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역전의 메시야

2007. 9. 28. 22:37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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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눅1:51-53)

교만과 권세와 부자는 여기서 한 편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그 다른 편에 "그"가 있다. "그"와 대치하고 있는 이들은 "그"와 대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어쩌면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텍스트는 특별한 재미를 주고 있다.

50 His mercy extends to those who fear him,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51 He has performed mighty deeds with his arm; he has scattered those who are proud in their inmost thoughts.
52 He has brought down rulers from their thrones but has lifted up the humble.
53 He has filled the hungry with good things but has sent the rich away empty.

혹시나 해서 영어로도 텍스트를 찾아보았다. 여기서도 동일하게 드러난다.
무슨 재미일까? 필자는 이 구절을 많이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에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rulers 와 대비되는 자는 the humble 이다. the rich 와 대비되는 자는 the hungry 이다. 그리고 who are proud in their inmost thoughts 와 대비되는 자는 those who fear him 이다.

세상에서 요구되는 인품은 리더십이다. 요즘 왠만한 서점에 가보면 리더십관련 책들이 왜 그리 많은지 헤아리기 힘들정도다. 거기엔 기독교 서적들도 한 몫을 한다. 최근에 나와 한참 인기 좋았던 [긍정의 힘]은 그 대표적인 도서다. 차라리 예전에 보았던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가지 습관]이란 책은 읽고 난 뒤 남는 것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급증하는 리더십관련 책들은 이제 다시 과거의 구태의연함을 재연하는 듯 하다. 짧고 간략하면서 쉽게 쓰여진 책을 통해 리더는 아무나 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결국 [리더십]은 책을 팔기 위한 허울좋은 키워드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말이 조금 옆으로 샜다. 세상이 원하는 자는 제자가 아니다. Follower 도 아니다. 리더를 원한다. 그리고 Ruler 를 원한다. 좀 더 과장하자면 영웅을 원한다. 그것도 다른 사람을 위한 영웅이 아닌 나를 위한 이기적인 목적에서 소용이 되는 그런 영웅을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조명을 받는 자리에 서기를 원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높이지 않는다. 아니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끌어 내린다. 오히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the humble 이다. the hungry 이다. 주린 사람, 겸손한 사람, 자신을 믿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the rich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다. 부족이 없는 사람이다. Ruler 는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끌어간다. 그에게는 더 이상 신이라는 개념이 필요없다. 그는 스스로가 신이 되어 있는 이집트의 Pharaoh이며 자신의 무덤을 짓는 노예를 데려가겠다는 대언자 모세의 길을 막아서는 스스로 높임을 받기 원하는 자이다. 그는 낮아질 것이다. 그는 스스로가 높다고 믿겠지만 결국 추하게 하강하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는 자주 보았던 내용이다. 그런데 51절의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라는 부분이 왠지 눈에 들어온다. 교만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교만한 자를 흩는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교만한 자의 반대편에 있는 자는 어떤 자인가? 겸손한 자인가? 50절에서는 두려워하는 자라고 말한다.

교만은 무엇인가? 교만은 마음에 있는 것이다. 내가 하는 어떤 것, 내가 가진 어떤 것, 혹은 나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스스로 자각하며 우월의식을 느끼는 것이다. 좀 더 나아가면 우리는 거기서 나 외의 존재에 대해서 비하하며 그것들과 다른 차원에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Ruler 가 되어야만 하는 나의 존재이유를 찾는 것 그것이 교만이다.

그런데 이 교만의 반대가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를 두려워 하는 자(those who fear him)는 교만한 자와 반대편에 서는 것이다. 겸손하다고 말하는 것이 나의 모든 것을 비하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교만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기혐오로 두려워떠는 사람이 아니다. 교만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그"를 두려워할 줄 알며 그래서 "그"를 Ruler 로 인정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 노래는 마리아가 자신을 통해 이 땅에 태어나게 될 메시야에 대한 천사의 소식을 듣고 부른 노래다.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는 특별한 분이다. 그는 교만한 자, 권세 있는 자, 부자와 함께 하지 않는다. 그들의 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힘으로 그들을 흩고, 낮추고, 빈손이 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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