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 책을 통해 나를 말하라

2009. 10. 11. 11:50서평/[서평] 인문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패러다임 01) 상세보기
피에르 바야르 지음 | 여름언덕 펴냄
총체적 독서를 위한 새로운 독서 패러다임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비독서를 포함하는 새로운 독서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책이다. 2007년에 프랑스에서 출간되어 대중과 평단과 언론의 찬사를 받은 책으로, 전통적으로 당연하게 여겨온 독서문화와 그에 대한 금기를 되짚어본다. '이런 책은 꼭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독서의 목적과 방법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이 책은 읽지 않은

1. 들어가며...

피에르 바야르는 꽤나 재미있는 책을 썼다.
파리8대학 이면 꽤 이름있는 대학이다. 국내에서도 진보지식인들이 한국판 파리8대학을 만들겠다며 운동을 일으킬 만큼 세계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대학이기도 하다. 그 영향력에 의한 것일까? 피에르 바야르는 꽤나 대담한 책을 썼다. 이 책은 단순히 자신이 읽지 않은 책을 읽은 것 처럼 말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대학의 문학교수이면서 자신의 문학강의시간에 자신도 읽지 않은 책을 말한다는 사실을 밝힌다. 단순한 고백이 아닌 당연하고 적극적인 선택으로서의 비독서의 모델로 자신을 드러내기 주저하지 않는다.


2. [특성없는 남자], 무질의 사서의 적극적 비독서 - 책의 홍수에 떠내려가지 않기

수많은 책들 속에 함몰당하지 않기 위한 방법, 즉 수많은 책의 홍수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거리를 두는 것이고, 책에 대해서 수동적인 자세(책을 볼수 없다는 상황적 자기변명의 이유와 함께 책을 계속 손에 들고 있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동시에 표현)를 취하는 대신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질의 사서는 자신이 보아야 할 책과 봐서는 안되는 책을 분명히 구별한다. 그는 무수한 책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대신 책들에 관한 책들에 관심을 갖는다. 그 외에는 제목과 목차외에 절대 읽지 않는 적극적인 독서의 모범을 보인다.


3. 책을 대충 훑터보는 것

그렇다면 적극적인 비독서와 함께 책을 대충 훑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것은 독서를 한 것인가 아니면 하지 않은 것인가? 때로 많은 시간을 들여 책을 꼼꼼히 읽어가지면 정작 책의 마지막장을 넘기며 그 가운데 길을 잃은 경험을 해 본 사람은 나 하나일까? 책을 읽으며 대체 이 책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마지막장을 넘기면서 오히려 더 큰 혼돈중에 절망한 사람은 나 외에는 없었을까? 아마도 책을 읽으려고 노력했던 많은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내가 읽을 책과 읽지 않을 책을 적극적으로 분류해서 실천한다는 것은 한 분야에만 몰입하는 외골수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 분야에 집중함으로서 다른 모든 것을 총괄하는 나의 정신의 도서관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나는 나의 정신의 도서관에서 무질의 사서처럼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수 있고, 그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도 알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조금 보강하면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적극성을 가지게 되면 이제 책을 훑어볼수 있다. 그런 독서방법은 결코 정독함에 비해 열등하지 않다. 필요한 책과 필요한 내용은 며칠 밤을 새면서라도 봐야 하겠지만 모든 책을 그렇게 눈이 뚫어져라 들여다볼 필요는 없다. 나 역시도 수 많은 사람들이 입에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통하는 리차드 도킨슨의 책을 한권도 읽어본 적이 없지만 그 책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바가 아니며, 얼마든지 평을 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4. [티브족의 햄릿] 읽기

티브족의 햄릿 읽기는 이 책의 백미다.
티브족은 책을 읽지 못한다. 그들은 로라 보헤넌이 움막에서 햄릿을 열심히 읽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에게 자신들에게도 그 이야기를 알려줄것을 요청한다. 로라는 자신의 가설, 햄릿의 작품이 보편적으로 이해될 수 있음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그들에게 햄릿을 읽어주기 시작한다.
읽는 도중 로라는 첫번째 문제에 봉착했다. 보초를 서던 세 사내가 이미 죽은 대장의 유령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티브족은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죽은 대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죽은 자는 다시 사람들 앞에 나올수 없다고 말한다. 로라는 여전히 보초를 선 세 사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죽은 사람이 왔기 때문이라고 거듭 말한다. 한 노인이 말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요.", 그리고 옆의 노인이 말한다. "죽은 대장일 리가 있나요. 마법사가 보낸 신호인 게지요. 계속하시오." 그들은 확신에 차 있었다.

"햄릿의 아버지와 삼촌이 같은 어머니 소생인가요?" 아마 같은 어머니 소생은 아닐 것 같은데, 극작품이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 확신할 수 없다고 로라는 모호하게 대답한다. 그러자 나이 많은 추장은 심각한 어조로 혈통관계에 따라 큰 차이가 생기니 집에 돌아가거든 어르신에게 반드시 이에 대해 물어보라고 말한다.

