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킥, 남북관계를 웃으며 패러디할 수 있는 여유를 본다.

2009. 11. 21. 04:10Eye

사실 386 세대들은 알게다. 어린시절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에서 반공포스터를 연례행사처럼 그리던 시절이 있었다. 북의 사람들은 모두 헐벗고 굶주렸고, 거기에 포악한 늑대가 번득거리는 이빨을 드러내며 군복을 입었다. 물론 김일성은 돼지코를 가진 진짜 돼지같이 그렸다. 그렇게 교육받았기에 정말 그런줄 알았고 그것이 이땅의 교육의 단면이었음을 우리는 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무조건 나쁜것이요. 그것과 민주주의는 결코 어울릴 수 없는 것으로 배웠다. 민주주의 앞에 붙는 수식어는 오직 하나, 자유였다. 자유민주주의, 그러다보니 자본주의 사회의 자유만이 민주를 이룰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니 결코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칠레의 대통령 아옌데는 좌파였고,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이었다. 그는 칠레의 어린아이들의 건강을 지키려했고 칠레의 민주주의를 지키려했다. 그는 좋은 대통령이었다. 단지 그가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미국은 아옌데를 싫어했다. CIA의 돈을 받은 이들은 반정부조직을 구성하고 대통령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대통령궁에서 아옌데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1973년 9월 11일, 아옌데가 대통령궁에서 미국의 도움을 받는 피노체트의 공격을 받아 살해된다. 피노체트는 그 이후 가장 끔찍한 독재자로 세계에 이름을 떨친다. 피노체트가 칠레의 대통령이 되고 '피의 독재'라 불리는 강력한 군사독재, 끔찍한 철권 통치가 시작되었다. 사회주의자였던 대통령,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된 그 아옌데를 쿠데타로 살해한 피노체트가 미국을 등에 업은 신자유주의자였다는 사실은 어린시절 받았던 그 그림의 위 아래를 바꾸고 싶게 만든다.

어린시절 부르던 노래가 있다.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짖밟아 오던 날을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울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 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6.25의 노래다. 조금 철이 든 후에 이 노래를 부르게했던 이들을 생각하면 끔찍한 마음이 든다.
731부대가 항일운동을 한 독립군인줄 아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많은 방해를 했던 이들도 있다. 한때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가요가 일본과 외교문제에 걸림이 된다는 이유로 나라에서 금지곡으로 만들기도 했다. 게다가 이제 거의 돌아가시고 몇 남지 않은 정신대 할머니들의 수요시위는 어떤가?

그 모든 것을 그렇게 관용하는 이들이 북한이 쳐들어왔던 그 사건에 대해서는 "쫒기는 적의 무리"를 쫓고 또 쫓는다. 언제까지 쫓아야할까? 원수의 하나까지라도 남김없이 쳐서 무찔러야한다. 그걸 아이들에게 노래로 부르게했다. 어린시절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이 노래를 부르며 자랐다. 원수를 무찔러야만 이 나라, 이 겨레가 빛나리라는 착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 원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북한이다.

이제 시간이 지났으며 이 모든 것을 한걸음 물러서서 볼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의 눈물어린 모습을 보기도하고, 굶주림에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작은 성금이 전달되는 것을 흐믓하게 여기기도 한다. 그들은 원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그 힘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던 이 땅의 아픔속에 남과 북은 함께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남북관계를 하이킥이 패러디했다. 조금 아픈 현실이고, 개인적으로는 씁쓸한 기억이지만 그래도 남북이 이렇게라도 패러디되고 그래서 조금 더 역사적 사실을 알아가면서 동시에 현실적 관계를 돈독히 할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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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과의 관계를 남북관계로 패러디했다. 나름 재미있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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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보는 듯한 교장의 복장, 꽤나 재미있는 연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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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공동경비구역의 패러디다. 재미있으려면 끝까지 한번 더 한다는 주의, 좋다.

[참고]
위키-피노체트
위키-아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