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복지(마20:1-16)

2012. 2. 24. 13:13Life/Christian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마 20:1-16)



1. 서언: 너무 빨리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사람들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 있다. 기술도 있고, 체력도 있고,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도 있다. 하지만 그는 단지 나이가 57이라는 이유로 하는 일을 그만두어야만 한다. 정년이라는 개념은 언제부터인가 열심히 일 해온 사람에 대한 존경과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가 아니라 아직 일할 수 있음에도 쫒겨 나가는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제 57인 그는 하던 일을 정리하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잘하던 일은 못하게 되고, 익숙하지 못한 일을 저렴한 임금을 받으며 비고용직이 되어 언제라도 잘릴 수 있는 환경에서 일을 해야 한다. 은행에 충분히 돈을 저금해 두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80세가 넘어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까지 사는 것이 고통이요, 걱정인 삶을 살게 된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나아진 의식주의 개선으로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늘어났다. 1970년에는 62세에 불과했던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2008년도에는 83세로, 20년 이상 수명이 늘어났다. 하지만 IMF를 맞이하며 시작된 노동자들에 대한 가혹한 해고와 그것만이 기업을 살리고 나아가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는 애국심에 호소하는 잘못된 논리는 21세기에 접어든 한국사회에서 똑똑하고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는 재벌기업과 수십억의 연봉을 받는 CEO들의 입에서 여전히 등장하는 허언이기도 하다.

한때 정년을 연장하자는 주장이 나왔고, 그것을 법제화하여 근로자들에게 불이익이 없게 하자는 논의가 진척되적도 있지만 기업들은 그러한 정년연장을 법제화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말만을 반복하며 지금까지 왔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것이 인권을 초월하고 사람을 넘어서는 가치가 되어 버린 사회에서 우리는 노년에 고통 받는 것을 당연시 여겨야하는 그런 억지를 수용하고 있다.


2. 이상한 포도원 주인

본문에 등장하는 포도원 주인은 이상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포도원에서 일할 사람을 찾기 위해 새벽같이 인력시장을 나간다. 그리고 자신의 포도원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하루치 임금 1데나리온을 약속하고 일하도록 한다. 그런데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3시, 6시, 9시, 11시에 장터에서 여전히 일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때마다 자신의 포도원에서 일할 수 있도록 지시한다. 그리고 자신의 포도원에서 일한 모두에게 하루치 일한 값으로 1데나리온을 지불한다.

임금을 일의 능률로 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일한 시간에 해당하는 임금을 정당한 것으로 주장하는 마르크스의 이론으로도 포도원주인의 임금지불 방식은 이해될 수 없다. 그는 모두에게 합당하거나 혹은 그보다 과한 댓가를 지불하였다.

3. 일하기 원하는 사람 VS 돈 때문에 일하는 사람

왜 포도원 주인은 아침일찍부터 일한 사람만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임금을 지불했을까? 11시, 지금의 시간으로는 오후 5시에 장터에서 놀고 있는 사람에게 포도원주인은 가서 말한다.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이에 대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그들은 놀고 싶어서 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일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일을 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거기 그 자리에 그저 머물고 있었던 것이었다. 땀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웠고, 자신들도 그렇게 일하고 싶었지만 이미 저녁이 되어가는 그 시점에 더 이상 자기들을 고용하고 일을 주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자기들이 일할 수 있으리란 기대는 거의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차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절박했다.

오후 5시, 곧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일은 더 이상 할 수 없다. 그래도 그 잠간이라도 일을 하고 약간의 품이라도 팔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은 시장의 한 모퉁이에 서 있다. 그런 그들에게 포도원주인은 일을 맡긴다. 일하기 원하는 사람과 그들에게 일을 줄 수 있는 사람, 그들의 만남은 하늘의 축복이요, 운명이다.


4. 선한 것과 악한 것

나중 온 사람들이 1데나리온을 받는 것을 보고 처음 온 사람들은 내심 기대를 했다. 자기들은 더 오래 일했으니 더 많은 댓가를 받으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주인은 처음 온 사람들에게도 처음에 약속한 1데나리온을 준다. 처음 온 사람들은 주인에게 원망하며 화를 낸다. 한시간 일한 사람들과 하루종일 일한 자신들을 동일하게 취급했다고 주인을 악하다고 평가한다.

왜 주인은 악하다는 평가를 들어야했는가?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한시간 일한 사람에게 1데나리온을 주었다면 그들보다 몇배 더 일한 자신들에게는 더 나은 보상이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주인은 그들의 논리에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들은 주인과 약속을 하였고, 주인의 그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다만 주인이 그들에게 보여주었던 것보다 더 크게 보이는 호의를 타인에게 베풀었다고 해서 그것이 이전에는 공평했던 것이 악하진다고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루종일 일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1데나리온은 공평한 것이고, 그들은 그것을 받았다. 또한 주인은 하루종일 일이 없어 가슴졸이며 시장 한 구석에서 쩔쩔매던 이들에게 일을 시키고 1데나리온을 준 것도 선한 일이다. 그 선한 일이 이전에 한 공평한 일을 악한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5. 먼저 된 자가 나중 되는 것

이 비유는 천국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얼마나 사람들이 천국을 악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마라“는 말로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는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의 말씀을 잘못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일을 하고 싶으나 하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일하기조차 싫어하는 사람의 무책임과 게으름을 경계하는 말이다.

천국은 게으르고 가기도 귀찮아하는 사람을 억지로 들여보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침부터 열심히 일한 댓가로만 들어갈 수 있는 그런 곳도 아니다. 공의와 사람이 공존하는 곳, 그렇기에 천국은 진정한 복지가 구현되는 복지국가이기도 하다.

또한 포도원주인이 만났던 사람들은 일하기 원해서 그때까지 참고 기다린 사람들인 것을 기억해야한다. 영약한 머리를 굴려서 하루종일 놀다가 해질 무렵 장터에 나가 거기서 포도원주인이 오는 것을 기다린 사람은 아마도 그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일하기 싫어하는 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을 찾고 있었고, 그래서 그 둘은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