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구절] 비둘기가 되어 광야로 날아감

2007. 9. 21. 12:39Life



[한구절] 비둘기가 되어 광야로 날아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시편 55:22)
Cast your cares on the LORD and he will sustain you; he will never let the righteous fall. (Psalms 55:22) 


시편 55편은 다윗의 시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그가 모진 고난을 당하고 난 후에 쓰여진 시로 보인다. 압살롬의 반역의 때로 보는 이도 있다. 어쨌건 시편 55편을 읽다보면 시인은 얼마나 그 고통이 심했던지 모든 것을 버리고 비둘기 같이 훨훨 날아서 아무도 없는 (오직 하나님만 있는) 광야에 가서 피하고 싶다고 한다(6,7).

6. 나는 말하기를 만일 내게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7.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머무르리로다 (셀라)


그 이유는 뒤에 나온다

12. 나를 책망하는 자는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그는 곧 너로다 나의 동료, 13.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12,13)


영어로 보면 본문 내용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12. If an enemy were insulting me, I could endure it; if a foe were raising himself against me, I could hide from him.
13. But it is you, a man like myself, my companion, my close friend,


차라리 적이 나를 모욕했더라면, 차라리 원수가 반역을 일으켰더라면 나았으리라. 그런데 그것은 바로 너였다는 것이.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이정도면 정신분열증에 걸리거나, 아니면 최소한 하늘에 대고 항변을 할 구실은 많을게다. 그것도

14. with whom I once enjoyed sweet fellowship as we walked with the throng at the house of God.


어떤 친구냐면 하나님의 집에 함께 다니며 재미있게 담소하며 다니던 그런 친구였다. 이 친구의 모습을 보니 갑자기 [개독교]잡기에 혈안이 된 어떤 어리석은 사람들이 생각이 난다. 하나님의 집에 함께 다니며 담소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이를 결국은 배반하고, 그 등에 칼을 들이대는 상황이 벌어졌다. 등에 칼을 맞은 사람은 차라리 이 칼이 원수의 칼이었으면 하는 한스런 독백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떤 이들은 이 글을 보고 또 이런 생각을 하겠지... 과연 개독스럽구나... ^^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보아야 할 것은 칼을 휘두른 그 사람의 모습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보아야 할 모습은 칼을 휘두른 사람이 아니라 맞은 사람의 모습이다. 그는 그 순간까지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순간 그는 하나님을 의지한다. 더 깊이 신뢰한다.


1. 비둘기와 광야

시인은 차라리 비둘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품어본다. 비둘기는 하늘을 집으로 삼는다. 인간은 두 발로 땅위에 존재한다. 언젠가 비행기를 타고 그 창 아래 저 밑에 위치한 도시의 모습을 보았다. 가까이 있을때는 그래도 번쩍거리는 불빛들이 보였다. 밤중 그 불빛이 없었다면 나는 거기에 도시가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태양이 떠올라 세상이 환하게 되었지만 저 아래의 세상은 마치 커다란 지도를 보듯이 선과 면으로 그려진 곳이었다. 고도가 올라갈 수독 더 이상 저 아래의 세상은 살아있는 존재를 인식하기 어려운 곳이 되어간다.
발을 땅에 붙여야만 살아갈 수 있는 곳에서 벗어나 조금 더 높은 차원의 경험을 지닌 존재는 2차원적 사고에 매인 세상에 연연하지 않는다. 아니, 그 세상을 초월해서 그 세상을 내려다보게 된다. 거기엔 집착이나 욕망이 사라진다. 연민과 슬픔이 자리를 차지한다.
시인은 자신이 그 비둘기가 되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 존재하는 그 세상으로 떠나기를 바란다. 그 세상의 이름은 온갖 보화가 가득한 지상천국, 유토피아와 같은 곳이 아니다. 그곳의 이름은 "광야"이다. 이 광야는 시인이 있기를 원하는 가장 높은 곳이 된다.


2. Cast your cares on the LORD

시인은 자신의 신세타령을 하고 시를 끝내지 않았다. 시인은 그 어려운 상황속에서 오히려 믿음을 잃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그 안에서 그는 비둘기가 되고, 광야라는 높은 곳에 오른다. 거기서 그는 여전히 실재하고, 여전히 살아 있는 하나님을 만나며, 그 하나님이 자신의 걱정을 풀어놓을 분임을 다시 한번 인식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말한다.

Cast your cares on the LORD


3. He will never let the righteous fall.

그는 의인이 추락하는 것을 "결코" 버려두지 않는 분이다. 이것은 직접 고통을 겪고, 가장 가까운 친구의 배반을 경험한 사람이 몽환상태에 지껄이는 헛소리가 아니다. 이것은 비둘기가 되어 가장 높은 광야의 체험을 한 시인의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건 결론인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를 세상에 드러낸다. 그리고 그 의를 따르는 이를 부른다. 부른 이를 결코 추락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를 다시 비둘기로 부르고, 자신의 광야로 이끈다. 이 광야는 세상을 내려다보는 가장 높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