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찌할꼬

2007. 11. 8. 08:14Life

행 2:37-47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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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오순절의 특별한 성령의 역사


오순절이었습니다. 오순절날 제자들은 한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때 성령의 특별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제자들이 방언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방언은 무척 특징이 있는 방언이었습니다. 오순절날 여러곳에서 예루살렘으로 온 사람들은 자기들의 방언이 들리는 특이한 경험을 했습니다. 제자들 한사람 한사람이 각각 다른 방언을 한 것인지, 아니면 제자들은 그냥 말을 했는데, 듣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방언으로 알아들은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거기 모인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하는 말을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시대상황은 어떻습니까? 예수는 십자가에 죽었고, 그 잔당들을 제거하기 위해 혈안이 되던 때입니다.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다시 모이기는 했지만 혹시나 언제라도 잡혀서 모진 고문을 당하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골방에 모여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모여 기도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그들에게 성령의 특별한 임재가 있었고, 제자들은 갑자기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가지고 뛰쳐나가서 사람들 앞에서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1. 베드로의 특별한 설교


베드로는 사람들 앞에서 설교를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너희가 그렇게 기다려왔던 메시야가 바로 너희가 십자가에 죽였던 그 예수다라는 내용의 설교를 합니다.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바로 이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거기 예루살렘에 모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우선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마음에 찔림을 받는다는 것은 아직 그 마음이 바른 길로 돌이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바른 말을 하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전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미 그 마음에 바른 길로 돌이키고자하는 조금의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혹은 자신의 잘못을 지적받았을 때 마음에 찔림을 받습니다. 그 사람은 적어도 바른 길로 돌아설 기회를 가진 것입니다.


2. 사도의 가르침을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는 사람들


설교자가 설교를 할 때 그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편으로는 설교자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반대로 열심히 설교를 했는데도 전혀 마음에 찔려하는 사람이 없다면 둘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는 거기가 죄가 전혀 없는 천국이거나, 아니면 죄를 전혀 깨닫지 못하는 지옥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알게 모르게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설교자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걸리는 것이 전혀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심지어 설교를 하는 저 자신도 제가 설교를 하면서 찔림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분명히 찔림을 받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고치면서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은 베드로에게 와서 말합니다. 그 마음에 찔림을 가지고 와서 말합니다. 우리가 어찌해야 합니까? 우리가 큰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찌해야 합니까?


3. 우선 이렇게 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에게 온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회개하십시오.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며 죄 사함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얻으십시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42절에서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습니다. 서로 교제하면서 떡을 떼고, 기도에 힘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 또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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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가 이 패역한 세대 속에서 함께 멸망당하는 길을 걷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별된 사람으로 바르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어떤 것일까요? 우선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종종 교회 밖에서 자기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봅니다. 교회를 다녀야만 기독교인이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런 말을 합니다. 예수님이 피를 흘리며 값을 치르시고, 그리고 이 땅에 교회를 세우면서 그곳에 모이기를 힘쓰라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면서 교회는 출석하지도 않고, 성경을 읽지도 않고, 혹은 읽더라도 자기 마음대로 곡해해서 읽으면서 어떻게 그 사람이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어떻게 기독교인이라는 호칭을 그렇게 마음대로 가져다 붙일 수 있습니까?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한 일, 이년 학교를 안 나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학생이 학생입니까? 벌써 퇴학조치가 내려졌을 겁니다. 직장다니는 사람이 직장에 말도 안하고 한 열흘쯤 무단결근을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자동으로 해고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라는 호칭은 자기 마음대로 가져다가 붙이곤 합니다. 문제가 있는 거죠.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교회를 출석하며 설교와 성경 공부등을 통해 말씀을 제대로 배워가는 과정 중에 있어야만 합니다. 가르침을 받는 것이 필수입니다. 배워야 합니다. 이 배움은 선택이 아닙니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배워야만 합니다. 우리는 가르침을 받아야만 합니다!


