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기아의 책임을 묻다!!!

2008. 2. 14. 01:15서평/[서평] 인문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상세보기
장 지글러 지음 | 갈라파고스 펴냄
전 세계 기아의 실태와 배후 요인들을 대화형식으로 알기 쉽게 소개! 부족한 것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 음식점에서는 손만 조금 댄 반찬들이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음식을 낭비하며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어느 곳에서는 밥 한끼, 빵 한 조각을 먹지 못해 죽어가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유

장 지글러는 제네바 대학 교수로 실증적 사회학자로 활동하며 빈곤과 사회구조의 관계에 대한 글을 발표하는 기아문제연구자 중 한사람이다. 그는 우리 시대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불편한 진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우선 이 글을 읽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어림잡아 3분이 걸린다고 하자. 그 3분동안 매 5초마다 10세 미만의 아동 한명은 영양실조로 죽어간다. 이 글을 3분만에 읽는다고 하면 그 3분동안 36명의 아동이 암이나 불치병, 혹은 갑작스런 교통사고가 아니라 굶어서 죽는다는 뜻이다. 세계 인구의 1/7이 만성적 영양실조에 걸려있으며 기아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은 2000년 이후 1,200만이나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더 불편한 것은 다음과 같다. 19세기이후 산업혁명의 결과로 생산성은 과거에 비해 눈부시게 향상되었다. 덕분에 마르크스는 이제 명함도 못내밀정도가 된 것이다. 물질적 결핍이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기아의 문제도 사라져야하는데 그것은 오히려 반대의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식량은 지구상의 모두가 충분히 먹고 넉넉히 남을 정도가 생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지구촌에는 굶어죽어가는 사람들의 숫자만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간첩리철진은 슈퍼돼지를 가져갈 것이 아니라 선진국의 쓰레기를 수입해서 무상 처리하는 공장을 북한에 만들도록 건의했어야 한다. 그러면 북한인민들은 그래도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유전자조작한 슈퍼돼지가 기아를 해결할 것이라는 희망은 순진하다못해 어리석다. 지구는 현재 인구의 두배가 되는 인구도 먹여살릴 수 있을 정도라고 장 지글러는 말한다. 그렇게해도 모두 2,400 - 2,700 칼로리의 먹을 거리가 공급된다는 것이다.

조금 더 불편한 진실을 들여다보자. 서구의 부자들이 믿는 신화가 있다. 그것은 자연도태와 약육강식이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경제의 바닥에 흐르는 불편한 진실이다. 지구는 이렇게 많은 인구가 살기엔 부족하고 그래서 기아는 인구조절을 위한 자연의 올바른 선택이라는 주장이다. 결국 비만은 병이 되어 비싼 의료비를 지불하며 고쳐야하는 것이 되고, 기아는 자연이라는 신의 선택받지 못한 자들의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이 되고 만다. 그들은 이 땅에 살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들어간 김에 조금 더 들어가보자. 대체 이따위 형편없는 개념은 누가 만들어서 누가 믿고 있는걸까?
이 개념은 멜서스의 인구법칙에 대한 논문에 기초하고 있다. 논문은 세계 인구의 증가는 기하급수적인 반면, 식량의 증가는 산술서열을 따르므로 식량증가가 인구증가를 따라갈 수 없고, 그래서 가난한 가정, 국가, 민족은 자발적 산아제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거기에 더해서 그들에 대한 사회보조나 지원은 중단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기아는 이 사회에 필수적인 기능을 하므로 이 자연스러운 수단을 애써 막으려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렇게 배워왔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여겨왔다. 그래서 우리는 정작 모든 인구가 충분히 먹을 식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소에게 먹이고, 바닷물속에 수장시키면서도 슈퍼돼지와 땅속에 감자가 땅위엔 토마토가 열리는 기형식물을 만들기위해 혈안이 되어 왔다. 그것이 인류의 미래를 책임이라도 질것인양 여기면서 말이다. 게다가 기아로 죽어가는 이들을 "게을러서 제 입에 풀칠도 못할" 상종못한 인간말종 정도로 여겨왔던 것이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하면 될까? 더 불편한 진실로 들어간다.
세계는 자본주의의 시대다. 이제 더 이상 마르크스의 "마"소리도 내지 못한 상황까지 왔다. 그는 *틀렸다*. 하지만 그것이 자본의 폭력성을 오히려 정당화시켜주는 반대급부를 보이고 말았다. 마르크스가 틀렸으니 자본주의는 맞는 것일까? 그렇게 믿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충분한 자본을 소유한 이들이다. 그들은 이제 신자유주의를 선보이며 이것이 미래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선언한다. 그 길을 걷지 않으면 과거 마르크스를 따랐던 이들처럼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을 걷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부록에서 주경복 교수는 말한다. 잘 먹고 훈련받은 헤비급 선수와 영양실조에 걸린 라이트급 선수를 같은 링에 세워두고 거기에 엄격한 룰을 적용하는 국제 심판을 세우는 것은 Fair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UnFair 한 것이다. 심판이 있다고 공정한 경기라고 할수 없다!!!

