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쾌한 복수 대신 따뜻한 회복을 보여주는 김탁구

2010. 9. 9. 09:45Eye


1. 통쾌한 복수 대신 따뜻한 회복을 선택한 제빵왕 김탁구


통쾌한 복수대신 따뜻한 회복, 지금까지 한국 드라마의 대표적인 테마라면 역시 통쾌한 복수다. 얼마나 처절하게, 얼마나 끈질기게 복수하느냐로 대부분의 드라마는 시청자의 진을 뺀다. 뻔한 스토리텔링으로 이제는 어떻게 복수하면 되는지 한국 드라마를 참고하면 될게다. 하도 그러다보니 이제는 별 희안하고 말도 안되는 복수극을 벌인다. 막장드라마로 유명한 아내의 유혹, 분홍립스틱에 나오는 복수는 말로 형언키 힘들정도가 되었다.

제빵왕 김탁구는 모든 복수를 위한 조건을 갖춘다. 어릴적 어머니와 이별한 아이, 실명할뻔한 사고, 여자까지 빼앗겼고, 장남으로 가져야 할 자리도 빼앗겼다. 이정도 되면 한국 드라마 뿐만 아니라 일본 드라마, 중국 드라마, 미국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칼을 갈고, 무예를 익히고, 스승을 만나 실력을 갈고 닦아 복수의 칼을 뽑아야 한다. 치열한 싸움 끝에 정의는 승리한다는 기치를 높이 내걸만 하다. 하지만 제빵왕 김탁구는 그 뻔한 복수극을 벌이지 않는다.

유경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그 역시 딸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던 인물이다. 그가 탁구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아버지다운 일을 해보려고 한다. 결혼을 앞둔 유경에게 자신의 딸이 아니라며, 자신과 같은 초라한 이가 유경의 아버지일리가 없다며 스스로 물러난다. 조금 억지스런 설정임에 분명하지만 그래도 복수보다 회복을 테마로 선택한 김탁구의 스토리텔링에 어울리는 전개다. 이는 일종의 복선으로 보인다. 앞으로 서인숙과 비서실장 한승재, 그들과 마준의 회복을 암시한다. 복수 대신 회복을 선택한 제빵왕 김탁구, 앞으로의 남은 전개를 어떻게 맛있게 끌어갈지 기대해본다.


2. 신유경과 구마준의 어울리지 않는 듯한 어울림


복수로 시작된 둘의 만남은 시간이 가면서 서로의 처지가 자신과 너무도 비슷함을 느끼며 연민에 빠진다.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에게 미움을 느끼며 성장한 유경은 부모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이용당한 마준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좋아했던 할머니를 부모의 욕망때문에 잃은 마준, 출생의 비밀을 알면서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시니컬하게 내려보며 명령하는 마준, 할머니의 죽음에 일종의 책임을 느끼면서도 친아버지와 친어머니를 배신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거기서 벗어나 자신만의 주장을 강하게 하지도 못한채 자신에게 속한 굴레에 매여 챗바퀴를 굴리는 다람쥐같은 자신의 모습을 본다.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 어쩌면 그 모습은 아버지를 떠났지만 꿈속에서 아버지에게 빌며 떠는 유경의 모습과 겹쳐보였을 것이다.

결혼식, 둘만의 결혼식을 시작하고 초대받은 사람은 없었다. 가족들 몇몇만 자리에 앉아 지켜보고 있는 그 곳에서 둘만의 결혼식이 치러진다. 평생을 함께 할 사람으로 인정하겠느냐는 주례사의 질문에 유경은 한동안 말이 없다. 그 짧지만 긴 시간의 망설임의 시간이 아니다. 의지와 결단의 시간이다. 이제 결코 뒤돌아보는 일 없이 마준과 함께 하겠다는 결의의 시간이었다. 서로의 상처를 보다듬으며 서로를 의지한 커플의 결혼, 어쩌면 유경은 탁구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존경했던 것이었음을 깨닫는 시간이었을게다.


3. 그럼에도 마음에 안드는 한가지, 유경의 우유부단함과 그림자 자경


초반 유경은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열혈 대학생으로 등장했다. 여러 사회과학서적들을 읽고, 데모에 주동자로 앞장서고, 경찰에 쫒기고, 고문까지 받는 그런 반골기질을 가진 존재였다. 그러던 그녀가 갑자기 바보가 된다. 거성에 입사를 하고 수석으로 멋진 등장을 한다. 여기까지 그나마 괜찮다. 반전이 시작될 때, 뭔가 유경을 둘러싼  새로운 사건이 등장하리란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 수석으로 합격한 유경은 바보였다. 자신을 끔찍하게도 미워하는 거성가 사람들을 대할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자신을 미워할거라는걸 알면서도 거성에 입사했고, 그들과 마주치는 비서실에 배속되었으면 뭔가 자신만의 준비가 되어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그저 당하고, 당하고, 또 당하고, 그리고 복수를 결심한다. 바보같다...... 유경은 더 이상 모자를 쓰지 않는다. 모자를 벗은 유경은 그저 우유부단한 바보일 뿐이다.


자경은 언제 나오는지 찾아봐야 할 정도다. 차라리 유경은 등장씬이라도 많지만 자경은 얼굴조차 제대로 비춰지지 않는다. 감독에게 미운털이라도 박힌걸까? 거성의 장녀로 처음 자경은 아버지 구일중 회장을 찾아가 자신의 능력을 어필한다. 구일중 회장은 자경을 인정한다. 뭔가 그때부터 자경을 통한 새로운 사건 전개가 하나쯤 일어나고 그것이 퍼즐을 푸는 한 열쇠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자경은 구일중 회장의 성격을 닮아 나름 명석하며 사리가 분명했다. 그런 인물이 하나쯤 합리적으로 탁구를 지원하는 지원사격을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드라마에서 자경은 그 이후로 그림자가 된다. 거성가 식구들이 모이는 자리에만 등장하고, 거기서 다른 인물들의 그림자같은 지극히 존재감이 없는 그런 캐릭터가 되고 말았다. 이야기를 끌어가기에 좋은 한 요소를 배제시켜버린 것이다. 차라리 탁구, 마준, 유경의 삼각관계를 조금 줄이더라도 자경의 역할을 조금 더 강화했어야 했다.

유경의 우유부단과 미련함, 자경의 그림자놀이는 이 드라마의 치명적 약점이다. 그것은 곧 이 드라마가 여성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숙의 악함, 탁구 친모 미순의 우유부단, 유경의 미련함, 자경의 그림자놀이 같은 여성관이 이 드라마에 배여있다. 아무리 드라마의 조연들은 주연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이런 바보같은 캐릭터설정으로 탁구를 드러나게 해서는 안된다.

통쾌한 복수 대신 따뜻한 회복을 보여주는 김탁구
http://jeliclelim.tistory.com/439
JelicleLim (2010.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