5. 또 무엇을 해야 합니까? 성도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이 교제는 그저 주일날 한번 와서 얼굴보고 인사 나누는 정도의 교제가 아닙니다. 더 깊이 있는 교제를 의미합니다. 예전에 제 아들 녀석이 감기가 심하게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 밤중에 제 아들 녀석이 열이 심하게 나서 잠을 자지 못하고 깨어서 웁니다. 저는 그때 많이 피곤했습니다. 잠도 제대로 못잔 상태였고, 그래서 무척 피곤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감기 때문에 잠도 못자고 울고 있는데, 그 옆에서 그냥 세상모르고 코를 골면서 자고 있을 부모는 없을 겁니다. 아무리 피곤하고 아무리 내 몸이 아파도, 자식이 병으로 힘들어하고 있으면 부모는 그 옆에서 밤을 새면서 아이를 돌보는 법입니다. 아이를 돌보면서 어떤 생각을 합니까? 이 녀석 때문에 내가 잠도 못자고 이게 무슨 고생이야하는 생각이 듭니까? 아니요. 부모는 아이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는 게 내가 고생하는 것보다 더 마음이 아픈 법입니다. 아이가 아파서 잠도 못자고 우는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잠도 못자고 아이를 옆에서 간호하면서, 그래서 몸은 많이 피곤하지만, 그래도 부모는 아이가 새벽녘에 열이 내리는 것을 보면서 마음을 쓸어내리고 아이가 건강하기만을 바라는 것입니다.


이게 성도 간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아이를 보는 마음으로 내 옆에 있는 성도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필요를 함께 채워주고, 희노애락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아플 때 옆에서 밤을 새워가면서 위로하고 문안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슬픈일이 있으면 달려가서 위로하고 격려해 줘야 합니다. 기쁜일이 생기면 마치 나에게 그 일이 생긴 것처럼 그렇게 함께 뛰면서 기뻐해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러한 깊이 있는 성도의 교제가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6. 성도들은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기도는 무엇입니까? 기도에 대해서는 어쩌면 한 두 시간의 설교로는 도저히 다룰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간단히 말해본다면 기도는 나의 의지를 꺽어, 하나님의 의지를 나에게 덧입히는 것입니다.


종종 기도에 대해서 잘못 생각을 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마치 하나님께 백지 수표를 받아 놓은 것처럼 기도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가 기도만하면 하나님이 그 백지 수표에 사인을 해 주는 것처럼 생각을 합니다. 요즘 많은 기독교적인 자기개발서적들이 있습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바라는 것이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적어도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위에 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리고 나의 뜻을 꺽어서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도록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성경의 많은 기도들을 보십시오. 기도하는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을 조종하듯이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진지하게 구합니다. 그리고 발견한 하나님의 뜻이 내 생각과 같지 않더라도 오히려 내 생각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간구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기도의 모습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에스더의 기도를 잘 알고 있습니다. 에스더는 개인적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내가 왕에게 나갔을 때 왕이 내게 긍휼을 베풀지 않으면 나는 죽는다. 이미 오랜시간 동안 왕은 나의 안부도 묻지 않았다. 왕은 어쩌면 나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이런 시기에 함부로 왕의 법을 어기면서 왕의 앞에 간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전 왕후였던 와스디는 왕의 명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와스디는 폐위되고 말았습니다. 왕 앞에서 왕후가 너무 교만했었던 것이죠. 그런 이전 왕후의 일을 알고 있는 탓에 에스더는 더 힘들고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자신이 왕의 앞에 나가서 유대인들을 구하는 일에 동참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기도제목으로 수산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금식하며 기도할 것을 요청하고 자신도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왕의 앞에 나섰습니다.


기도가 왜 힘이 있습니까? 내가 마음에 가지고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때문에 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마음에 가지고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기도하도록 나에게 분부하시기 때문에 기도에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여 뜻대로 하시옵소서라는 기도는 모범적인 기도입니다. 여기에 주여 나에게 주님의 뜻을 보여주시옵소서라는 기도가 더 들어간다면 우리는 더 분명하게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열심을 내서 기도하십시오.


7. 사람들은 교회와 믿음의 공동체를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믿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칭송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교회는 세상에 대해서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곳이 되었고, 또 그로 말미암아 교회는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 때만 해도 거룩한 바리새인들이 그리스도인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는 그런 때였습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이 밝혀지면 많은 불이익을 당하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는 아름답다는 것이 인정되고 있었습니다.


8. 진리에 이끌려 사는 사람들 - 풍성함과 부요, 위로와 기쁨이 있음


이것은 진리에 이끌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며 그 진리를 날마다 배우고 익히는 성도들 가운데 풍성함이 드러나게 됩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으며 성도의 교제가 있고, 기도에 힘쓰는 사람들 가운데는 더 큰 은혜와 하나님의 부요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기쁨과 위로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9. 부요에 이끌려 사는 사람들 -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며, 기쁨과 위로가 없다. 풍성함과 부요도 상실한다.


