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편의 편지로 읽는 민족주의의 어두움

2010. 7. 21. 00:37서평/[서평] 인문

이 책을 읽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시간이 걸린 이유는 어렵고, 내용이 많다는 것 정도인데, 이 책의 특징을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세계사 편지 상세보기
임지현 지음 | 휴머니스트 펴냄
학문과 국경의 틀을 뛰어넘는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자 임지현의 『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 2000년부터 10여 년간 월간지 '우리교육'에 연재해온 를 수정ㆍ보완한 새롭고 통쾌한 역사...


첫째, 보기보다 어렵다.
나름대로 한 사람의 사상과 그 사상의 발현, 혹은 영향력의 정도를 아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나름의 비판을 가하거나 혹은 장점을 찾는것이 일반적인 순서다. 이 책은 그러한 점에서 이미 그 사람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비판을 가한다. 그 비판도 민족주의와 관련된 부분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런점에서 주체사상이 뭔지도 모르고, 스탈린이 공산주의자라는 정도의 희박한(?) 지식밖에 없는 사람이 읽기에 이 책은 다분히 불친절하다.

둘째, 너무 많은 사람과 사상을 다룬다.
전체 19개의 장이 있다. 스무편의 편지라고 제목에 쓴 이유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적힌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또 하나의 편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역사에 큰 흥미를 가지지 못하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 하지만 나머지 내용들은 역사에 흥미가 없는 이에게는 더더욱 흥미를 유발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싶다. 나름대로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저자와 같은 시각을 가진 몇몇 사람들과 또 세계사적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민족주의의 한계에 갇혀있는 이들의 허황된 사상을 편지라는 형식으로 비판을 가한다. 재미의 측면으로는 가치가 있지만 정작 한권의 책에서 너무 많은 이들을 비판하다보니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의 전달이 되어버렸다.

셋째, '역사공부'하지말라는 저자의 권유가 있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역사는 이름과 연도와 사건의 배열을 암기하는 것이었다. 무슨일이 있었는지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우리는 객관화된 사실을 암기했고, 그것을 역사 혹은 세계사라는 이름의 학문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런 교육 때문에 대학생들은 역사를 잊어버렸다.
편지형식으로 쓰여진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팩트의 전달이 아닌 해석의 공유, 그래서 이 책은 읽힐 수 있다. 다만 조금만 더 쉬웠으면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있다.

마지막으로 민족주의의 맹점에 빠지는 것에 대한 저자의 경고는 날카롭다.
적어도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사상과 업적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이 책을 읽었더라도 그들의 업적의 배후에는 변질된 민족주의사관이 도사리고 있으며 그것의 해악이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지를 조금은 살펴볼 수 있게 된다. 하나하나의 개별 데이타는 차치하고, 민족주의라는 것이 어떻게 세계사의 흐름속에서 나와 공동체와 타인을 괴롭히는지 이 책은 말해준다. 그것만을 얻는다해도 이 책은 충분히 그 값을 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