세계의 기아를 해결하기 위한 자원은 이미 충분하다. 문제는 구조다!!!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동정어린 기부도 필요하지만 근원적인 해결은 되지 않는다.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조가 바뀌어야만 한다.

책을 처음 보았을때 당연히 이 책은 기아문제를 담고 있으며 그래서 자발적 참여를 통한 세계적 구호 기금의 조성역할을 할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며 기아의 근원적인 문제로 신자유주의를 꼬집는 장 지글러의 말엔 크게 동감할 수 밖에 없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의 관점은 "그들은 불쌍하게 죽어가고 있고, 우리는 행복을 누리고 있으니 도와주자"라는 정도에 머물러왔다. 지금까지 지구상의 기아를 다룬 많은 이들의 수필체의 글들은 그러한 우리의 감성을 자아내고, 그래서 눈물을 흘리며 동참하게 해 왔다. 그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 땅의 구조적 악을 바로 보고, 그 악에 저항할 투사도 필요하다.

이 책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대화하듯 기록한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묻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한다. 그래서 어려운 용어나 복잡한 문장이 없다. 편하게, 마치 어린 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신의 무릎에 아이를 앉히고 그 눈을 들여다보듯이 하며 말을 이어나간다. 짧은 질문속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이 땅의 기아를 어른들은 이해하지 않을지 몰라도 이 책을 읽는 아이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 그 아이에게는 "돈"이라는 "맘몬"의 유혹이 덜 다가왔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날은 빛 없는 어둠이 아니며 빛남 없는 캄캄함이 아니냐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
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기윤과 너희 우상들과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든 신들의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

내가 너희를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리라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이라 불리우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아모스 5:20-24)

  
그들이 기대했던 여호와의 날은 기쁨의 축제일이다. 왜냐하면 그 날은 자신들의 뜻하는 바가 모두 이루어지는 날이기 때문이다. 과거 다윗 왕조가 누렸던 것 같은 성대함이 있는 날이다.
하지만 여호와가 말한다. 그 날은 너희에게 빛이 아니라 어두움이 될 것이라고, 나는 너희의 절기와 성회와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 어떤 것도 받지 않겠다고, 심지어 내 앞에서 노래도 하지 말고, 악기 소리도 멈추라고 말한다.
왜일까? "오직" 그가 원했던 것은 정의와 공의였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했다면, 이것 때문에 그들이 감사의 제사를 드렸다면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셨을게다. 하지만 그들은 정의를 버렸다. 공의를 멸시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을 멸시한 것과 다를바가 없다.
이제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그들이 섬겼던 우상을 따라 가는 것 뿐이다. 그들의 모양은 하나님께 예배했지만, 그들의 마음은 우상을 존경했다. 그들의 입은 여호와를 불렀지만, 정작 그들의 기도의 대상은 바알과 아세라, 일월성신과 맘몬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예전 이름은 이스라엘이고, 지금 그들의 이름은 교회가 되려 하고 있다...

가장 불편한 진실로 들어가본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정의" "공의"다. 이것을 제외한 그 어떤 화려한 것으로도 그의 진노는 가라앉지 않는다. 이 땅에 "그"의 "정의"와 "공의"가 보이지 않는 것은 기아로 고통받는 이들이 오히려 늘어가고 있다는 것에 있다.

혹자는 한국교회는 후기기독교로 접어들고 있으며 곧 유럽과 같은 형세가 될 것이라 말한다. 그럴수도 있다. 유럽과 서구의 기독교는 맘몬과 경제라는 신에게 마음을 주어 버렸다. 그들은 여호와의 날을 기뻐하며 기대했지만 정작 그들이 따랐던 것은 허울좋은 신자유주의의 물결이었고, 이 물결을 받들어 모시는 한 그들은 그들이 만든 신들의 형상을 지고 따라 갈 뿐이다. 물론 아직까지 그들은 허울좋은 "기독교인"이다.

한국 역시 거센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일고 있다. 소위 "경제대통령"의 출현은 많은 이들의 기대에 보응이라도 하듯 신자유주의의 쓰나미를 이 땅에 몰고 올지도 모르겠다. 그 결과는?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것은 이 땅에 국한된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더 많은 기아로 죽어가는 이들의 파이를 빼앗아 먹을 수도, 혹은 손에 든 파이를 빼앗길 수도 있다. 이 게임은 Zero-Sum 게임일지는 몰라도 결코 Win-Win 게임은 되지 못한다. 결국 우리는 그 앞에서 "맘몬"을 실질적 주인으로 섬길 것인지, 아니면 "그"의 정의와 공의를 따를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에는 험한 댓가가 지불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기아의 책임을 묻다!!!
http://jeliclelim.tistory.com/176
임성국[JelicleLim] 2008.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