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시절 삶의 목적에 대한 짧은 생각

2008. 5. 31. 13:05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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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힘있고 왕성하게 활동을 보이는 때는 언제일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일까, 아니면 대학을 졸업한 다음일까? 결혼하기 전일까, 아니면 결혼하고 아이들을 어느정도 키운 다음일까?

선교현장이야기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는 선교지에서 있었던 10편의 논픽션 스토리가 실려있다. 그 첫번째 스토리는 독재정권이 세워져가는 과정에서 그것에 저항하는 것과 유혈 폭동에 끼어드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젊은이의 모습이 나온다. 그는 결국 자신의 나라를 위해 시위대에 참여하게 되고, 체포되고 단순 가담자에서 시위 주도자로 낙인찍히게 되며 사형을 받게 된다. 사형을 언도받고 집행되기 전날 밤, 그는 바로 그 철창으로 갇혀있는 그 곳에서 왜 더 이상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있는지를 그곳에 함께 갇힌 이들에게 간증하게 된다.

더 자세한 내용은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IVP에서 출판된 [선교현장이야기]라는 책이다. 저자의 레나 테일러는 선교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쩌면 가장 숨기고 싶은 어두운 그림자를 이 책을 통해 밝힌다. 밝히지 않은 어두움은 계속적으로 숨어서 우리를 괴롭힐 것이므로, 차라리 그것을 빛가운데 드러냄으로 더 이상의 아픔을 당하지 않도록 노력할 빌미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한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나라를 위해 기꺼이 죽음이라는 댓가까지도 지불하겠다는 신념을 품게 된다. 그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살게 된 것이다. 그의 목적은 자신의 나라에 무신론적인 정권의 지속적인 탄압에 저항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인권을 무시하는 이들에 대한 저항일 수도 있다. 바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여러차례 죽을뻔한 고비들을 넘기며, 실제로 돌에 맞아 여러번 실신하고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기를 수차례 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목숨을 돌보기 보다는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 더 큰 열심을 내었다. 그의 삶의 목적이 그것 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척 공포스러운 낮과 밤을 보내고 있다. 장로가 대통령이 되었을때 그로 인해 이 나라가 얼마나 더 평화스럽고, 더 정의로운 나라가 될 것인지를 기대하는 것보다 얼마나 이 나라가 더 돈에 찌들려야하고, 얼마나 더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게 될 것인지, 얼마나 더 하나님의 공의는 땅에 떨어지고, 그 자비와 인자는 멸시를 받게 될 것인지 걱정하는 소리가 있었다. 그 소리와 함께 또 다른 곳에서는 장로 대통령을 축하하고 기도하며 축복하는 잔치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많은 이들이 그 밤에 모여 작은 촛불을 들고 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애국자가 되어가고 있다. 그들은 이전에 알지 못했던 삶의 목적을 가지게 된다. 사람마다 그 목적은 조금씩 다르리라, 미국 소의 수입을 반대하는 것, 대통령과 여당의 독주를 저지하는 것, 대운하를 반대하는 것, 사실 이 모든 것은 인생의 목표로 설정할 만큼의 비중이 있는 것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이 안건들은 이미 하나의 신문기사의 헤드라인정도의 의미가 아닌 삶의 목표가 되어가고 있다.

