 통해 개신교에 대한 반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혹자는 이것을 보며 과거 김선일사태때도 그러지 않았던 한국인들이 개신교에 대해 분노하기 시작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 사람에게 한가지 묻고 싶다. 김선일사태때와 지금을 비교할 때 교회에 큰 변화가 있었는가?


필자 역시 한국 교회를 보며 고쳐야 할 것이 많음을 인지한다. 그리고 그것을 계속해서 고쳐나가야 할 책임이 있음을 통감한다. 하지만 그 잘못이 무엇인지, 어떻게 고쳐야 할지 알지 못하는 이들이 단지 일어난 결과만을 가지고 감놔라 배놔라는 식으로 조언하는 것에 대해 식상함 이상의 분노를 느낀다. 스스로 책임질 일이 없기에 아무렇게나 한마디 던지고 그에 대한 결과는 보려고조차 않는 이들의 무책임성에 대해서 불편함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다.


한국교회는 지나칠 정도로 미국에 대해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부시가 극우파 기독교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교회와 모든 개신교인들의 통일된 사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오히려 미국의 패권주의 정책이 기독교의 정신과 위배된다는 것을 역설하며 스스로를 비주류로 자리매김하는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집단광기로 흘러버린 한국 네티즌들의 악성댓글들에 대한 주관적 이유를 언급해보고 싶다.


약 3년 전의 김선일씨때와 지금의 경우에 다른 점은 무엇인가? 우선 김선일 피랍의 배경은 그가 미국부대 납품을 하는 기업체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때 자마트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에서 요구했던 것은 이라크 추가 파병 중단 및 한국국 철수였다. 물론 정부는 이를 거절 했고 2004년 6월 22일 참살되었다.


김선일씨에 대해 비난을 하거나 그가 중동선교사가 되기 원했다는 것에 대해서 특별한 반감이 표출되지는 않았었다. 오히려 안타까움을 표출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왜 이런 상황이 연출된 것일까? 아프간으로 간 이들은 단순한 관광지를 찾아 떠난 것은 아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여행금지국은 아니었고, 위험성이 있다는 제한 구역으로 되어 있는 곳이었다.


이런 점이 이상한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삼년간 교회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지하철에서 소리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훨씬 줄었다. 이전에는 오히려 그런 사람은 쉽게 볼수 있었지만 최근 5년동안 지하철에서 전도하노라며 소리치는 사람을 만나는 경험은 이전에 비해 절반 그 이하로 줄었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은 한번 차분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최근 5년 동안 당신을 붙잡고 억지로 종교를 주입시키려던 사람이 더 많아 졌는지 아니면 더 줄었는지 말이다. 어떤 이들은 더 많아 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경우 그런 식의 전도가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기에 그러한 방식으로 거부감을 주는 전도는 확실히 많이 줄었을 것이다.


교회는 크게 바뀐것은 없다. 최소한 백년 이상의 정착기를 가지고 있는 한국 교회에 있어 최근 3년은 큰 변화가 없는 시점이었다. 게다가 IMF 이후 한국 교회의 선교는 상당한 침체기를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때에 비해서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이미 들어간 재정과 예산집행, 특히 교회 건축을 위해 해외 선교 재정이 대폭 삭감되어 있는 것은 아직도 여전하다. 이 시점에서 한국 교회의 몸집 부풀리기식의 선교정책을 말하는 사람은 전체가 아닌 일부를 보고 그것이 전부라고 믿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교회의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의 코끼리 다리 만지기로 보인다.


큰 변화가 없는 교회, 그것은 여전히 과거에 했던 실수의 일부는 계속 전달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이 시점에서 폭발적인 반감과 분노를 유발했으리라고 단언하는 것은 충분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오히려 이 시점에서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인간이 얼마나 폭력적이 될수 있는지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이 오히려 이성적일 것이다. 동시에 피랍사태 이후 최초에 나왔던 많은 잘못된 뉴스와 기사들로 인해 피랍 사태의 책임을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돌리는 언론과 이를 뒤에서 방조했던 정부에게 더 큰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말을 하면 당장 튀어 나오는 것이 [그러면 탈레반 포로를 풀어주라는 거냐], [엄청난 돈을 지불하라는 거냐] 식으로 단순논리로 접근한다. 이렇게 단순하게 접근하면 안된다. 이미 한번 한국 정부는 탈레반과의 좋은 협상의 기회를 놓쳤다. 처음 탈레반에서 요구했던 것은 한국 군대의 철수였다. 이것은 한국 군대의 철수가 연장될 것을 반대하는 것으로 볼수 있었다. 처음 협상에서 정부는 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드를 다 보여주었다. 한국 군대는 올해 말 철수할 것이고, 연장 계획은 절대 없다는 식의 반응이었다. 손에 든 중요한 카드를 보여주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땅에 버리는 실수를 했다. 한국 정부의 외교력과 협상력에 대해 한숨을 쉬게 하는 반응이었다. 그때 만약 한국 정부가 외교적 협상안으로 한국군 철수를 계속 유지시킬 수 있었다면 현행 사태는 조금 더 풀기 쉬운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수도 있다.


오히려 언론과 정부는 모든 책임을 한국 개신교의 공격적 팽창주의 정책으로 몰아가려고 한 탓에 정작 그들이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은 하지 못한채 작금의 사태를 맞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여전히 많은 이들은 무엇이 논리적이고 무엇이 설득력이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이러 저리 끌려다니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그러면서 스스로는 자신의 선택과 이성적 판단에 따른 좋은 결론이라고 믿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것은 한국 네티즌이라고 불리는 이들 중 일부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가지는 파괴성은 마지 전체 대중의 결론을 말하듯 한다는 점에서 더 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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