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 6천만원짜리 소송에 걸린 사람의 이야기

2011. 4. 16. 12:28Eye/시사단평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고전6:1-5)


교회는 세상의 빛이었다. 아니 교회는 세상의 빛이다. 과거에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미래도 그러하다. 만약 교회가 더 이상 세상의 빛이 아니라면 그것은 말씀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빛이 아닌 무엇은 교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삼일교회를 다니던 청년이 있었다. 그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려했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 위해 꽤나 노력했던 청년이었다. 어느날 삼일교회의 목사가 성추행에 관계되어 있음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충격을 받은 청년은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었다. 교회 안에서 교인들에게 이 문제를 거론하고 어떻게든 교회는 이런 큰 문제를 그저 덮고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했다. 그 과정중에 목사의 성추행이 거의 성폭력에 가까왔음을 알게 되고 이 문제가 단회적인 실수가 아닌 상당히 오랜 기간을 두고 지속되어 온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청년의 문제제기는 목사뿐이 아닌 그 주변인들에게로 향했다. 왜 당신들은 이러한 일이 지금까지 지속되도록 그저 보고만 있었느냐는 질타가 이어진다. 그리고 그들은 그 청년에게 [명예훼손]이라는 세상의 법을 적용해 2억 6천만원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한국교회는 더러워졌다. 충분히 더럽혀질대로 더럽혀졌다. 그래서 강남의 대형교회에는 친목을 위해 모여드는 권세자와 그 아부꾼들의 소굴이 되어버렸다. 거기에서 죄에 대한 설교는 더 이상 힘을 잃는다. 오직 한가지, 승리, 그것이 지금의 대형교회의 유일한 생존전략이자 비전이 되어버렸다. 과정이야 어떻든 사람이 많이 모이면 좋은 교회고, 과정이야 어떻든 돈만 많이 벌면 복을 받은 것이 되었다. 가슴을 치고, 옷을 찢으며, 재 위에 앉아 오장육부가 파열되는 슬픔속에서 죽을것 같은 고통을 경험하며 회개하는 대신 사람들은 웃음과 즐거움과 모든게 잘 될거라는 긍정의 힘과 그리고 물신의 축복을 기대하며 교회에 온다. 그리고 그들은 원하는 바를 얻는다. 만약 거기서 다른 소리를 한다면 그 이상한 소리를 내는 이는 쫒겨날 것이다. 교회 밖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과 다른 소리를 내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괜찮다는데, 거기서 관찮지않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이단자가 된다. 그 이단자는 저주받아야하고, 그 이단자는 정의의 이름으로, 교회의 이름으로, 십자가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죄받아 불에 태워져야한다. 그래서 삼일교회는 기꺼이 그 이단자를 정죄하기 위해 2억 6천만원이라는 감당치못한 시험거리를 그 청년에게 던져주었다.

공식적인 명칭은 삼일교회지만 이제 내게 그 집단은 더 이상 교회라는 타이틀을 달기에 부족한 곳이니 삼일그룹이라고 하겠다. 삼일집단이라고 해도 괜찮다. 아니 그냥 삼일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 그룹이든 집단이든 그 어떤 타이틀이든 상관없다. 단, 교회라는 타이틀을 그들끼리 쓰는 것은 뭐라하지 않겠지만 내게 거기가 교회라고 억지를 쓰지는 말아 주었으면 한다.

성경은 복잡하게 말하지 않는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대해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한다.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고전6:1)" 지금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분쟁을 보며 한숨을 쉬고 있을게다. 바울만 그런걸까? 이게 성경이 아니고, 이 내용이 하나님과 관련이 없는 내용이라고 믿는다면 좋다. 그렇게해라. 하지만 이게 성경이고,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인정한다면 대체 삼일집단에서 하는 그 어처구니없는 소송은 무엇이란 말인가?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전6:2)" 성도는 바보가 아니다. 그저 교회의 목사가 하는 말이라면 무엇이든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이 성도의 본분은 아니다.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할 줄 알고, 잘못된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줄 알아야만 그는 믿음이 있는 성도인 것이다. 성도의 믿음은 하나님이고, 그의 말씀에 있는 것이지, 목사의 해석에 있는 것도 아니다. 양을 기꺼이 희롱거리로 삼아 폭력을 휘두르는 삯군 목자의 거짓을 보고도 못본체 하는 것이 믿음은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은 기꺼이 고린도교회를 부끄럽게 했다. 이제 한국의 교회와 성도들은 삼일집단을 보고 그들을 부끄럽게 하고자 한다. 그들이 한 것은 교회의 이름을 걸고 해서는 안되는 짓이다. 차라리 교회라는 타이틀을 떼어내라. 그리고 기꺼이 자본주의 사회의 이익집단이 되라. 그리고 나서 하는 소송이고 송사라면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교회라는 타이틀을 걸고 하는 2억 6천짜리 마녀사냥을 마치 십자군이라도 된 듯이 뻐기지는 마라. 부끄러워할 일이니까.

