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횡포와 언론 탄압, 그 사이에 선 눈과 귀가 막힌 국민 - 신정아사진 사건을 보며

2007. 9. 13. 21:20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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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언론의 횡포와 언론 탄압, 그 사이에 선 눈과 귀가 막힌 국민 - 신정아사진 사건을 보며

1. 누가 잘못했냐?

이런 사건이 터지면 당연히 국민들의 관심은 누가 잘못했느냐에 집중되게 된다.
그 잘못이 크냐 작냐, 혹은 중대하냐 그렇지 않느냐는 두번째 문제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에서 자기도 무엇이든 한 소리를 내야만 하다는 강박적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게 된다. 특히, 글쓰기 좋아하고, 댓글 달기 좋아하는 네티즌이라고 불리기 원하는 이들은 더욱 그러하다.

결국 이번 누드사진에 의해서 신정아씨에 대한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아니 그보다 훨씬 원시적인 정글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죄가 있다면 그 죄를 밝히면 된다. 그래서 벌을 받아야 한다면 그 죄에 합당한 법이 정한 합당한 형을 내리면 된다. 때로는 이 모든 일에서 많은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지켜보는 것 뿐이다. 우리는 지켜보면서 그래도 무엇이든 제대로 된 [정의]가 아직은 이 땅에 조금이라도 존재함을 느끼며 그나마 뻣뻣한 하루를 근근히 이겨갈 희망을 품게 된다. 돈이 없어 아직 전세를 전전하더라도, 그 비싼 그림이 비록 내 집 거실에 걸려있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래도 착하게 사는 것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며 산다는 것이 그나마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이라고 자위하며 살수 있다.

2. 눈과 귀가 막힌 국민

국민은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을 볼 눈이 없다. 모든 것을 들을수 있을 정도로 귀가 밝지 않다. 그래서 국민들은 들려주는 것을 듣고, 보여주는 것을 볼수 밖에 없다. TV 를 보고, 거기 나온 웃음과 말을 믿는다. 신문을 보고, 거기서 들려주는 기사와 사설에 감정이입을 해본다. 알수 있는 것이 한정되었기에, 국민은 자신의 눈과 귀의 역할을 해줄 이를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이를 언론이라는 곳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 필자가 원하는 것은 굳이 필요없는 사설이나 미사여구를 쳐바른 홍보용 글귀보다는 나의 눈이 되어서 내가 보지못했던 것과 나의 귀가 되어 내가 평상시 듣지 못했던 그 소외되고도 미약학 소리를 들려주고 그늘에 숨겨진 실루엣을 보여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3. 언론의 지금까지의 과오

그래서 언론의 역할은 중요하다. 이 땅에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하려는 시도가 있을때, 이 땅에 부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부를 가지려는 시도가 있었을때, 소수의 약자들이 죽어가는 신음의 소리를 내고 있을때, 사람들은 모두 그 사실을 알려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었다. 언론은 그 역할을 해야했다. 적어도 언론의 첫번째 사명은 [이익창출]이라는 경영학 초급 교과서에 나오는 그것을 넘어, 무엇인가를 전달해 주는 것이를 바랬다. 하지만 다수의 언론들은 그러지 못했다. 대부분 그들은 힘을 가진 자의 편에 서서 국민들에게 정권의 하수인, 혹은 대변인의 의사전달 통로,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러면서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더 이상의 눈에 드러나는 것들은 조금씩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없어진 것은 아니다. 다만 지능적으로 교묘하게 숨어있는 것이다. 하지만 언론은 지능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이전과 비교해 더 바보스러워지고, 더 타협적이 되어갔다. 더 잇권에 집착하게 되었고, 이제는 언론은 기업 그 이상은 아닌 존재가 되어 갔다. 그래서 아직도 언론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여전히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익창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라의 장래, 소수자의 인권, 혹은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인권이 있다는 단순한 사실 조차 것을 깨닫지 못했다. 단지 많은 이들에 의해 기사가 팔리면 그것이 그들이 할수 있는 최고의 선이 된다.