독자와 책 사이에는 독서를 가공하는 내면의 책이 존재한다. 책을 읽으면 모두가 동일한 생각을 할 것이라는 것은 엄청난 오해다. 티브족의 햄릿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철저히 다른 문화속에서 다른 생활양식에 젖어든 두 그룹의 사고는 결코 하나의 텍스트를 본다고 해서 동일해지지는 않는다. 어떤 이들은 당연히 그것을 유령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어떤 이들은 결코 그것은 죽은자의 형상이 될수가 없다고 한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당연한 것을 부정하는 이들, 그들은 공통의 텍스트를 가진다고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전혀 달라지게 된다.
티브족의 예에서 그것을 확인하는데에는 세익스피어의 햄릿이 필요하지 않았다. 로라 보헤넌이 들려주는 소설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여기서 보이는 가시적 책은 내면의 책에 의해 성찰의 틀 속으로 흘러들어가고 만다는 것이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가 이 내면의 책에 의한 성찰이 이유가 된다면(많은 이유중의 하나일 것이다), 티브족은 햄릿을 읽은 것일까? 아니면 읽지 않은 것일까? 표면적으로 그들은 책의 활자를 읽지 않았다. 심지어 햄릿의 결말을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그 텍스트를 통해 세익스피어와 그의 내면의 책, 그리고 영미권의 문화를 가진 이들의 내면의 책과 교감(비록 그것이 불협화음을 이루었다고 해도)을 이룬 것이다. 이정도 되면 그저 문자화된 활자를 시각적인 자극을 통해 뇌속에 잠시 집어 넣은 것보다 나은 독서가 아닌가?


5. 중요한 것은 책의 외부에 있다.

다시 바질의 사서에게로 돌아가자. 그는 중요한 것은 책의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책의 외부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책은 외부에 있는 중요한 것을 위한 구실이 되거나 수단이 된다. 책에 집중하는 순간 그것은 우리에게 더 집중해야 할 오브제를 모호하게 만들게 된다. 차라리 책이 우리를 덜 방해하고 모호한 오브제로 남을 수록 우리의 담론은 더 정교해지고, 의사소통이 더 잘 이루어질수 있다.
오스카 와일드는 대단한 독서가로 이름난 사람이다. 그는 책을 세 부류로 구분한다. 첫째 읽어야 할 책, 둘째 거듭 읽어야 할 책, 셋째 절대로 읽지 않았으면 하는 책이다. 조금 풀어서 이해한다면 꼭 읽어 볼만한 책, 그리고 서재에 비치해서 시간날 때마다 반복해서 음미하며 읽어야 할 책, 그리고 이 두가지를 할 시간을 방해하는 쓸데 없는 책으로 이해할수 있겠다.
그의 [비평은 예술이다]라는 책에서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  어떤 포도주의 산지와 특질을 알기 위해서 한 통의 술을 모두 마실 필요는 없네. 반 시간 정도면 어떤 책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어렵잖게 알아낼 수 있네. 형태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사실 6분이면 충분하네 ...

이전에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한 사람을 평가하는데 몇분 되지 않는 면접시간은 너무 짧은 것이 아니냐고,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그 몇분은 한 사람이 그 회사에 적합한지 여부를 판단하는데 어쩌면 필요 이상으로 충분한 시간일 수도 있다. 그의 모든 것을 알기에는 짧은 시간일지 몰라도, 그가 우리 회사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특히 그가 우리 회사에 불필요한 사람인지 아는데 걸리는 시간은 10분이 아니라 3분이면 족하다. 짧은 몇개의 질문을 통해 그를 완벽히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가 내게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하는데는 충분하다.

오스카 와일드는 "나는 내가 논해야 하는 책은 절대 읽지 않는다. 너무 많은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책을 읽지 않는데 어떻게 논할수 있느냐고? 이미 책의 모든 부분에서 책을 읽기 전에 우리는 길을 잃지 않고 책의 내용을 파악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음을 알수 있다. 책은 정보를 줌과 동시에 나의 독창성을 빼앗아 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책을 통해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6. 작가의 결론

작품은 담론 속에서 증발하면서 어떤 덧없는 환각적 오브제에 자기 자리를 내어준다. 다시 말하면, 온갖 심리적 투사를 유인하기 쉽고 사람들의 견해 표명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령작품'에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작품을 자기 탐구의 매체로 사용하고, 이용 가능한 그 몇 안되는 요소들에 입각하여 그 요소들이 대체 불가능한 내밀한 우리 자신에 관해 말해주는 바에 유의하면서 자신의 내면 책의 부분 원고들을 편찬하고자 하는 편이 더 낫다.(p.230)


7. 약간의 덧붙임

이 책의 앞뒤에 붙여진 리뷰어들의 짧은 리뷰를 보면 과연 이 책이 제대로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많은 리뷰어들(그들은 대부분 매우 유명한 사람들이다)은 이 책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모호한 오브제를 통해 어떻게든 투영될 텍스트를 생산하고 있다. 이것도 나쁘지 않다. 그저 요약만 하는 감상문보다는 차라리 앞뒤에 읽을 꺼리가 덧붙여지는 것이 나을 테니까.
한가지 더 생각하게 된다. 나는 왜 지금까지 이런 유명한 사람들이 하는 리뷰에 공감하지 못할까 했던 걱정꺼리가 싹 없어졌다. 게다가 그들과 다른 이해와 사유는 오히려 더 내 마음에 든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 책을 통해 나를 말하라
http://jeliclelim.tistory.com/201
JelicleLim(200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