22.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아직도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23. 도리어 자신을 하늘의 주재보다 높이며 그의 성전 그릇을 왕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구리, 쇠와 나무, 돌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24. 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하였나이다
25.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26.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27.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28.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니 (다니엘 5:22-28)


알고도 그 마음을 낮추지 않은 벨사살은 끝내 그 왕위를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이 끝나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기록한다. 그는 저울에 달아 부족함이 보였다. 다니엘은 벨사살에게 그 사실을 그대로 말했다. 벨사살은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 부족함을 보인 자였지만 다니엘의 해석에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나라의 통치자로 삼는다.


이에 벨사살이 명하여 그들이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게 하며 금 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고 그를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니라(다니엘 5:29)

그는 부족했다. 부족함을 인정했다. 그것을 깨닫게 해준 다니엘에게 벨사살은 화를 내거나 노여워하거나 2억 6천짜리 고소를 하는 대신 나라의 통치자로 세웠다. 저울에 달아 부족함이 보여 그날 밤 더 이상 이 세상에 있지 않게 된 벨사살이 삼일집단보다 더 나아 보이는 대목이다.

교회는 상식을 초월하는 곳이다. 세상의 상식을 뛰어넘어 그 이상의 것을 믿음과 신앙으로 이루어내는 곳이 교회다. 그런데 지금 교회라고 불리는 많은 곳에서 상식에 미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상식을 초월하는 것과 몰상식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구별조차 못하면서도 "교회"라고 불리기를 원하는 집단들이 한국 사회에 많이 있다.

어릴적 이런 이야기를 가끔 들었다. 깡패와 건달들이 어떤 사람을 잡아 가진 것을 빼앗으려다 그가 교회의 전도사인것을 알게 되자 그들은 그 자리를 피했다. 전도사에게 무슨 큰 돈이 있겠느냐는 생각과 함께 하나님의 사람을 해치면 저주를 받으리라는 두려움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변했다. 이제 전도사뿐 아니라 교회와 목사는 술자리의 안주꺼리 이상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목사가 사기를 치기도 하고, 사기꾼이 목사라고 속여서 사기를 치기도 한다. 눈물과 애통함이 사라진 한국교회, 과연 그곳을 교회라고 부를 그 무엇이 우리에게 남아 있기라도 한 걸까.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73201.html

드디어 신문에까지 이 고소껀이 올라왔다. 매스컴을 타니 더 유명해져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겠구나. 어느 교회는 광고하러 엄청난 돈을 들이는데 공짜로 신문지면을 차지하게 되니 얼마나 좋을까. 지면에 실린 글을 그대로 옮겨 실으면 이런 내용이 있다.

지씨에게 소송을 건 삼일교회는 ‘입막음 소송’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소송을 맡고 있는 정범성 변호사(삼일교회 신자)는 “지씨에게 인터넷 상에 올린 글을 삭제해달라고 수차례 부탁했으나 지씨가 받아들이지 않아 소송을 걸게 되었고 2억6000만원 소송은 상징적인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소송이 상징적인 것이라니, 소송을 하는 변호사의 입에서 이 소송이 상징적이다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럼 2억6천만원은 상징적인 액수니 반성문 써내듯 이면지 뒷면에 "수표 2억 6천" 이렇게 써내면 된다는 뜻일까? 그거 아닐텐데 말이다. 참 재미있는 분이다. 상징적인 소송은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봐 두어야겠다. 다음으로 이런 구절도 있다.

삼일교회 신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삼일교회는 전병욱 목사 성추행 사건 이후 자기반성보다는 전병욱 목사를 보호하고 문제덮기에만 급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추행 피해자를 이단교회가 보낸 ‘꽃뱀’으로 지칭하거나 전병욱 목사를 ‘다윗’(남의 부인과 간통해 비난받았다가 용서받은 것으로 성경에 기록된 인물)에 비유하면서 옹호해왔다는 게 공통적인 증언이다.


물론 삼일에서는 부정했다. 이런 식으로...

삼일교회 쪽은 “전병욱 목사가 다시 삼일교회에 돌아올 일은 없고, 피해자가 ‘꽃뱀’으로 비유된 것은 일부 신자들의 행동일 뿐 교회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일부 신자의 행동은 교회의 공식입장이 아니라고 했으니 이번 2억 6천짜리 소송은 어느 정도 신자들의 수가 똘똘 뭉쳐진걸까? 궁금해진다. 어쨌건 모든걸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역시 교회의 공식입장은 오직 하나인 듯 하다. 2억 6천만원짜리 상징적인 소송말이다. 이후로는 어느 누구도 감히 삼일의 ㅅ 도 입에 올리지 못하게 따끔하게 맛을 보여주겠다는 그런 뜻의 상징일까? 만약 그렇다면, 니들은 정말 미친거다. 아니, 어쩌면 제대로 배운것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난 삼일이라는 말과 교회라는 말이 함께 다니지 않았으면 정말 좋겠다. 그 두 단어가 함께 붙어다니는 한 나는 26억이 넘는 소송이 들어온다해도 교회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 위한 선지자의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