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코 - 조금 덜 불평등한 사회를 갈망하며 ...

2008. 4. 14. 22:00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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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구조는 일등이 모든 것을 가지는 구조로 개편되어 가고 있다. 이는 정보화, 산업화와 함께 급격한 변화로 밀어 닥치고 있는 현실이다. 누구나 두 번째로 좋은 노래를 듣기 보다는 첫 번째로 좋은 노래를 원한다. 10위권 이하의 가수의 CD를 사든, 베스트셀로로 누구나 귀에 꼽고 다니는 노래를 담긴 CD를 사건 가격에 차이는 없다. 그래서 이제 일등과 이등 이하의 존재는 감히 형용하기 힘든 거리를 가지게 된다.
파레토가 말한 20/80의 사회에서 이제는 1/99의 사회로 개편되고 있는 것이다. 일등은 모든 것을 독식하고 나머지는 패배감에 쌓여 절망하게 되는 것이다. 모두는 일등이라는 성공의 신화를 이루고자 노력하고, 끝내 거기서 좌절하는 다수는 자신의 무능함에 절망하게 된다. 이 신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많은 경영서적들은 나오지만 정작 그 책을 통해 돈을 만지게 되는 것은 출판사와 책의 저자일 뿐이라는 사실은 그 책을 손에 들고 있는 이들을 다시 한번 바보로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로버트 프랭크가 쓴 승자독식사회는 이러한 사회 구조를 적절히 짚어간다. 우리는 어쩔수 없이 그 사회,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그 사회속에서 살아간다. 승자는 승자이기에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그 일등의 위치를 고수한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구조에서 이등이 일등이 되는 기적은 왠만해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승자독식사회 상세보기
로버트 프랭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이긴 자가 너무 많은 부를 차지하는 현대사회의 메커니즘 분석서! 승리한 1등이 모든 부를 독차지하는 현대사회. 이런 불합리한 시스템은 왜 작동하고 어떻게 유지되는가?『승자독식사회』는 99% 부를 차지한 1% 승자들의 비밀을 살펴보며 무한경쟁의 본질을 파헤친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승자독식사회'가 점점 강화되는 이유를 찾아보고, 이 제로섬 게임을 멈출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본문은 NBA 농구선수, 할리우드 연


우리는 열심히 일할 것을, 열심히 공부할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충분한 보상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한다. 하지만 정작 이 사회 구조는 우리의 열심과 기대와는 다른 승자에 대한 지나친 독식구조를 가지게 된다. 책들중에 베스트셀러라는 것이 있다. 많이 팔린 책,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 책을 읽어야 한다는 중압감을 주는 책들이 있다. 누구나 다 읽었으리라는 생각에 나도 그 책을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책이다. 그 책 말고 다른 책을 손에 들고 싶기는 하지만 그랬다가 나중에 대화에 소외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른 책을 내려놓고 그 책을 손에 든다. 하지만 베스트셀러라는 책 중에 끝까지 읽어보고 속았다는 본전생각을 하게 하는 책들이 예상외로 많다는 것을 아는가? 대부분 책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는 저자의 인지도와 또 다른 마케팅에 의해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진 책들은 결국 모든 이가 사서 보게 하지만, 정작 그 외에 다른 좋은 책을 사장시키는 결과를 낳게 한다. 나는 베스트셀러라고 이름 붙여진 책을 사기 위해 다른 책을 내려 두어야만 했으니 말이다.

모두가 듣는 음악을 들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한때 텔미의 열풍에 너나 없이 그 댄스를 추고는 인터넷으로 UCC 동영상을 올리는 일도 있었다. 어찌나 많은 아이들이 그 댄스를 출줄 아는지 감히 조사를 해볼 염두가 안난다. 차라리 그 댄스를 추지 못하는 아이들을 조사해서 “왕따”목록으로 만드는 것이 편할 것이다. 법률시스템과 의료시스템, 교육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이 사회가 가진 거의 모든 분야는 승자의 이익에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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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그래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서 일등을 추구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시스템을 좋은 것으로 간주하는 사회는, 그래서 그 승자에게 그 승리의 댓가 이상의 모든 것을 헌납하는 사회는 더 이상 이등 이하의 존재들이 살아가기에 좋은 토양은 되지 못하고 만다.

이러한 승자독식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없을까? 이 사회가 신자유주의화 되어가며 경제라는 키워드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검색어가 되어야 하고, 이에 따라 발생하는 모든 것은 지극히 자연적인 흐름으로, 결과적인 승자독식은 당연한 귀결일까? 과연 여기에 더 이상의 논의는 필요 없는 것일까? FTA는 시대의 흐름이고, 의료보험의 민영화는 선진화로 가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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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코(SiCKO)라는 영화를 봤다. 무척 마음에 드는 영화다. 마이클 무어, 그의 작품을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로, 첫 번째 본 영화는 화씨 9/11이었다. 그 영화에서 마이클 무어는 911테러에 대응하는 부시와 미 행정부의 엉망인 모습을 꼬집고, 오히려 즉각적인 대응보다는 그 사건을 기화로 부시는 평소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 - 이라크 점령, 중동 석유 뺏기 -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번 식코에서는 미국이라는 사회의 시스템이 얼마나 엉망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아메리카드림의 원조, 지상 천국이라고 불려지는 그 땅이 사실은 자국내 국민들에 대한 건강조차도 책임질 수 없는 그런 척박한 곳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911테러 때 영웅이라고 부르며 여기저기 불려 다녔을 사람들의 폐에 문제가 생겨도 제대로 된 진료조차 받지 못하게 하고 그들을 내쳤을까? 오죽했으면 그들은 관타나모의 수용소에서 메가폰을 들고 저 수감자들만큼만 치료를 받게 해 달라고 소리를 질러대야 했을까? 오죽했으면 그 콧대높은 미국인들이 쿠바라는 그들이 생각하기에 있어서는 안 될 그 지옥같은 곳에 들어가서 거기서 미국내에서는 120불에 구해야 하는 약은 단돈 50센트에 구입하며 눈물을 흘려야 했을까? 거기서 미국인들은 미국에서 받지 못했던 의료를 받게 된다.

