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이 시사에 관심을 가지고 토론을 한다. 그런데...

2012. 2. 27. 21:14Eye/시사단평

sbs 시사토론 2012년 2월 24일자 방송중



개인적으로 밤12시가 넘어서 하는 토론프로그램을 누가 보기나 할까 하는 생각과 함께 거기 방청하거나 시민토론단, 시민논객 이란 이름으로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며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늦은 시간에 뭐 재미있는 프로도 아닌데 거기 앉아서 그걸 다 듣고 있을까, 그러면서 무슨 질문을 할께 있다고 질문도 하고 그러나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한 프로에서 시민토론단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밤늦은 시간에 하는 토론프로그램이라 참여해주는 사람이 별로 없나보군. 나라도 가서 좀 도와줘야지!"

그렇다. 나는 철저하게 이타적인 마음으로 한 밤중에 하는 토론프로그램에 나가서 도와주고자하는 마음으로 시민토론단을 지원했다. 이전에 책에 관련된 프로그램이 없어진 후, 한 밤중에 하는 인지도는 낮지만 꼭 필요한 다큐나 교양이나 시사와 관련된 프로그램들은 가능한 지켜주고 싶은 이타적 마음에서 출발했다.

1. 면접을 보다.

지원서를 제출하고 연락을 기다렸다. 왠만하면 연락이 올테고, 면접같은게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그저 서류접수는 형식적이고 제출한 사람은 다 시민토론단이 될줄 알았다. 한밤의 시사토론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도 많지 않은데, 거기 지원하는 사람이 있을꺼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문자가 왔고, 어느날 몇시까지 오라는 통보가 왔다. 전화를 받았어야했는데... 전화를 못받아서 문자만 남겨둔 모양이다. 시간에 맞춰 약속장소에 갔다. 갔 더니 나말고 꽤 여러 사람이 모여있었다. 아, 이 사람들이 나랑 같이 시민토론단 할 사람들인가보다 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기존 시민토론단이 있고, 거기에 필요한 몇명을 모집하는걸로 알았다. 그래서 지원자도 서너명이고 그냥 다 들어가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너무 쉽게 본거지...

모인 사람들은 면접을 보기 위해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무슨 면접인가? 토론 면접이라고 한다. 그때까지 면접을 보리라고, 토론 면접을 보리라곤 꿈에도 몰랐다. 그냥 따라 올라가보니 거기서 면접을 한다고 다른 사람들이 말한다. 아하, 그렇구나. 한두명 올거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은 틀렸고, 꽤나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고, 면접을 보게 되었다.

토론 면접의 주제는 4가지 정도로 주어졌고, 그 중 적당한 것을 토론하면서 고르고, 골라진 것을 가지고 토론을 이어나가는 식이었다. 세부내용은 생략한다. 어쨌거나 토론에 참석한 사람들 중 2/3 정도가 떨어져 나갔다. 물론 그 이전에 서류를 통해서도 2/3 정도가 떨어져나갔다. 대략 계산해보니 12명 뽑는데 90-110명 정도는 지원을 했던것 같다. 사실, 시민토론단 한다고 돈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대단한 경력으로 인정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많은 지원을 했을까. 우선 대학생들에게는 이런 자리에 참석해보는 것이 경력에 유리하다고 한다. 공중파 방송이니 얼굴이 비춰질 기회도 얻을 수 있고 말이다.

사실 토론면접에서 나는 한걸음 물러나있게 되었다. 사람이 부족해서 도와줄 마음 반, 또 방송국이라 처음 경험해보는 생소한 기대심 반 이렇게 온 시사토론프로그램에서 면접을 그것도 새파랗게(?) 젊은 친구들이랑 함께 보게 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조금 한걸음 뒤로 물러서게도 했다. (물론 그래도 난 내할말은 한다)

토론을 할때 중요한 것은 두가지다. 하나는 정확한 정보의 습득이고, 다른 하나는 주어진 정보를 논리적으로 재가공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당시 토론면접에서 선택된 주제는 학생인권조례였다. 이 내용은 상당히 정보력을 중요시하는 주제다. 법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조례 자체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하는 것이 상당히 토론을 주도하는데에 큰 힘을 주는 그런 주제였다. 차라리 그 주제보다는 나꼼수 비키니 논란을 선택하는 것이 나아보였지만 그 문제를 다룬다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드러나는 것을 우려한(이건 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견해임을 밝힌다) 젊은이들이 학생인권조례를 택했다.

