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마리 양, 밀양 노인네, 여성비하

2012. 2. 4. 12:56Life/Christian



오늘 본문에 드러난 첫 번째 이야기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에 대한 이야기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은 이 이야기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소외되어가는 개인의 모습과 대조해보면 천국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현실은 이렇다. 양 한 마리가 겪는 공포나 두려움보다 양 아흔아홉 마리가 누려야 할 권리가 우선시 된다. 밀양에서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던 70대 노인이 분신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들여다보면 송전탑을 건설하는 사람들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신고리에 있는 원자력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송전탑을 거쳐야만 영남지역에 공급될 수 있다. 결국 누군가의 땅 위에 송전탑이 세워져야하고, 그것이 재수없게 밀양에 있는 주민들의 땅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송전탑이 세워지는 부근의 땅을 구입해서 거기에 송전탑을 세우려고 하고 있지만 문제는 그 땅의 책정가격이 지나치게 낮다는 것과 주변에 있는 다른 땅들도 송전탑의 영향 때문에 이제는 팔리지도 않는 그런 땅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밀양 주민들의 불평을 잠재우려면 지금 시행하고 있는 것보다 높은 가격으로, 현 실정에 맞추어 땅 가격을 지불하면 된다. 또 주변 땅들에 대해서도 국가가 땅의 가격을 지불하고 구입하면 된다. 문제는 그만한 돈을 지급하려면 그만큼의 세금을 더 걷어 들여야 한다는데 있다.

이야기속의 양 한 마리는 그저 산 위에서 슬피울며 자기를 찾아줄 목자만 기다리면 되었지만 현실속에서 양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서는 나머지 아흔아홉마리의 양들이 자기들의 일정한 이익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또한 목자는 과감히 아흔 아홉 마리 양들의 목소리를 접고,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아픔이 있다.

최근 나는꼼수다 팀의 발언 중 여성비하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한 여성이 비키니 차림의 사진을 올리며 정봉주 석방 시위를 했다. 그걸 보고 많은 남성들과 나꼼수팀에서 재미있어했다. 시위로만 보았으면 별 문제는 없었겠지만, 주변에서 보던 다른 여성들이 문제를 제기할 때 오히려 “가슴도 적은 것들이”, “열폭”, “알바냐?” 등으로 비아냥거렸다. 문제는 점점 커졌다. 조금씩 여성들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지만 문제는 여전히 겉돈다. 핵심을 피하며 이제는 더 큰 문제가 있으니 그만하고 접어라는 식의 대응이 시작된다. 나꼼수는 대한민국 진보를 위해 상처받아서는 안되니 사과 같은 건 할 필요도 없으며, 이런 여성문제는 극히 작은 것이니 나중에 선거 다 끝나고 해도 된다는 발언들이 시작된다. 역시 한 마리의 양을 포기하고 나머지 아흔 아홉 마리의 양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산에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게다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효율과 능률을 최고의 덕목으로 무의식중에 교육받은 사람들이라면 비록 그가 진보를 외치고 있다고 해도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산중에 두고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떠나는 목자의 마음을 이해하거나 공감하거나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마리의 양과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의 생존, 둘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한 마리의 양의 목숨과 아흔 아홉 마리 양의 불편을 저울에 달아 보라는 것이다. 양을 자신의 가족처럼 생각하는 목자는 당연히 한 마리 양을 위해 나머지 아흔 아홉 마리 양들의 불편을 감내한다. 아버지는 한 자식을 위해 나머지 자식들의 불편을 감내한다. 하지만 경영을 목적으로 하면 달라진다. 기꺼이 회사의 이익을 위해 불필요한 사람들을 잘라낸다. 그들이 당장 먹고 살 것이 없거나, 당장 길로 쫓겨나거나 상관하지 않는다. 그래야만 회사는 더 큰 이익을 가질 수 있고, 남은 사람들은 더 좋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선전한다. 굳이 쫒아내지 않아도, 조금 불편을 함께 감수하면 모두 다 살 수 있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모두들 알고 있지만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그리고 그게 선진 경영기법이라고 말하고, 그렇게 해야만 나머지 사람들이 살수 있다고 말한다. 거짓말이다.

양을 찾아라. 한 마리의 양을 찾아라. 그것이 양을 맡긴 주인의 명령이다. 목자는 나머지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잘 돌봐서 좋은 털과 고기를 얻는 것보다 그 한 마리의 양을 찾아서 모두를 데려오는 것이 주인의 뜻이다. 주인의 자본주의자는 아니다. 나머지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잘 돌보아서 각각 1%씩만 털이 더 나오게 하고, 더 살찌게 한다면 한 마리는 있거나 없거나 상관이 없는 시스템이 자본주의 구조다. 10% 증진시킬 수 있다면 100마리 중 10마리를 사육하다가 죽여도 상관없는 게 자본주의다. 하지만 목자는 양을 가축으로 보지 않았다. 마치, 오늘날 반려동물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목자는 양을 가족으로 본다. 그러기에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