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y 의 회장 안드레아의 에스프레소 이야기

2009. 10. 9. 07:38Life

커피는 어렵다.
인스턴트커피에 중독되다시피 산 시간들이 있다. 대학원 석사때 도서관 한쪽 자리에 책을 쌓아두고 거기서 자판기커피와 커피믹스라고 불리는 인스턴트커피를 하루에 거의 2-30 잔씩 마시곤 했다. 체질이 워낙 그런쪽에 둔해서인지 밤에 잠이 안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지금도 귀차니즘때문에 인스턴트커피(정확히는 커피믹스)를 종종 이용한다. 역시 밤에 잠이 안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어쨌거나 지금은 드랍커피와 모카포트를 이용해서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마신다. 모카포트를 이용해서 나오는 에스프레소는 가끔 아주 탁월한 맛을 보여주곤한다. 때론 실수로 쓴맛, 탄맛을 내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주 잠간의 차이가 이런 맛의 변화를 낸다는 것을 깨닫는데 별로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탁월한 맛의 감각을 가진것도 아니지만 구지 유명한 바리스터들의 감정이 없더라도 무엇이 맛이 있고, 무엇이 맛이 없는지를 알수는 있었다. 이러던 중에 일리(ILLY)의 회장인 에르네스토(지금은 고인이 되었다)와 안드레아가 인터뷰한 글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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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커피에 대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식견과 참여도는 대단했다. 에르네스토는 카푸치노나 카페 라떼등을 잘못 로스팅된 커피의 단점을 덮기 위한 속임수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대단한 에스프레소 예찬자였다. 에스프레소의 맛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커피잔을 고안하기까지 할 정도의 열심을 보이면서 그가 했던 말은 다음과 같다.

한 잔의 에스프레소를 만들려면 50개의 커피 콩이 필요하다. 50개의 콩 중 하나가 잘못되면 마치 오믈렛 요리에 썩은 달걀 하나가 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와 닿을 수가!!! 오믈렛에 썩은 달걀이 들어갔다는 표현에 깊은 공감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그저 그러려니하고, 그럴수도 있지, 그렇게 넘어갔던 것을 그는 결코 그래서는 안된다는 강한 표현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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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는 완벽한 에스프레소를 정의해 달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커피원두 50개를 분쇄해 얻어지는 7g의 커피가루에 섭씨 90도 이상의 물을 9기압의 압력을 가해 30초 동안 추출한 30㎤ 분량의 커피입니다. 에스프레소는 과학적인 음료입니다. 에스프레소 추출에는 60가지 변수가 있습니다. 이 모든 변수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세팅은 단 하나뿐입니다. 하나만 잘못돼도 완벽하게 뽑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에스프레소 전문가인 바리스타가 필요합니다.

콩 50개, 90도의 물, 9기압의 압력, 30초의 시간제한, 30㎤ 의 양, ... 기타 60가지 변수들을 아주 짧은 시간에 정확히 맞출수 있을때 커피는 제맛을 발휘하게 된다. 콩의 로스팅 정도, 보관상태와 일수, 분쇄의 정도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변수는 이정도가 전부다. 모든 변수에 정확하게 부합되는 세팅을 찾아내는 것, 그래서 이탈리아에서 바리스터는 한국에서 카페의 주인 정도가 아니라 스타로 대우받고 있는 것이리라. 종종 커피를 좋아해서 바리스터가 되겠다는 말을 가끔 듣곤 한다. 하지만 정작 이야기를 나눠보면 커피맛이 아니라 밀크장식과 우유와 설탕으로 조미료를 친, 이를테면 일종의 미원 잔뜩 뿌린 음식맛이 좋아 한식을 전공하겠다는 말로 들리곤한다. 시작부터 잘못 방향을 잡은 것이다.

그러면 제대로 된 에스프레소는 어떨까? 안드레아는 이런 조언을 한다.

우선 눈으로 알 수 있습니다. 붉은색과 갈색의 중간쯤 되는 두툼한 크레마(거품층)로 에스프레소 표면이 빈틈없이 덮여 나와야 합니다. 크레마의 색이 옅으면 추출이 덜 된 것이고, 짙거나 중간에 구멍이 나 있다면 커피 입자가 너무 곱거나 입자의 양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에스프레소가 큰 공기 방울의 흰 거품을 담고 있다면, 물이 너무 뜨거웠기 때문입니다. 컵 중앙에 하얀 점이 있다면 뽑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는 의미입니다. 다음은 코입니다. 커피는 물론 아몬드, 초콜릿, 과일 심지어 꽃 냄새까지 맡을 수 있습니다. 커피에는 1000가지가 넘는 풍미가 들었다고 하는데, 에스프레소야말로 커피의 풍미를 가장 완전하게 즐길 수 있는 추출방식입니다. 입에선 쓴맛과 신맛, 단맛이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완벽하게 뽑은 에스프레소에는 굳이 설탕을 첨가할 필요가 없어요.

크레마, 사실 이게 모카포트로 에스프레소를 맛보려할때 제일 부담되는 부분이긴하다. 충분한 압력, 9기압의 압력이 필요하지만 가정용 모카포트에 이런 압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나마 브리카같은 녀석이 있어 그보다는 좀 낮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크레마를 뿜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커피입자의 크기, 이것도 쉽지 않은 부분이다. 너무 고와서도, 너무 커서도 안된다. 콩마다 가져야 하는 크기가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잘 준비된 재료로부터 나오는 맛은 탄맛과 같은 쓴맛이 아니다. 커피 고유의 쓴맛과 단맛, 신맛과 바디감의 조화, 그 맛을 느껴본 사람은 에스프레소에 빠지게 된다.

사실 시중에서 파는 에스프레소 어쩌고 하는 인스턴트는 사이비다. 그 비싼 돈을 들여 가짜 커피를 마시게 한다는 기업들의 얄팍한 상술은 별다방의 기업정신으로부터 유출된 것이리라. 어쨌거나 지금까지 내가 마셔본 커피 중 설탕을 넣지 않고도 단맛이 났던 것은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원두로 직접 모카포트로 마셨던 커피뿐이다. 물론 이래에 소개하는 책에 나온 그곳을 갔더라면 만족감은 더 컸으리라 생각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거기까지 가보진 못했다.

내가 서식하고 있는 동네에서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맛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구한것이 모카포트였고, 결과에 대해서는 매우 만족하고 있다. 최근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 15잔"이라는 책을 샀는데, 얼른 이 맛있는 커피들을 마시기 위한 여행을 시작해야 되는데, 가까운 그곳을 찾아갈 여유가 없다. 그래도 연말까지는 반드시 이 중 세잔 이상은 마셔보리라 다짐해본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 15잔 상세보기
김리나 지음 | 지상사 펴냄
맛있는 커피 이야기, 커피 원산지를 찾아다니며 커피와 함께 살아온 20여 년의 인생 이야기 등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해 실었다. 싱싱하고 좋은 원두를 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