나는 미국인을 좋아한다. 적어도 내가 아는 미국인들은 타인의 슬픔을 위해 기꺼이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 놓는 사람들이다. 내가 아는 그들은 누군가를 위해 고통을 짊어지는 사람들이었다. 크로아티아에서 만났던 한 미국인 선교사는 아들이 살던 고국인 미국을 그리워하며 울 때 아이를 끌어안아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기꺼이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고국을 떠나고, 모든 것을 버리고, 희생을 감수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많은 미국인들은 정직하다. 많은 미국인들은 이웃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런데 승자독식의 시스템은 그런 미국인들의 감정을 빼앗고 있다.

영화 식코에 나오는 한 장면은 이러했다. 의료보험회사에 근무하는 한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의 일은 전화상담을 받는 것이다. 전화를 받고 의료보험을 집행할 수 있는지 여부를 알려주는 것이 그녀가 하는 일이다. 그녀는 자신이 받았던 한 전화의 내용을 들려준다. 신혼부부, 보험 급여를 탈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하는 그 목소리에 급여를 받을수 없는 경우들이 있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고 한다. 몇주 후 다시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러 이러한 사유로 보험금여를 지불하지 못한다고 통보를 했다. 그 이야기를 하며 그녀는 울었고, 스스로를 Bitch 라 부르며 자신은 의자에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한심한 xx 라고 흐느낀다. 누가 감정이 풍부한, 그래서 누군가의 기쁨을 보면 함께 웃을 줄 알고, 누군가의 슬픔을 보면 안타까워할 줄 아는 이 여성의 감정을 매마르게 하는가? 이제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싶다는 여자의 말은 이미 그 사회 시스템은 인간이 인간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준의 정도를 지나쳤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금 덜 불평등한 사회, 그것만이 현 시스템에 대한 대안일까? 모르겠다. 이번 총선결과로 나온 많은 국민들의 무관심과 특히 집중된 20대의 무관심은 이미 그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조차 알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투표를 하건 하지 않건 그것이 크게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다수가 모두 동일한 선택을 함으로서 그것은 크게 작용하게 된다. 소수의 승자독식의 구조는 다수의 방관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것은 한번 결정되는 순간 더 이상의 변화를 주기 힘든 구조로 고착되어간다. 미국의 모습이고, 이제 곧 우리나라가 가지게 될 모습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에 살게 하셨다. 하지만 이 땅에 살게 하신 이유가 이 땅에서 다른 사람들을 본받으며 그들을 모방하며 살라고 우리를 여기 버려두신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다르게 사는 존재여야 한다. 다르게 생각하는 존재여야 한다. 세상의 승리에 집착하지 않되, 세상의 승자에게 모든 것을 독식하게 만드는 그 구조에서 기꺼이 승자의 위치를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

SBS에서 “맨발의 의사들” 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한 적이 있다. 전체를 보지는 못했지만 전반부의 내용은 무척 놀라웠다. 쿠바는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악마의 소굴같은 곳이다. 하지만 쿠바는 혁명과 함께 의료제도를 무상으로 모든 국민들에게 확대한다. 의과대학을 만들고 전액지원과 함께 용돈까지 준다. 그곳에서 교육을 받는 쿠바의 의사들은 기꺼이 자신들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간다.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는 그런 의사들이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선전국들만을 바라보며 배워왔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미국을 보며 배워왔다. 왜냐하면 유럽쪽은 사회주의적 색채가 강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유럽을 멀리했고, 그 영향은 고스란히 한국에도 전해져 왔다. 알건 모르건 우리가 보는 거의 대부분의 영화는 미국영화다. 아니면 졸렬하기 짝이 없는 홍콩 느와르 정도가 전부다. 의미있는 유럽영화,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는 영화는 이제 한국인의 눈에는 특히 20대와 30대의 눈에는 지겨운 것이 되어 버렸다. 나 역시도 쿠바의 의료체제에 대한 이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까지는 쿠바에 대해서 막연한 공포와 거리감만이 있었을 뿐이다. 물론 그 나라가 모든 면에서 잘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나라의 의사교육을 받고 있는 의대생들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은 어쩌면 오늘 교회에서 나와야 할 바로 그 말이었다. 나는 돈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기꺼이 가겠다는, 아니 그곳에 가야만 한다는 그들의 말은 오늘 교회에 모여 세상 속의 성공을 바라보는 많은 이들의 가면을 벗기는 하나님의 질책으로 들려온다.

실천꺼리 1 : 영화 [식코]를 보자.
실천꺼리 2 : SBS 다큐멘터리 [맨발의 의사들]을 보자
모두 2008/04/11 - [서평, 영화평] - 승자독식사회에서 식코를 보다 - 사람들 인생에 관여하기 싫어하는 Bitch ?
에 있습니다.

[칼럼:20080413] 조금 덜 불평등한 사회를 갈망하며 ...
http://jeliclelim.tistory.com/209
JelicleLim(2008.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