결론은 정보력 부재로 인한 무의미한 논의가 상당히 진행되었다. 정작 학생인권조례를 읽은 사람도 없었고, 거기서 무엇을 문제로 삼는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었다. 알지못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침묵하면서 다른 토론자들로부터 유용한 정보들이 나오는 것을 귀담아 들었다가 그 정보들을 잘 취사 선택 가공하여 논리적인 어떤 결과나 혹은 문제를 제기해야만 한다. 그러기위해서는 논리적으로 사물을 보는 훈련이 되어야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연습이 충분히 있었어야만 한다. 한국의 대학교육은 그런 면에서 많이, 참으로 많이 부족하다.

2. 각오를 말하다.

면접이 마쳐지고, 시간이 흐른 후 면접에 합격한 이들에게 합격통보가 왔다. 어떤 이는 떨어지고 어떤 이는 붙었다. 떨어지는 이는 서운하겠지만 다시 도전하든지 혹은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 붙은 이는 정해진 시간(내 경우는 6개월)동안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탈락하지 않고 계속 시민토론단 자격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합격이 정해지고 이전 기수와 방송 스탭들과 함께 뒷풀이 겸 환영식(?)이 있었다. 소감을 말하는 자리, 무슨 말이든 해야 하는 그런 자리가 시작되고 시민토론단은 자신의 생각과 포부를 밝히게 되었다.

방송을 만드는 쪽에서는 가능하면 시민토론단을 통해서 방송에 조금이라도 유익하고 혹은 재미있는 그런 모습을 담기를 원할것이다. 재치있는 말이나 화사한 외모나 무엇이라도 시청률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어떤 것, 그것을 방송을 만드는 쪽에서는 원할것이다. 그래서 그런 말도 자연스럽게 오고갔다. 그것까지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조금 불편했던 것이 있다. 왜 시민토론단으로 참석한 이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방송국을 위한 충성의 다짐이 그 자리에서 나오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런말하면 혹시 방송국쪽에서 좀 싫어할지 모르겠지만 난 방송국에 충성을 다짐하지 않을것이고, 더 나아가서 방송국이 무슨 잘못이나 편향성을 보인다면 그 대해서도 질타할 것이다. 토론은 옳고 그름을 가르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는 것이지, 누군가의 잘못을 덮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거짓으로 잘못을 뒤집어 씌위기 위해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방송을 위해 도움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나에게도 있고, 그래서 시민토론단에 지원한 것이지만 그것이 방송국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는 그런 식이어서는 절대 곤란하다는 것이 내 철학이기도 하고 상식이다.

방송을 만드는 쪽에서는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 약간의 조언을 했을 뿐인데도, 젊은이들이 알아서(?) 저자세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묻는 것은 결코 좋아보이지 않았다. 방송을 만드는 쪽에서는 "이렇게 해달라"고 말하지 않는데 시민토론단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를 묻는다. 한두사람의 문제라기보다는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아마도 이런 분위기는 여기만의 분위기가 아닐것이다. 어디든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될 것이다. 한국인의 정서와 관련된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는 토론에 적합한 분위기는 아니다.

3. 토론을 하다.