삶의 목표를 가진 자만큼 열정을 보이는 자는 없다.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목표, 반드시 도달해야 할 푯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만큼 최선을 다하는 경주자는 없다. 성경에서도 경주하는 자는 푯대를 바라보며 그 일 이외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거기에 집중한다는 것을 예로 들어 설명하기까지 한다. 저 앞 100미터 앞에 있는 골인지점을 응시하는 단거리 선수의 머리에는 더 이상 어제 아침에 있었던 어머니와의 말다툼이나, 내일 있을 애인의 생일선물로 스카프가 어울릴지 가방이 어울릴지를 고밀하지 않는 것이다. 그에게 보이는 모든 것은 골인지점에 펼쳐진 한 줄의 선이고, 그의 모든 신경은 언제 출발신호가 울리는지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모든 몸의 기관은 100미터를 달리는 10여초동안 최대의 파워를 낼수 있도록 집중하고 준비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 삶의 목적을 잃어버렸다. 잃어버렸기에 그것을 찾아야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마저도 잃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속에서 진정한 삶의 목적이라기에는 무언가 2%부족해 보이는 유사한 목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삶을 부러워한다. 그들을 보며 왜 우리는 저러지 못할까를 서로에게 비난하기도 한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께 있는가? 내가 사는 이유는 그리스도에게 있는가?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유일한 목적과 이유는 그리스도에게 있다고 밝힌다. 하지만 나의 삶은 하나님께 있지 않다. 그저 많은 이들이 교회에 나오는 이유는 그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부모대로부터 물려받은 습관적인 출석과 왠지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서 번개라도 칠것 같은 부담스러움, 이미 많은 이들에게 교회 출석은 신앙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우상숭배에 가까운 종교행위에 불가할 뿐이다.

누군가 아직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며 그를 위해 기도해 본적이 있는가? 한번도 그런 적이 없다면 당신은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이 땅을 위해 눈물흘리며 땅을 치며 통곡한 적이 있는가? 그런적이 없다면 당신은 이 땅을 사랑해본적이 없다. 이성 친구와 헤어지고 밤새워 눈이 붓도록 울고, 사흘간 식음을 전폐해본 경험이 있는가? 하지만 그 경험은 일년이 채 못가 왜 내가 그때 그런 유치한 짓을 했는지 반성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한달 후 부끄러워할 일을 위해서 눈물을 쏟고 밥도 목에 넘어가지 않는 존재들이지만, 정작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물흐르듯이 살다가 언젠가는 백마 탄 왕자나 평강공주를 만나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는 얄팍한 기대속에 하루 하루를 소모하고 있을 뿐이다.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보라. 청년의 때는 삶의 목적을 설정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좋은 시점이다. 이 시기에 다른 것으로 하나님을 괴롭게 하지 말라. 이성친구의 변심이나, 기껃해야 직장 문제로 하나님을 번거롭게 하는 대신, 삶의 존재 이유자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응답하실 것이고, 그것을 찾는 너에게 그는 주실 것이다. 주고자 하는 것을 구하지 않는자, 그것을 제외하고 또 다른 삶의 오락거리만을 찾는 자, 혹은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상처를 거즈로 덮기만하면 나으리라고 기대하는 자의 요청을 하나님은 듣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그것은 독이기 때문이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 방학이면 수련회 두세개를 참석했다. 여름 성경 학교에 항상 교사로 봉사했다. 그리고 혼자서 기도원을 찾기도 하고, 예수원에서 조용한 중에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곤 했었다.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서 하나님과의 은밀한 만남을 통해 나의 길을 발견하고자 했다. 그리고 지금 그 하나님이 은밀한 중에 하시는 음성을 들으며 그 길을 걷고있다. 삶의 목적과 방향을 찾았기에 더 이상은 방황은 없다. 이제 있는 것은 그 길을 걸어가며 대화하는 것이다. 한걸음 한걸음을 내디딜때마다 묻곤 한다. 때로는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저기 폿대가 있는 곳이 보이기에 돌아가는 그 길에서도 조바심보다는 그 길에 피어있는 꽃의 향내를 음미하며 걷는 그 길을 즐기게 된다.

이번 여름 2년마다 찾아오는 선교한국대회가 안산에서 열린다. 삶의 목표를 설정함에 있어 매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청년들 중 삶의 목표에 대한 바른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하는 이들은 이번 기회에 꼭 참석해 보기를 바란다.


 

청년시절 삶의 목적에 대한 짧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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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licleLim(2008.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