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 행복을 추구하라 - 영.티파니에서 아침을

2007. 7. 5. 21:36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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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하탄, 아침 이른 시간, 파티를 끝내고 새벽에 귀가하는 한 여자는 일부러 티파니앞에서 내린다. 그곳에서 빵을 먹으며 진열장 너머 보석들을 바라본다. 할리는 파티에 참석하고, 자신의 미모에 반한 남자들의 주머니를 이용해 살아간다. 하지만 할리는 자신의 그러한 모습에 부끄러워하지도, 또 죄의식을 가지지도 않는다.

영화는 1961년에 만들어졌다. 잘 알려진 Moon River 라는 곡은 이 곡 전반을 통해 흐르며 감미로운 기분에 젖어들게 한다. 1961년, 필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영화를 2007년의 감각에 비추어 혹평을 한다든지 하는 것은 무의미를 넘어 무지를 자랑하는 것이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고? 어떤 곳에 한줄짜리 평을 한 사람은 이 영화를 보고 [시간 때우기 용]이라고 글을 쓴 것에 대해 분이 난 것이다. ^^

2007년의 인간은 1961년과 비교해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 점은 다른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라는 것과 비교를 하면서 따로 언급해 보고 싶다. 하지만 굳이 여기서 말한다면, 내용은 동일하면서 가면이 많아진 것이 현대의 특징이라고 보고 싶다.

우리는 행복이라는 것을 추구한다. 그것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60년대의 사람들은 몰랐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할리는 14살, 아무 철없던 시절 어쩔수 없는 환경속에서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야 했다. 그는 뉴욕으로 자신의 꿈과 행복을 찾아 떠났다. 거기서 할리는 파티에 시달리며 돈이 전부이고, 자신의 꿈이 전부인 외로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폴은 같은 건물에 사는 남자다. 그는 소설가면서 한 부유한 여자의 남창이었다. 여자가 얻어준 집에서, 여자가 사준 옷을 입으며, 그 여자에게 최대한의 서비스를 하는 남자, 할리와 폴은 그 당시의 사람들 중 가장 천한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다. 파티에 불려나가 술을 마시며 남자들의 돈에 의지해 살아가는 여자와 돈 많은 사모님의 숨겨진 애인 남자, 둘의 모습이 21세기형 영화에 등장한다면 과연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질수 있었을까?

영화의 종반부, 폴은 자신에게 돈을 주는 여자의 수표를 거절한다. 그리고 집을 떠나고, 할리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할리는 자신의 어떤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존재라고 하며 많은 돈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고집한다. 결국 그 부자와 헤어지게 된 할리는 비 내리는 거리에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모든 것에서 떠나겠다고 할때 폴은 이런 말을 한다.

"당신의 뭐가 잘못된 지 알아? 이름 없는 아가씨! 당신은 비겁해, 용기가 없어 당당히 고개를 들고 '인생은 사실이다' 하기가 무서운 거야.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고 서로에게 속하는 거야. 그게 유일한 행복의 기회니까. 당신은 자칭 자유분방하고 와일드하다고 하면서 누군가가 우리에 가둘 것을 두려워하고 있어. 그러면서 이미 스스로 지은 우리에 갇힌 거야. 텍사스 튤립도 소말리랜드도 아냐. 당신이 가는 모든 곳이지. 어디로 도망쳐도 자신에게 되돌아 올 뿐이야."

"받아 몇 개월 동안 가지고 다녔지만 더 이상 원치 않아"


이 영화는 행복을 찾는 사람들을 그렸다. 할리와 폴은 누가봐도 밑바닥 인생이다. 그들이 행복을 가질 수 있을까? 21세기에는 그들은 행복을 가질 기회가 없다는 쪽에 비중을 둔다면, 적어도 이 영화가 만들어질 1961년에는 그들에게도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에 촛점을 둔다.

폴과 할리는 자신들의 행복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그것을 끊임없이 찾으려 다닌다. 노력한다. 그치지 않는다. 자신들이 찾는 것이 바른 것인지 모를지라도, 설령 잘못된 것을 찾고 다니고 있더라도 그들은 행복을 누릴 가치가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복을 발견하고 그 행복을 쟁취할 자격이 있는 존재들이다.
그렇게 영화는 빗속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한 남녀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여전히 살아갈 집도 없고, 여전히 모든 것은 꼬일대로 꼬여 있는 상태다. 하지만 그들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고, 그들 앞에 행복은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Moon River 는 흘러간다.

인생이 운명지워졌다는 믿음이 다시금 고개를 쳐드는 시대, 아이들의 장래는 더 이상 그들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는 아파트와 부모의 열의에 달려있다는 숙명론이 지배하는 시대,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1961년 보다 더 비인간화되고, 더 꼭두각시처럼 살아가도록 요구되는 시대가 아닐까? 이 시대의 정신이 거기서 미쳐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더 큰 불안을 느끼며 내가 태어나기전 시대인 1961년에 살았던 오드리햅번의 필름을 이 저녁 다시금 음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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