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시작하고 맞은 재미있는 한가지 현상

2007. 7. 22. 22:55Life

124448, 86032, 109, 266, 420, 678 모두 특별하면서도 재미있는 숫자들이다. [2007년 7월 22일 기준]

첫번째 숫자는 여태[2007.7.22]까지 내 블로그에 방문한 사람들의 숫자다. 12만 4천 4백... 엄청난 숫자다. 솔직히 많이 놀랐다. 처음 블로그에 글을 쓰고 다음에 공개할 때 고작해서 100명정도 글을 보리라 생각했다. 그정도 보면 많이 본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두번째 8만 6천 32, 이 숫자는 어제 하루동안 내 블로그를 방문한 숫자다. Tistory 를 쓴 것, 그리고 호스팅으로 개인 계정블로그를 쓰지 않은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정도 숫자와 트래픽이면 엄청났을게다. 단 하루에 8만 6천명이 내 블로그를 방문했다!! 역시 상상도 못한 일이다.

내 글이 특별한 논리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많은 시간을 들여 공들인 글도 아니었다. 아니 그 반대로 아주 짧은 시간에 어쩌면 다분히 격앙된 상태를 진정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감정적 반응이 채 걸러지지 못한 글이기도하다. 물론 누구에게 트집잡히지 않을 정도의 교묘함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 글이 내 마음을 제대로 드러낸 글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글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댓글은 각각 420개와 678개가 달렸다. 어쩌면 지금도 달리고 있고, 곧 700개가 넘을지도 모르겠다. 댓글을 보기 위해 클릭하면 한참을 기다려야 화면이 뜬다. Tistory 에서 댓글 부분을 몇개의 화면에 나누는 기능이 없다는 점에 불편함을 느낀 최초의 순간이었다(혹시 그런 기능이 있다면 알려주면 감사하겠지만, 앞으로 또 이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이 된다). 대부분의 댓글은 내 글이 재수없다는 쪽으로 달린다. 예상했던 일이다. 678개 중 악플이 90 퍼센트 정도 차지할 것 같다. 나머지 글은 내 글에 호응하는 댓글을 단다. 그런데 그 댓글에 다시 댓글이 달린다. 역시 악플이다. 그래서 어떤이는 비밀글을 써둔다. 나만 볼수 있도록 말이다. 자신의 글에 다시 악플이 달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이다. 그 마음을 이해한다. 90퍼센트의 글 중, 정말 제대로 자신의 소신을 드러내는 글은 그 중 10% 정도에 불과한 것 같다. 나머지 80% 정도는 그저 여기 저기 달리는 글들을 모아서 대충 뿌려 두거나, 도배를 하거나, 혹은 이미 누군가 써둔 글의 반복과 욕설로 그친다. (80% 중 절반은 욕설 혹은 인신공격일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엄청난 악플이 달린 내 글이 다음 블로그기사에서 상당기간 주목을 받았다는 것이다. 사실 그러리라고 상상도 못했었다. 그리고 이런 내 글에 266 과 109 라는 추천수가 올라갔다는 것도 상상도 못했다. 대부분의 블로그기사는 10 에서 50 정도의 추천수와 관련 주제들로 인해 주목받게 된다.(사실 이것도 이번에 내 글이 주목받으면서 살펴 본 결과다. 혹시 틀릴수도 있다. 짧은 시간 관찰해서 얻은 귀납적 결론이니 그렇지 않은 가능성도 열어둔다.) 그런데 109 는 상당이 많은 추천수를 받은 기사다. 게다가 266 이라는 추천수는 혹시나 해서 몇몇 블로그기사를 살펴봤지만 정말 많은 추천을 받았다는 뜻이다. 일본인 여성이 쓴 한국목욕탕에 대한 기사가 이에 조금 못미치는 추천을 받았고, 그 이외에는 266 과 비슷한 정도의 추천을 받은 글을 아직은 찾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만큼 블로그기사는 계속되어왔고, 계속해서 바뀌는 빠른 주제들에 의해 새로은 기사가 그 자리를 차지해야만 하는 것이기에 말이다.

그런데 이 많은 조회수와 악플성 댓글수, 그리고 추천수의 의미는 무엇일까? 혹자는 이 많은 악플을 보라고 한다. 여기서 한국기독교의 실상을 볼수 있지 않느냐고, 맞다. 그들, 특히 네티즌들이 느끼는 막연한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여실히 잘 느낄수 있었다. 그리고 혹자는 말한다. 정이 많은 한국민족들이 이렇게 사람의 목숨에 달린 일임에도 기독교에대해 악플을 다는 이유를 깊이 반성하란다. 맞다. 그런말 듣지 않아도 어쩌면 그 말을 한 사람보다 더 많은 눈물과 고뇌를 하며 교회의 교회다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처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들의 악플 밑에 달려있는 비밀글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 글은 비밀글로 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글들이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의 글이었다. 단지 악플러들의 폭력성을 두려워하는 겁많은 기독인들의 작은 정이었다.

그 많은 악플에도 불구하고 추천수는 꽤 된다. 이 추천들은 그들의 마음을 대신 전해 준 이에 대해 보내는 마음약한 이들의 박수와도 같다. 비록 내 글이 논리정연한 글도, 심지어 내 마음에 꼭 맞는 글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내 글을 보며 마음의 위로를 얻었다. 심지어 댓글로 [고맙습니다. 제 마음을 잘 표현해 주셨군요]라고 답달 용기를 감히 내지 못하는 겁장이라는 비난을 듣더라도 그들은 악플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나만큼은 감당하기 힘든 이들이리라. 그래서 그들의 마음의 일부를 대신 표현한 글을 보고 기꺼이 박수를 보내었던 것이었다.

많은 악플러들의 댓글에도 꿋꿋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박수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이들이 인신공격을 하고, 당신글이 왜 다음블로그기사의 상단면에 위치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노라고 욕을 할때 나는 잠잠히 있지만 그래도 내 글을 통해 작은 위로를 받고 박수를 보낸 이들의 존재를 발견했다.

아브라함에게 요청했던 의인의 수는 50이었다. 아브라함은 그 숫자를 줄여갔다. 하지만 결국 타락한 성읍은 종말을 맞이해야만 했다. 하지만 내 글의 추천수를 보아 아직은 인터넷공간에 여지는 남아있는 듯 하다. 남겨진 자들, 비록 아직 겁이 많아 무슨말을 해야 할지 겁이 나겠지만, 그리고 한마디 하면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에 마음이 찢길 것을 고민하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자신의 마음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를 결정한 그들의 박수소리에 약간의 위로를 받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