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대 성추행 학생의 퇴학과 출교 사이에서 ...

2011. 8. 18. 19:24Eye


Chapter 0. 용서가 전부는 아니다


종종 어떤 잘못을 한 사람에 대해서 용서하는 것만이 전부라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을 본다. 그 중 상당수는 용서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정말로 믿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인상을 쓰거나 당신들이 잘못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옳고 그름, 성경의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제대로 알아야만 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했다고 하더라도 천원의 거스름돈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백원의 거스름돈을 주는 가게 주인은 비록 그 의도가 속이려는 의도가 아니라 불쌍한 사람을 도우려고 했다고 하더라도 분명히 잘못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Chapter 1. 기독교의 개인 윤리 - 용서

성경에 용서라는 단어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작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진 오해다. 용서는 죄를 지은 자의 회개가 선행되고, 그 잘못으로 인해 피해를 받은 측에서 베푸는 것이다. 그러기에 기독교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용서한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잘못이 없다고 믿고, 혹은 자신은 죄가 없다, 회개할 것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은 굳이 하나님의 존재를 알든 모르든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굳이 그들에게 용서가 주어지지도 않는다. 용서를 구하지 않았는데 용서를 받을 수는 없다. 이 용서는 구체적으로 인간 한 개인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인한다. 즉, 기독교의 용서는 하나님께 죄를 지은 인간이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는 것과 그 죄를 하나님 편에서 용서하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 용서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러기에 성경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한 것과 같이"라는 주기도문을 보여준다.

하나님께 용서를 받은 사람은 자신에게 잘못을 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 물론 이때도 상대의 회개가 선행되어야 한다. 성경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무조건적으로 용서하라고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누군가의 용서를 필요할 때 가서 용서를 구할 것을 말한다.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누가복음17:3)


용서 이전에 죄에 대한 회개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회개없는 용서는 용서가 아니다. 심지어 죄를 범한 상대에 대해서 경고할 것을 성경은 말한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태복음5:23-24)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만 나도 하던 제사를 멈추고 먼저 용서를 구하라고 말한다. 기독교의 용서는 적극적인 회개가 반드시 선행되어야만 하는 것이지, 강자의 힘에 무릎꿇는 약자의 애걸하는 용서가 아니다. 종종 이런 우습지도 않은 일을 본다. 잘못한 사람이 되려 큰소리치며 교회다니면 내가 잘못했어도 니가 먼저 용서해야지 하는 무식하다못해 골때리는 용서강요자 말이다. 주먹을 들이대며 용서를 강요하는데 그게 용서받는 사람의 모습일까? 개의 모습일까?

그리고 용서의 심리학적 유용성에 대해서는 굳이 이 자리를 빌어 부연설명하고 싶지 않다. 용서가 어떤 유용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때문에 기독교인이 자신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나는 하나님께 더 큰 죄인이며 그런 내가 회개할 때 하나님이 들으셨고 용서하셨기에 기독교인은 회개하는 이를 용서하는 것이다.

고대 의대 성추행사건의 피해자가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알고 있다. 가족들도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오늘 언니의 편지를 읽었다. 몇달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한밤중에 깨서 소리죽여 우는 동생을 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나는 짐작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아픔을 겪는 이에게 용서하면 얼마나 마음이 편해지는지를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일인지 알기에 나는 감히 용서하라고 말을 꺼내지 못한다.

다만 그분이 기독교인이라면,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믿는 사람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내 경험과 지식을 사용해서가 아니라 성경을 인용해서 용서할 것을 권하고 싶다. 다만 그 경우라도 가해자의 진실된 회개가 선행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용서받지 않겠다는 사람을 용서하는 건 하나님도 못하는 일이다.


Chapter 2. 기독교의 사회 윤리 - 공의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과연 모든 것을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전부일까? 그렇지않다.