이번 신정아씨 누드사진만이 문제였을까? 이미 그 이전에 언론의 모습을 보며 많은 지식인들은 더 이상 쓴소리를 뱉을 기운도 없을 지경일 것이다. 이번 사건은 언론이 선을 넘은 첫번째 사건이기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건은 언론이 선을 넘어선 것을 다수의 네티즌들조차 파악할 정도로 너무 많이 넘어온 것이 드러난 것일 뿐이다. 한번의 과오가 아닌 너무 많이 넘어온 선의 저편은 어떤 곳인지 언론은 그 선의 저편을 기억하지도 못하는 것 같다.

이번 사건을 통해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또 이것을 기회로 삼아 차기 정권에서는 언론의 부도덕성을 공격하며 차기정부에서 추진하는 일을 독재시대의 방식으로 회귀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생각은 내 개인의 지나친 걱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일의 모양새를 보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은 아닐것이라는 걱정도 생긴다. 이미 미디어는 과거와 같이 신문이나 TV의 뉴스만을 통해 전달되지 않는다. 다양한 방식의 접근이 생겼음은 동시에 그 다양한 방법을 움직일 수 있는 힘있는 자에 의해 정보는 조작되거나 왜곡되거나 혹은 여론마저도 움직여질수 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블로그 등의 1인 미디어의 발달은 그러한 중앙집권적 통제를 방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순한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다. 일부 인터넷 포털의 힘, 루머라 하더라도 이용할 가치가 있다면 굳이 그 루머의 공격성을 풀어놓아 유리한 형세를 차지하고자, 마치 게임을 하듯 정치를 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기존의 기자실을 없애고 새로운 형식의 브리핑실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고, 또 다시 한동안 기득권에 익숙해온 언론들은 이것을 기회로 [언론탄압]이라는 식의 보도를 시작했다. 정말 그것이 언론 탄압일까? 언론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없는 필자는 청와대 블로그에 나온 글들과 각 언론사에서 발표하는 글들을 비교해가며 읽어보았고, 필자의 결론은 기득권을 가진 대형언론사의 듣보잡인것을 알게 되었다.

4. 달라져야 할 언론

언론은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만 언론은 비도덕적인 사회에 도덕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국민들은 비도덕적인 사회에 살고 있더라도 이 사회가 도덕적인 곳이 되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희망을 품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언론은 지금까지 연애인들에게 적용되어 온 공인이라는 호칭을 이제 그들이 가져가야 한다.

이번 사건을 기화로 언론은 바른 도덕성에 대한 책임을 바르게 가져야 할 것이다. 국민의 알 권리? 언론이 해야 할 소리로 [이익창출]보다는 그 말이 조금 더 자신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 말이라서 선택한 말이리라. 하지만 정말로 [국민의 권리]를 생각한다면, 언론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만 할 것이다.

5. 또 하나의 당부

언론에 대한 관심이 식어서는 안된다. 적어도 언론은 국민의 눈과 귀의 역할을 해야 하는 책임을 지닌 존재다. 다시말해 아무리 이번 일로 언론이 미워지더라도, 그래서 형편없어 보일지라도 언론이 사라지는 사회를 기대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언론은 국민에게 바른 정보를 제공해 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 (3류 로맨스소설에나 나오는 그런 듣보잡 말고 말이다) 우리 스스로에게 해야 할 말은, 우리는 언론에 대한 바른 피드백을 주고 받는 존재가 됨과 동시에 우리에게 전달되는 소식을 바르게 판단해서 받아들일수 있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일은 없으리라 생각되지만, 혹시라도 이 일로 인해 언론전반에 대한 탄압이 시작될때 우리는 그것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며 손뼉치고 있는 어리석은 또 다른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신정아씨의 문제는 그 문제로 풀어야 하고, 언론의 이번 어리석음은 반성하고 고쳐서 다시 그런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지,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 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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