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폭력사태에 대한 단상

2012. 5. 16. 02:08Eye/시사단평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계파 싸움으로 보이는 이번 통진당 사태는 그 갈등의 정도가 이미 내부문제로 조용히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섰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그에 대해서 많은 이들은 "그들은 원래 그런 무리"였다고 말한다. 그 판단도 틀리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이전에 보였던 모습이 있었기에 지금 보이는 이 이상한 모습도 그 연장선상에서 "그들"이라면 그럴수 있다는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극히 안타까운 합의다. 당연히 상식적으로 충격을 받고, "어찌 그럴수가 있느냐"고 한탄해야 할 상황에서 "그 사람들이라면 충분히"라는 답변이 나온다는 것이 참으로 진보의 과거가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반증하고 있다.


NL과 PD간의 갈등과 거기서 비롯된 진보신당과의 분리등은 그들이 얼마나 끔찍했었기에 거기서 어울리지 못하고 뛰쳐나와야만 했는지 보여준다. "함께 비를 맞아야"할 진보가, 함께 밥도 먹지 못해서 등을 돌리고 거의 원수처럼 지내온 것이다. 왜 그랬을까?


게임이론에서 게임에 참여하는 이들은 합리적 선택을 한다는 가정을 한다.

때로는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잘 예상되지 않는 결과들이 나오곤 하지만 그것 역시 개개인의 선택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수인의 딜레마라는 내용을 보면 두명의 죄수에게 형벌을 거래하는 모습이 나온다. 두명의 죄수는 각각 별도의 방에서 하나의 동일한 제안을 받는다. 죄를 자백하라는 것이다.


한명이 죄를 자백하고 다른 한명이 여전히 침묵하면 침묵한 죄수에게 10년형의 죄값을 치르게하고 자기는 풀려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둘 다 모두 자백하면 두 죄수는 모두 5년형을 받게 된다. 만약 둘 다 침묵하면 증거가 부족해서 둘 다 모두 6개월 이라는 짧은 시기의 처벌만을 받게 된다. 


어떤 결과가 나올까? 우리는 이 결과를 생각하면서 둘다 모두 의리를 지키면 6개월 이라는 짧은 시기의 가벼운 처벌을 받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맞다. 그런데, 개인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합리적인 선택을 찾아보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


상대방이 자백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상대방이 자백을 한다면 나도 자백을 하는 것이 낫다. 상대는 자백을 했는데 나는 안했을 경우 나는 10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한다. 하지만 나도 자백을 하면 5년만 감옥에 있으면 된다. 자백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상대방이 자백을 하지 않는 경우는 어떤가. 상대방이 자백을 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자백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상대방이 자백을 하지 않았을때 나도 자백을 안한다면 나도 6개월을 감옥에 있게 되지만, 내가 자백을 한다면 나는 바로 풀려나게 된다. 즉, 자백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상대가 자백을 했거나 하지 않았거나 나는 자백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래서 수인의 딜레마는 이런 종류의 거래가 있을때 두 사람은 모두 자신에게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둘 모두 5년이라는 시간을 감옥에 갇히게 된다.


합리적이라고 선택한 것이 사실을 합리적이지 않음을 수인의 딜레마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가장 좋은 선택은 둘 다 침묵을 지킴으로 둘다 6개월의 가벼운 처벌을 받는 것으로 끝날 수 있는 선택이 개인의 최선을 선택할때 5년이라는 처벌을 받는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통진당, 당권파의 합리적 선택은 무엇일까? 왜 그들은 이렇게까지 온 국민에게 몰리고, 진보진영에서 몰리면서도 끝까지 국회의원직을 사수하려고 할까? 그들의 생각은 이렇다. 당권파는 국민을 위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당권파가 정권을 잡고 계속 세를 키워야만 나라가 잘 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고집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국민들이 곧 잊어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국회의원이 되면 4년간 상당한 특권을 누리며 활동을 할수 있게 된다. 그때, 국민의 편에 서서, 노동자의 편에 서서, 정권의 불의를 드러내는 정의의 편에 서서 점수를 만회해도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민들이 잘하는 "망각", 그 망각을 이용하면서 지금 잃은 점수는 나중에 언제라도 보충할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 두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한 당권파는 결코 그 자리를 내어주지 않을 것이고, 자신들이 한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고, 나아가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그것을 지키려고 할 것이다. 이미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그들의 합리적 선택은 결국 모두를 깊은 절망으로 빠지게 한다.


망각하는 역할은 보수진영의 지지자들에게서 주로 드러나는 특성이다. 중도층이기도 하다. 하지만 진보진영의 지지자들은 망각의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다. 그 옛날 시시콜콜한 것으로 아직도 꼬투리잡는게 진보진영에 모여있는 인간들의 특성이다. 최근들어 "같이 비를 맞자"는 꼼수주의가 나오긴 했지만 그것도 같이 비를 맞을 만한 사람이나 있을때 가능한 말이지 내 맘에 안드는 못난 놈과 같이 비를 맞아 줄 순진한 진보는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앞으로 있을 대선에 대비해야 할 이 시점에서 진보의 물을 이렇게 흐린 사람들에게 빵 한조각을 얻어먹고 기뻐해야 할 이유가 없다. 만약 그놈이 빵을 살 직장을 잃게한 놈이라면 말이다. 대선에서 누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는가는 빵한두개와 바꿀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국회의원이 되서" 국민을 위하겠다는 의욕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민주적절차와 도구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다. 그것을 무시하고 광야에 선 초인과 같은 슈퍼맨에게 대한민국의 정치를 맡긴다는 것은 스스로 미래를 버리고 노예가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 정치인을 기대한다는 것은 항상 슈퍼맨이 나타나 위기에서 우리를 구해줄 것이니 어떤 안전장치나 위기대처능력도 필요로 하지 않는것을 의미한다.


민주주의, 공화정치는 슈퍼맨이나 플라톤과 같은 철인의 출현을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평범하고 그래서 다른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내 생각보다 좋은 생각은 인정할줄 아는 방법론으로서의 절차가 중요하다. 그러기에 지금 당권파가 보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민의 대표가 되어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그 자세는 그 자체로 이미 F다.


우리는 슬퍼하면서 올 대선을 기다리게 되었다. 많은 악재들 속에서 이런 끔찍한 악재를 쏟아낸 당권파는 자신들이 어떻게든 국민을 다독거릴수 있으리라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들의 손을 거부할 것이다. 내 한표를 사기쳐서 가져간 그들의 도움은 필요없다. 그저 나는 그런자들이 없는 세상에서 서로가 합의한 정당한 룰로 겨루는 그런 세상이 그나마 조금 더 나은 세상이라는 생각으로 오늘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