성경은 우리에게 공의에 대해서 말한다. 눈에는 눈이요, 이에는 이라는 동해복수법은 고대의 살기 어린 개인 복수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라는 시스템이 개인의 복수를 대신해서 누가 봐도 억울하지 않도록 처리할것을 말하는 것이다.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 (신명기19:21)


개인이 더 큰 보복을 행하지 않도록 성경은 사회라는 시스템이 죄에 대한 댓가를 묻고 그것을 집행하도록 명령한다. 동시에 힘이 없는 약자가 강자에게 눌려 억울함을 당하지 않도록 더 큰 힘인 율법을 통해 강자라도 약자에게 함부로 할 수 없도록 강제하고 있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일종의 칭찬이다. 착하고 선해서 굳이 누군가가 억지로 강제하지 않아도 주변에 피해를 끼치지 않고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며 도움을 주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기에 법이 존재한다. 법은 법 없이 살수 있는 사람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 법이 그런 사람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강자에게 더 큰 힘을 건네주는 도구가 된다면 그것은 법이 더 이상 법이 아닌 것이된다.

현재 고대 의대 성추행에 대한 재판이 진행중인 것으로 안다. 법원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아직 알수는 없지만 간절히 바라기로 이 사회의 시스템이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춰가기를 바란다. 트위터에 올라온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그저 역사속에서 과거의 아픔을 추억하는 문구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법보다 더 큰 힘을 가졌기에 법 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가 이 땅에 있다는 것은 그가 신이거나 아니면 악마이거나 둘중의 하나면 족하다. 굳이 인간이 법 위에 군림하는 모습을 눈으로 보며 살고 싶지는 않다. 그런 세상은 천국이거나 지옥이면 충분하니 말이다.

개인의 용서와 무관하게 사회의 공의는 실현되어야만 한다. 그것만이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Chapter 3. 공의의 실현 - 그들이 하거나 아니면 우리가 하거나

이제 스물 다섯의 피해자는 석달째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하고 한밤중에 소리죽여 울며 아파하고 있다. 슬픈일이다. 의대를 다니며 의사가 되고자하는 꿈이 있었는데 가해자들과 만날 두려움에 학교를 다닐 수도 없다. 오히려 피해자가 학교를 그만 둘 생각을 하고 있다. 인터넷에 도는 말은 피해자가 평소 행실이 단정치 못해 혼을 내주어도 괜찮겠다는 식의 소문이 돌았다. 누가 어디서 무슨 의도로 저런 헛소리(개소리)를 하고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은 아닐게다. 개소리는 개의 입에서나 나오는 소리니 말이다.

학교측은 퇴학으로 결론 지으려는 듯 보인다. 말이 퇴학이지 사실상 6개월 후 복학이 가능한 퇴학이다. 퇴학이라 쓰고 휴학으로 처리하겠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피해자는 더 두렵기만 하다. 피해자가 더 큰 피해를 겪고 있다. 공의는 이 땅에서 실현되지 않고 있다.

2011년 8월 18일, 고대 정문에 사람들이 모였다. 퇴학이 아니라 출교조처를 할 것을 말했다. 출교를 하면 더 이상 가해자는 고대를 다닐 수 없다. 굳이 다니려면 다시 수능을 봐서 입학할 수는 있지만 굳이 고대로 다시 들어오진 않을게다. 피해자는 학교를 다니고 싶다. 공부를 하고 싶다. 좋은 의사가 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으론 그러지 못할 듯 하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이 일을 언론에 흘렸고, 여러 변호사들의 공격을 받아야 하고, 법정에 불려다녀야 하고, 그리고 밤에 잠자는 대신 눈물 흘리며 울어야 하니 말이다.

시스템이 잘못되었으면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악법도 법이니 따르라고 말하는 헛소리는 철들기 전, 초딩때 속은 걸로 족하다. 악법은 수정되어야하고 사회가 공의를 실현하지 못하면 실현하도록 뜯어 고쳐야 한다.

그들이 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하겠다는 이들의 소리가 오늘 고대 정문에서 들렸다. 사진을 찍으며 뭉클했다.


Chapter 4. 언니의 편지 - 제 동생 다시 학교 다니게 해주세요



고대의대 성추행 학생의 퇴학과 출교 사이에서 ...
@JelicleLim (키다리아저씨)
2011.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