지난 금요일 (2012.2.24) 첫번째 방송에 참여했다. 토론이 시작되기 전 미리 시민토론단이 모여 정해진 주제에 대해 사전토론을 하게 된다. 아마도 첫번째 토론자리였기에 그랬으리라고 생각되지만 아직 토론문화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것이 드러난 자리였다. 토론에는 주장이 있어야 하고, 주장을 위해서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단순한 토론을 위해서는 논리가 바탕에 자리잡아야 한다. 사실 나는 논리학을 정식으로 공부한 적은 없다. 아마 일부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제대로 된 논리학을 공부한 적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공부했다고 하더라도 무엇을 공부했는지, 무엇이 중요한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더더욱 적을 것이다.

논리학 전체를 다시 설명할 여유는 없다. 그만한 학식도 없다. 단, 논리학에 관련된 책을 작은 것을 하나 잡고 거기서 오류에 대한 부분을 한번 살펴보기를 바란다. 투자한 시간에 비해 꽤 큰 유용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논리학 전체에 대해서 아는 것도 좋고, 특별한 방법론을 가져오는 것도 좋지만 그만한 여유가 없다면 일단은 논리적 오류에 대해서만이라도 한번 읽어보기를 바란다.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해 왔던 많은 언어적 습관안에 있던 오류를 볼수 있고, 또 권위적으로 보여온 많은 다른 사람들의 말과 글이 얼마나 오류투성인인지도 볼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수사로 그 오류를 잘 포장해서 보이지 않게 한 것 뿐, 많은 글과 말은 오류로 뒤범벅이 되어 있다. 토론의 장에서 나오는 많은 말은 대부분 논리적 오류 투성이다. 이게 우리네 토론문화의 현실이다.

종종 논객이라 불리는 이들의 글을 읽어두는 것은 도움이 된다. 예전엔 신문사설을 읽으라했지만 지금 신문들에 실리는 사설은 논리학강의에서 오류의 케이스로 들만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도움이 안된다. 가급적 편향성이 적은 논객들의 글을 읽으며 그 논리를 따라가보면 꽤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에 반대하는 글들도 읽어보라. 논객들이 귀찮아하며 거론조차 않하는 반박글들은 대부분 논리적 오류를 품고 있는 주장들이다. 논리학 공부를 하고 글과 주장을 다시 살펴보면 꽤 흥미있는 공부를 해나갈 수 있다.

4. 주장을 가져라

마지막으로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남의 주장에 따라가지 마라. 자신의 주장을 가져라. 물론 자신의 주장은 수정될 수 있다. 틀렸다면 방향을 바꿀수도 있다. 남의 주장이 더 옳다면 바꿀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주장이 없는 사람은 잘못된 것이 없기에 바꿀수도 없고 또 주장할 것도 없다. 주장은 틀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 바꿀수 있고, 더 나아갈수도 있다.

토론을 좋아한다면, 또 토론을 하는 위치에 있다면 그것을 즐길수 있는 방법이 자신의 주장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토론은 누군가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활동이 아니다. 그건 변호사들에게 맡겨라. 방송국의 시청률을 높여주는 활동도 아니다. 그건 방송국 PD와 스탭들이 걱정할 일이다. 그저 토론은 젊기에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고 때로는 들이받고, 때로는 틀렸음을 인정하고 실수를 사과하는 그런 활동이 되어야 한다.

주장이 언제 틀릴수 있는가? 첫째 가지고 있는 정보가 잘못된 정보일때 틀릴수 있다. 둘째 정보는 옳았지만 그 정보들로부터 논리적으로 제대로 추론해내지 못했기에 틀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틀림을 통해 우리는 성장한다. 한번 틀렸다고 다시는 주장하지 못하는 바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번에는 더 분명한 자료로 더 확고한 논리로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면 된다.

토론자는 실수를 감싸는 변호인도 아니고, 방송국의 모든 사정을 감안해야 하는 오지랍넓은 스탭도 아니다. 토론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고, 그 생각을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이다. 이 모든 활동은 자신을 위해서이고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시키기 위해서다. 내가 토론을 하고, 내가 글을 쓰고, 내가 말을 하는 이유는 누군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제시하는 보다 나은 미래에 또 한명이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래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