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키와 내 아내의 키, 그리고 아이들의 키 ...

2009. 11. 13. 15:28Life

내 키는 대한민국 평균신장 보다는 조금 더 크다. 다행(?)히도 loser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될 만큼 턱걸이로 조금 더 크다. (2009년 11월 13일 현재 이 글을 쓰는 시각의 대한민국의 winner 와 loser 는 키 180cm 을 경계로 나눤다.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발언한 20대 초반의 여대생의 기준이 대한민국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걸로 왜 이리 대한민국 전체가 시끄러운지 의아하기도 한다) 키가 커서인지 주변 사람들에게 여자친구를 사귀려면 최소 167cm 는 되는 사람을 만나라는 말을 듣고 했다. 왜 167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힐을 신고 나란히 섰을때 어울릴 만한 정도의 크기가 167 이라고 해석해본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만났던 여자친구들 중 167을 넘겼던 사람은 아마도 한명 이었던 것 같다. 그 친구도 정확히 167이 넘는지는 모르겠다....

나머지 다른 여자친구들은 모두 그 이하였다. 160 도 안되는 사람도 있었고, 키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아마도 나를 포함해서 키로 winner 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굳이 여자의 키를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을 듯 하다. 내 경우에는 키가 큰 여자들 보다는 작고 아담한 사람들에게 더 호감이 갔으니 말이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니 누가 뭐라할 것은 없지만 왠지 키크고 늘씬하다는 여자들은 바보일 거라는 조금은 지나친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다. 그 큰 키에 화장에 몸매유지에 기타 등등을 감당하고 나면 언제 책 읽을 시간이나 있을까하는 불필요한 사견이 지나쳤던게다(사실 키 160 이든지 170 이든지 화장에 걸리는 시간은 같은텐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키가 아담했다. 그리고 나는 그게 좋았다.

만남은 항상 진지했다. 그래야한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때로는 채이고, 때로는 차면서 그렇게 교제를 진행했다. 한번에 둘 이상을 만난다는 것은 스스로도 용납이 안되는 것이라 삼각관계같은 것은 전혀 생각도 못했다(지금도 마찬가지고, 아이들에게도 삼각관계같은 것을 스스로 정당화하는 논리같은 것은 지나가는 개에게는 주라고 할 생각이다). 그러다 아내를 만났고, 아내는 내게 자신의 키가 160 이라고 했다. 처음에 그 말을 믿었다. 이말을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180 인 나에게 160 에서 +5cm ~ -5cm 는 그다지 자세히 보지 않는 한 식별이 쉽지 않다. (나중에 아내의 말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157cm 였다.) 어쨌거나 키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기에 만날수 있었고, 좋아할 수 있었고, 사랑할 수 있었고, 백일 기념으로 호주 신혼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물론 그 이후로 수많은 싸움을 했고, 지금도 종종 싸우곤한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아내의 작은 키가 문제가 된 적은 없었고, 돈이 부족한 것은 싸움의 원인이 되었던 적도 없었다. 그러니 우리는 분명히 소위 말하는 천생연분임에 틀림없다.

아내는 가끔 걱정을 한다. 아이들이 자기를 닮아 키가 작으면 어쩌냐고, 그러면 나는 빈소리로 위로를 한다. 누구 아들인데 키가 작겠냐고... 하지만 굳이 키가 크거나 작은 것이 아무것도 아님을 안다. 내가 키가 커서 얻은 특별한 유익도 없으며 키가 작다고 그것 때문에 받아야만 하는 특별한 불이익도 없다. 단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유로 받는 어려움이 있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니 들려오는 나무람은 있지만 그것을 굳이 키에 결부시키고 싶지는 않다. 내 아이들은 키가 클수도 작을수도 있고, 적어도 내가 할 것은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가르치는 것 뿐이다.

나는 행복하다. 키가 크기 때문은 아니다. 돈이 없고, 집도 없고, 정규직도 아니고, 당장 내년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낼 생각을 하니 적금도 없는 은행의 텅빈 예금통장이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왜냐하면 행복은 행복하기로 작정한 사람에게 존재하는 무형의 가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