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

2020. 3. 21. 19:12하루의끄적임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사실 나도 잘 쓰지 못하는 글을 누군가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가르친다기 보다는 함께 글을 써보려고 한다. 

매일 하나의 단어를 책을 펼쳐서 찾는다. 오늘은 "표면"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두 아이와 나는 "표면"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글을 쓰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글을 블로그에 공개해보는게 어떻겠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아이들은 펄쩍 뛰었다. 아직 자신들의 글이 누군가에게 읽혀지고, 거기 달릴 신랄한 비평을 접하는 것이 두려운 듯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것이다. 자신의 사진이 올라오고, 자신의 신상이 드러나고, 자신의 생각이 누군가에게 전달될 때 부끄러움과 함께 민망함이라는 감정을 가지게 된다. 아이들도 그와 비슷하다. 어쩌면 이런 속성이 바로 '표면'과 '내면'을 나누는 경계가 되는 것은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 마음을 숨기고 싶어한다. 누구에게도 쉽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속마음을 들키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반면, 속마음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다. 굳이 묻지 않음에도 자신의 내면의 생각을 밝히고 그것을 주변에 알리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속에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밝히지 않으며 가면을 쓰고 대중과 비슷한 모습으로 숨어지내듯 지내는 사람들은 세상의 흐름을 따라 사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반면 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며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의 흐름에 대해 '왜?'라고 묻는 사람은 세상의 흐름을 바꿀수 있는 단초를 드러내는 존재들이다.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가끔 소수의 사람들을 통해 던져지는 '왜?'라는 질문은 생각의 스펙트럼을 넓힐수 있는 좋은 기회다. 

표면과 내면, 그 둘은 일치하는 것이 좋다. 내면의 모습이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부끄러움일수도 있고, 때로는 스스로에 대한 추함의 경멸일수도 있다. 그래서 표면과 내면을 일치시키고 그것을 외부로 드러내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외부의 질타를 받을 수도 있고, 한심한 눈빛을 견뎌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일단 거치고 나면 표면과 내면이 일치한 사람은 강력한 추진력을 가지게 된다. 무엇을 하든 사람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된다. 

표리부동과 표리일체, 이 둘 사이에는 강한 벽이 존재한다. 표면과 내면의 일치를 다들 원하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은 소수다. 속마음을 드러내는 용기, 다시금 필요한 이 시대의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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