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과 느리게 사는 지혜 [스크랩]

2008. 6. 7. 14:32서평/[서평] 인문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빠르게 사는 것이 미덕인 사회속에 살게 되었다. 한국사람이 해외 여행을 가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한국관광객을 상대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 없는 말... 바로 "빨리 빨리"다.
식사하는 그 시간을 짧게하고, 무엇을 음미하는 시간을 짧게하고, 그래서 최대한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아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누구보다도 짧은 공기로 일을 마쳐야하고, 누구보다도 빨리 보고서를 제출해야한다. 들고다니는 휴대전화는 이런 점에서 한국인의 정서에 더 빠름을 요구하며 필요를 적절히 채워준다. 하는 일이라고야 엑셀에 한글과 워드정도지만 최신의 컴퓨터에 최고로 빠른 CPU와 빠른 처리속도를 요구한다. 항상 업그레이드가 전부인 우리네 삶의 모습속에서 때로는 이러한 스피드가 우리네 삶의 진정한 부분을 생각지 못하게 방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인터넷이 없는 시공간속에서 휴대폰의 배터리를 빼어버리고 그저 누구도 방해하지 못할 시간과 공간속에서 잠시나마 시간을 가져보는것이 어떨까? 비록 그것이 시간의 효율적 활용에 위배되는 것일지라도 그것을 통해 잠시나마 얻을 수 있는 유익을 위해 Real Life 의 Downgrade 를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

글은 이번 큐티진에 실린 기사의 내용이다. 조금 천천히 사는 삶의 유익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VIA[QTZine:강준민]

삶의 속도를 줄여라
말씀 묵상을 통해 배운 소중한 지혜는 느리게 사는 지혜다. 우리는 속도가 우상이 된 시대 속에 살고 있다. 속도가 생존의 법칙처럼 숭배되는 시대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속도만으로 인간은 행복해질 수 없다. 빠른 속도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빠른 속도는 우리 내면의 안정감을 흔들어 놓는다. 안식하지 못하게 하고, 쫓기는 삶을 살게 한다. 속도는 속도를 낳는다. 그런 까닭에 한 번 속도를 늘이는 데 집착하면 더 빠른 속도의 노예가 된다.
속도를 줄이는 길은 묵상을 생활화하는 것이다. 말씀 묵상을 지속하면 속도를 줄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말씀 묵상이 속도를 줄이는 데 소중한 역할을 하는 까닭은, 말씀 묵상은 속도를 줄임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 리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너무 바쁘게 살아서는 안 된다. 지나치게 분주해서는 안 된다. 말씀을 묵상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성찰할 시간이 없을 만큼 분주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자신의 속도와 방향을 점검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시간을 내지 못할 만큼 분주하다면 머지않은 날 엄청난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말씀을 음미하는 여유를 누려라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복을 음미할 수 없을 만큼 바쁘게 살아서는 안 된다. 코리 텐 붐은 “마귀는 우리를 악하게 만들지 못하면 바쁘게 만든다.”고 말했다. 우리를 정신없이 바쁘게 만드는 것이 마귀의 전략이다.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기쁨으로 충만해지는 것이다. 우리의 행복과 기쁨을 빼앗아가기 위해 마귀가 즐겨 사용하는 무기가 분주함이다.
우리의 행복은 분주함에 있지 않다. 우리의 행복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많음에도 있지 않다. 너무나 많아진 텔레비전 채널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보다 우리를 혼돈스럽게 한다. 선택할 수 있는 채널이 많다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안하게 한다. 너무 많은 선택의 기회 앞에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무력감을 경험케 한다. 진정한 행복은 자신이 가진 것을 자각하는 데 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알고, 그것을 누릴 줄 아는 데 있다. 작은 것이라도 음미할 줄 아는 여유에 있다.
말씀 묵상의 훈련은 음미의 훈련이다. 한두 말씀을 붙잡고 온종일 묵상하는 중에, 그 말씀의 맛을 음미하는 것이 묵상 훈련이다. 음식은 음미할수록 맛이 있다. 말씀은 음식과 같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그 말씀을 음미할 때, 말씀의 맛을 알게 된다. 말씀의 맛을 경험했던 다윗은 말씀의 맛이 꿀보다 더 달다고 고백했다. 우리는 맛보아 안 것은 잊지 못한다. 우리가 말씀을 많이 대하지만, 말씀에 대한 기억이 희미한 까닭은 말씀을 맛본 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말씀의 맛을 경험하는 길은 말씀을 묵상하면서 말씀을 음미하는 것이다.

느리게 사는 지혜를 배우라
삶의 속도를 줄이고 말씀을 음미할 때 우리의 삶의 질은 높아진다. 나태와 느림은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르다. 피에르 쌍소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라. “나태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게으른 상태라면, 느림은 삶의 매순간을 구석구석 느끼기 위해 속도를 늦추는 '적극적 선택'이다.” 느림은 삶의 매순간에 경험하는 구석구석을 음미하는 것이다. 말씀 묵상을 위해 느림을 선택하는 까닭은 말씀의 구석구석을 음미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게으름을 싫어하신다. 또한 지나치게 빠른 속도도 싫어하신다. 하나님은 결코 서두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시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인생을 비참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너무 빠른 속도를 내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빠른 속도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는다. 수많은 생물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
게으른 것은 문제가 있지만 조금 느린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조금 느린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빠른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너무 머리가 빠르고, 민첩해서 성공을 빠르게 쟁취한 사람들이 일으킨 문제로 우주는 몸살을 앓고 있다. 막스 도튼디는 “느린 사람은 빠른 사람보다 많은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말씀 묵상을 통해 느리게 사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소중한 삶의 기술을 터득하는 것이다. 시대를 초월해서 영향력을 준 훌륭한 인물들은 결코 서두름에 능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기다릴 줄 알았고, 필요할 때마다 멈출 줄 알았던 사람들이었다. 묵상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스물다섯 살 때 “서두르지 않겠다는 결심보다 유익한 것은 인간에게 있을 수 없다.”고 썼다. 나도 감히 소로와 같은 고백을 하고 싶다. “말씀 묵상을 위해 느리게 살기로 결심한 것보다 유익한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