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할아버지와 방문자들

2010. 8. 1. 16:56Eye

나는 대학에서 강의할때는 교수님이라는 호칭을 듣는다.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그에 관련된 학부 과목을 가르친다. 또 나는 신학도 공부했다. 신학석사학위를 가지고 있고, 교회에서 파트사역을 하며 청년들을 가르친다. 학교에서는 교수님으로 통하지만 교회에서는 목사님으로 불린다.

학교에서 강의를 할때는 아무래도 말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학생들이 따라오는지를 확인하며 피드백을 받으려고 노력한다. 교회에서 청년들을 지도할때도 그들의 말을 잘 들으려고 노력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를 잘 들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말을 할 때도 1:2 정도로 내가 말을 적게 하고 많이 들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종종 나를 찾아오는 이들이 있다. 평소와 달리 병원에 있는 동안은 할일이 없기에 상담을 청하는 이들의 부담도 덜하다. 찾아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참 하다보면 보통은 스스로 대답을 찾아간다. 문제를 자신의 입으로 말할수 있다는 것은 대부분 그 해결 방법도 이미 그 안에 있음을 의미한다. 듣는 것의 중요성이다.

오늘 같은 병실에 있는 한 노인 환자분의 가족과 그의 교회 식구들이 방문했다. 나도 신학학위를 가지고 교회에서 목사라고 불리는 처지에서 그들의 방문을 환영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들의 방문은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우선 들으려고하지 않았다. 물론 이 할아버지는 말을 어눌하게 한다. 나이가 들었으니 그럴 것이다. 가끔 정신도 잠시 오락가락 하는 듯 하다. 그런 할아버지의 말을 십여명의 사람들이 둘러서서 가만히 듣고 있기 힘들었을 게다. 그리고 이후의 일정도 당연히 있을게다. 다른 환자들도 심방(찾아가서 위로의 말을 하고 기도해주는 것)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환자의 상태를 전혀 알지 못한채 들어와서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가는 것은 비록 그 말이 아무리 옳을지라도 듣는 상대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된다. 인간은 정말 이성적인 존재일까? 어떤 사람은 그럴게다. 하지만 내 경험상 그런 사람은 극소수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잘못인줄 알면서도 잘못을 한다. 이성적인 아닌게다. 불륜인줄 알면서 한다. 감정이 앞서는게다. 비이성적인 존재. 그것이 인간이다. 할아버지는 아직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 신앙이 없다.

듣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면 굳이 여럿이 몰려와 병실에서 사람들을 만날 필요는 없다. 주변사람들의 눈쌀만 찌푸리게 한다. 물론 어떤 이들은 와서 기도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이야 얼마든지 가서 기도도 해주고 이야기를 해주어도 좋다. 하지만 교회를 다니는 가족이나 이웃이 갑자기 몰려와 귀는 닫은 채 입만 열어 말의 홍수를 쏟아내고 급하게 자리를 뜨는 식의 병원심방은 안하느니만 못하다.

할아버지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한 밤중에 큰 소리로 헛기침을 하거나 나가고 싶다면 병실안 모든 사람을 잠에서 깨우곤 한다. 솔직히 같은 병실에 있지 않았다면 좋았을텐데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어쩌면 누구에게 자신의 말을 하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가끔 옆을 지나치다 몇마디 말을 나눈다. 귀가 들리지 않는 할아버지를 위해 큰 소리를 질러야 한다. 몇마디 나누고 나면 목이 아플 정도다.

할아버지에겐 그래도 잘 돌봐주는 간병인이 붙어있다. 한 밤중에 잠도 못자면서도 화내지 않고 할아버지를 위한다. 단지 돈만 받기위해 돌보는 간병인이 가족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들은 입원이후로 들르지 않는다. 그저 오늘 한번 교회 식구들을 몰고 연례행사를 치르듯 몰려왔다 몰려갔다.

문득 저 할아버지가 가여워진다. 이 할아버지가 들어온 이후로 밤중에 몇번씩 깨어 잠이 부족하다. 할아버지는 밤에는 사람들을 깨우고 낮에는 혼자 잔다. 그렇지만 이 할아버지가 밉기보다는 가여워진다. 자식들이 와서 말동무도 되어주지 못하는 존재가 되고 만 할아버지, 어쩌면 자식들과 말하지 않고 살아온 습관이 지금 그 위력을 발휘하는 것일게다. 굳이 자식들의 허물을 탓하고 싶지 않다. 자식들의 모습은 부모의 과오가 빗은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잘못을 여기와서 뉘우치고 있을지 모른다. 가정적인 분은 아니었을게다. 그렇지만 할아버지가 가여워진다. 예수 믿어야 천국 간다는 그 한마디말만 던지고 알아듣지 못할 작은 소리(할아버지에겐 그 기도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을게다)로 기도하고 돌아가는 그들의 모습속에서,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작은 일상의 소소함을 이야기할 여유조차 없었던 그들의 여유없어진 어깨의 짐들이 무겁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