하지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 대신 풍요에 이끌려 사는 사람은 결코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며 그 끝은 부요함과 풍성함, 위로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나오면서 계속해서 세속적인 복만을 구합니다. 그런 이들은 빨리 말씀속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를 찾는 기쁨을 먼저 누려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고 단지 성경을 자기개발서적정도로 여기고 성경의 말씀을 자기 편할대로만 해석해서 아전인수격으로 적용하게 되면 그곳에는 더 이상 진리가 자리하지 못합니다. 진리가 없는 곳에는 하나님의 풍성함과 위로도 따라오지 못합니다.


최근에 삼성 비자금에 관련해서 김용철 변호사가 심경을 고백한 것을 보았습니다. 거기서 김용철 변호사의 이런 글들을 봅니다. 자신은 검사시절에는 상당히 강직하게 원리원칙을 고수했다고 합니다. 만취상태에서 폭행사건을 일으킨 처남을 구속하기도 했습니다. 음주사고를 낸 친동생도 구속했습니다. 그것이 검사의 해야 할 의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전두환 비자금을 수사하게 되었고, 수사과정에서 쌍용 김석원회장이 관리하는 비자금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더 깊이 수사를 하려고 했더니 상부에서 수사 금지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그는 이 수사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과적으로 그는 좌천당하고 말았습니다. 검사가 검사일을 제대로 하겠다는데 좌천을 당하다니, 그는 더 이상 검사를 계속할 수 없었고, 검찰에서 나와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이제는 가나한 검사생활을 마치고, 적어도 자녀들 대학 등록금은 걱정없는 직장을 잡아보자고 들어간 곳이 삼성인데, 그 삼성에 들어간 것이 자신의 가장 큰 실수였다고 말합니다.


거기가면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적어도 돈에 쪼들리지 않고 맘편하게 살수 있겠다라는 생각에 선택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꽤 많은 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김변호사는 그것이, 양심을 버리고 불법을 저지른 것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풍성에 이끌리는 자는 진리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로도 찾지 못합니다. 제대로 된 기쁨을 누리지도 못합니다. 예전 그의 자녀들은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검사였던 아버지는 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돈을 잘 벌어오는 삼성맨이 된 아버지는 아이들의 존경을 잃어버렸습니다. "삼성에 있는 동안 양심을 잃어버려 이제는 자식들이 나를 존경하지 않는다"고 김변호사는 말합니다. 자식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아버지만큼 쓸쓸한 존재도 없을 것입니다. 다행이 지금 김용철 변호사는 양심선언을 했습니다.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줄 압니다. 하지만 그에게 진실을 찾고자하는 노력이 있다면 그 어려움과 힘든 상황 뒤에 위로와 진정한 기쁨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가 풍성함대신 진실을 선택한 것이 그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리 스트로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예일대 법학부 출신으로 시카고 트리뷴지의 법률담당 편집자로 일했습니다. 그는 냉소적이고 철저한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날 아내가 기독교인이 되는 것을 보고 아내를 한심스럽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날이 다르게 더 멋있어지는 것을 보고는 다시 한번 기독교가 진리인지를 하나 하나 꼼꼼히 찾아보기 시작합니다. 그는 여러 과학자들을 찾아갑니다. 진화론자들과 그 진화론을 반박하는 사람들 모두를 찾아가서 법률을 한 사람으로서 하나 하나 증거자료들을 꼼꼼하게 짚어보기 시작합니다. 또 역사적인 진실을 찾기 위해 신학자들을 찾아다니면 성경의 기록이 정말로 신뢰할 만한 것인지를 짚어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는 분명하게 예수를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쓴 창조설계의 비밀이라는 책과 예수는 역사다라는 책은 지금 제가 열심히 읽고 있는 책입니다. 지금 그는 새들백교회에서 구도자예배를 맡아서 열심히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찾는 자는 풍성함과 위로를 함께 받게 됩니다. 하지만 풍성함만을 찾아 다니는 자는 진리를 발견하지 못한 뿐더러 위로도 받지 못하고, 그 안에 기쁨도 누리지 못합니다.


여러분, 모이기를 힘쓰십시오. 그리고 가르침을 항상 잘 받으십시오. 가르침속에서 진리를 발견하십시오.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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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licleLim (2007.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