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과 성경에 나오는 토지공개념

2007. 10. 22. 14:47카테고리 없음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89년 2월23일 열린 토지공개념 도입을 위한 정책토론회



부동산 문제가 다시 불거져 나온다. 토지공개념도 다시 튀어나오고 있다. 여기서는 토지공개념을 성경의 희년사상과 관련되어 나름대로 이야기해본다. 지금의 시대에 적합한 실제적인 토지공개념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미 수천년전에 있었던 성경속의 희년 사상의 그 의미를 짚어보고 거기서 기독인들로부터 시작되는 토지에 관한 새로운 인식이 시작되기를 원한다. 적어도 토지공개념은 공산주의자나 빨갱이가 시작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그 훨신 이전인 모세의 율법에서도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레위기 25장에 구체적으로 명시되는 희년규정에 따르면 희년은 꽤나 거창한 일이 이루어지는 때였다. 이때에는 모든 땅은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그렇다면 땅이 원래의 주인이 아닌 타인에게 매매되기도 했었다는 말인가? 매매의 개념을 물건과 같이 한번 팔면 그것으로 *땡*인 것으로 생각한다면 땅은 그런 종류의 매매의 대상이 아니었다. 땅은 기업으로 물려진다. 땅을 팔수 없고, 살수 없다. 다만, 필요에 의해서 희년이 도래하기 전까지 땅은 그 경작권을 팔수 있었다. 즉, 땅의 소유권이 아닌 경작권만을 사고 팔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점에서 땅의 원 주인조차도 땅의 소유권을 가졌다고 말할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는 땅의 소유권을 팔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작권, 혹은 사용권이라고 부르자. 그것은 큰 일로 인해 돈이 필요하게 된 사람들에게는 유일하게 팔수 있는 것이었다. 당장 먹을 것이 없고, 병으로 죽어가는 마당에 땅을 아무리 가진들 무엇하겠는가? 땅은 팔수 있었다. 단, 그 땅은 희년이 되면 다시 원래의 주인에게로 되돌려졌다.


희년은 7년째 안식년이 7번째 되는 해의 다음해를 의미한다. 즉, 희년은 매 50년마다 돌아오게 된다. 이 희년이 되면 땅은 원래의 주인에게로 되돌려진다. 혹 급박한 사정으로 노예가 되었던 자유인은 다시 자유를 찾게 된다. 땅을 팔고, 노예가 되었던 자는 자유와 함께 자신의 땅을 되돌려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50년째가 되는 해를 희년(喜年)이라고 불렀다. 기쁨의 해였던 것이다. 되물림되는 가난의 연쇄가 아닌 자유와 새로운 출발을 가능하게 하는 해였다.


땅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다. 땅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기에 그 땅을 개인이 소유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먼저보았다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는 다는 것은 차라리 억지에 가깝다. 그 소유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땅은 하나님이 만들었다고 기록한다. 땅의 소유자는 하나님이며, 그 땅은 필요에 의해 사람들에게 나눠진바 된 것 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경작을 허락하였지만, 그 소유권자로서의 땅의 주인된 권리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것이 성경에 드러나는 희년과 관련된 토지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이다.


자본주의와 지나친 물질만능주의는 하나님의 땅 조차도 그 소유를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하는 사회를 만들고 말았다. 거기에 기독교인들조차 땅의 원 주인과 원 주인의 의도를 헤아리지 못한채 그 땅을 투기의 수단으로 정당화하고 오히려 거기에 어그러진 축복의 개념을 쏟아붓는다. 어리석음이다. 철저하게 성경과 하나님의 원뜻, 공의를 헤아리지 못할 뿐 아닌 공의와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는 악을 허용하고, 범하고 있는 것이다.


땅에 대한 정책들을 살펴보게 된다. 한편으론 답답함이 가득하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땅은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는 그 땅위에서 서서 살아가는 은총을 받은 자라는 고백이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땅을 자신의 것인양, 그 땅을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인양 생각하는 말과 언동을 보고 있지만 마음이 불편해짐은 어찌할 수 없다. 차라리 기독교인이 아닌 이들 중에서 땅의 개인적 소유를 거부하고 땅의 공적 효용과 관리를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하기까지 한다.


월터 브루그만의 <성경이 말하는 땅>의 한 부분을 인용함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


“영적인 기독교는 땅의 문제에 대면하기를 거부함으로써 현존하는 불평등성을 인정하는 결과를 만들게 된 것이다.”(<성경이 말하는 땅>, 월터 브루그만 지음, 정진원 역, CLC 펴냄, 2005년, 350쪽).

“지금 세계의 근원적인 불안은 빼앗긴 자들이 요구하는 땅의 몫에 대한 외침이다. 그리고 그 불안은 정녕 성경에서의 가난한 자들의 외침인 것이다(참조, 출 2:23~25, 왕상 12:4). 땅을 가진 자들에 대항하여 일어난 가난한 자들과 여호와의 연대를 선지자들은 강하게 선언한다. 이 시대에 있어서 빼앗긴 자들의 외침은 위협적이고, 거친 것으로 들리지만, 성경은 이 거친 소리가 땅을 가진 자들에 대항하고 있는 빼앗긴 자들과 하나님 자신의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성경이 말하는 땅>, 월터 브루그만 지음, 정진원 역, CLC 펴냄, 2005년, 349~350쪽).

“빼앗긴 자들의 말은 공격적이고, 그들의 약속은 부적절한 것이라고 보는 가진 자들의 교회에 우리는 안주하고 있는 것이다. 빼앗긴 자들과의 연대를 다시 수용할 수 있는가가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문제이다.”(<성경이 말하는 땅>, 월터 브루그만 지음, 정진원 역, CLC 펴냄, 2005년, 351쪽).


성경은 땅은 하나님의 것이요, 그것은 하나님이 모든 이들에게 나눠준 것이라고 말한다. 땅을 빼앗긴자들의 거친 소리, 그 공격적인 말은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내고 있는 것임을 오히려 말하고 있다. 우리는 땅을 원 주인인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리고 그 땅을 하나님의 공의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 그 공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충분하고 약간 남는 풍성을 약속하는 하나님의 공의이다.


JelicleLim


 

"부동산 정책, '토지공개념'이 핵심이다"

토지공개념, 무덤에서 살아나나

헨리 조지의 기독교 사상…(3) 시장 친화적 토지공개념

시장 친화적 토지공개념 개헌 위한 기독인 선언

희년의 토지주택법과 평균 경제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