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대신 선택한 "크로싱"

2008. 7. 4. 02:01영상/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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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크로싱을 봤다.
차인표는 이 영화를 선택했다. 과거 007 출연을 제의받았던 그는 그 영화가 북한을 비하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선택했다.

그가 본 북한, 김태균 감독이 본 북한,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의 희망, 그리고 절망이 그대로 담겨있다. 물론 감독이 스스로 말하듯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고발성 짙은 뉴스를 찍는 대신에 그는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한편의 네러티브를 제공해준다. 어찌하면 조금이라도 더 관객들이 들어올지를 알지만 그것과 타협하지도 않는다. 그저 아픔은 아픔으로 받아들이라고, 함께 울수 있다면 함께 울자고 그는 우리를 울음의 자리로 초대한다.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계절, 그래서 감히 제작비가 떨어지는 한국영화는 가급적 피하고 싶은 이 시기에 크로싱은 극장에 올랐다. 재미도 없는, 그래서 아픈 머리 식히려 갈 사람이라면 굳이 피하고 싶은 영화가 극장에 올랐다. 시작부터 망할 결심을 하고 만들었고, 간판도 금방 내릴 각오를 하고 올렸다. 하지만 영화의 내러티브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을 두고 그래도 내가 제대로 된 영화하나는 만들었다고 남길 수 있는 그런 영화를 찍기위해 원래 계획된 예산의 절반을 가지도 영화를 만들어냈다.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아니면 해피엔딩이 아니다. 현실을 보면 결코 해피엔딩일 수 없다. 하늘도 장대비를 토해내며 슬픔을 드러낸다. 하지만 해피엔딩이다. 마지막 회상은 회상이 아니다. 준이가 가끔 읖조렸던 그 말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아니, 사실이 되어야한다면 말이다.

엔딩은 정해졌다. 하지만 그것이 해피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그저 우리는 이 영화의 주제곡처럼 함께 울 따름이다.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할게다. 그것이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지도 못할게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울 따름이다. 그 울음의 뒤편에 새로운 희망이 싹틀수 있기에,...

얼마 남지 않았다. 영화는 곧 막을 내리겠지, 이 영화만큼은 꼭 극장에서 볼수 있었으면 좋겠다. 블록버스터라서 대형스크린에서 봐야만 맛이 나기 때문은 아니다. 다른 영화보다 훨씬 뛰어난 기법이 있어서도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진실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진실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감독의 내러티브다. 더 아프고, 더 혐오스런 진실이 있지만, 그것은 충격을 덜기위해 다듬어져서 우리에게 전달된다. 동시에 더 고통스럽고, 더 울음이 나오도록 내러티브는 그것을 증폭시킨다. 무슨말이냐고? 영화를 보라. 그러면 알게된다.


"007" 대신 선택한 "크로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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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licleLim(2008.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