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 만화책을 보는 듯이 움직이는 서사를 담은 글로 된 그림책

2008. 4. 18. 15:45서평/[서평] 인문

배려(마음을 움직이는 힘) 상세보기
한상복 지음 | 위즈덤하우스 펴냄
주인공 '위'는 수석으로 입사하여 회사 내에서 고속 승진을 계속하던 인물이다. 그런데 갑자기 정리대상으로 지목받는 프로젝트 1팀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혼란에 빠진다. 거기다 그를 못 견뎌하며 집을 나간 아내는 이혼서류를 보내온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긴 거지? 난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야. 이건 너무 부당해..." 어느날 갑자기 닥쳐온 혼란스런 상황 앞에서 위는 과연 어떻게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새로운 인생의 길

배려라는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 사실 책은 활자로 인쇄된 것을 보는 것이 좋다. 책장을 한장씩 넘기며 거기 적힌 글자의 향기에 취해보며 글 속에 들어가서 저자의 생각을 들여다 보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번 책은 오랜만에 들여다본 도서관의 e-Book 으로 읽었다. 학교 도서관만 e-Book 이 되는 줄 알았더니 요즘은 시립도서관에서도 홈페이지를 통해 e-Book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많지는 않지만 책 목록을 살피던 중에 [배려]를 보게 되고, 언제고 한번은 읽어야 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던 차에 이 책을 한 자리에서 다 읽게 되었다.

그저 처음에 제목만으로 생각했던 배려는 수필이었다. 저자의 과거의 경험들을 나열하며 배려라는 것을 통해 얼마나 좋은 인연을 만들어 갔는지를 담담해 말해주는 수필이려니 했다. 하지만 정작 책을 넘기며 이 책은 내가 생각했던 책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수필이 아니라 만화책이었다. 그것도 기업을 소재로 한 경영만화다. 어찌보면 한 열두권정도에 나눠서 담을 정도의 분량을 가진 서사를 기록한다.

우연찮게 승진을 하지만 원하지 않았던 고리타분한 부서에 발령이 안 [위]는 일종의 스파이노릇을 하게 된다. 그 부서 전체를 정리해고하려는 음모와 그 음모에도 불구하고 정석을 고집하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위]는 점차 자신이 살아왔던 아스퍼거식 삶의 모습이 사회속에서 드러나는 모습을 보게 되고, 그 모습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불쾌한 것인지를 경험하게 된다.

"간단한 얘기야, 자기가 잘못해서 남들한테 피해를 입히고 결국에는 전체가 엉망이 되었는데도 엉뚱한 데로 화살을 돌린다는 거지. 자기 잘못 때문에 패배자가 되었는데도 그 결과에 승복할 줄 모르잖아. 오히려 피해자라고 주장해. 요즘 세상은 그런 피해자들로 가득 차 있지"

이 말은 두 가지 점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우선, 글의 내용과 관련되어서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혹은 반대로 행동하면서 그 결과에 대해서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탓한다. 누구 때문에 자신이 피해를 받는 다고 말한다. 시스템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그 일을 일어나게 방조한, 혹은 적극적으로 그러한 어려움이 발생하게 한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는 눈을 돌리고 만다.

한국사회는 이러한 부분에서 심각하다. 저급한 자본주의는 한국의 공동체 의식을 좀먹어버렸다. 이 공동체 의식은 저질의 개인주의로 바뀌게 된다. 한국에서 공동체를 운운하는 것은 나이든 이들에게는 공산주의요, 빨갱이를 대변할 뿐이며, 어린 세대에게는 찌질한 놈팽이 이상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에서 공동체를 지워버렸다. 결국 이 사회는 저급한 개인주의 문화가 대표적인 문화의 모습으로 대변되는 그런 사회가 되어 버렸고, 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 돈이 있으면 병원에 가고, 없으면? 그냥 알아서 해결해라. 자기 손으로 꼬매든 어쩌든 간에... 이런 사회가 점점 다가오고 있음이 요즘 처럼-2007년 이후-피부에 실감있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또 다른 면에서 이 말은 한가지 주의를 두게 한다. 과연 시스템의 잘못을 방치한 채 모든 것은 개인의 잘못으로 돌려야만 하는가하는 점이다. 이 점에서는 분명히 우리는 제도의 잘못, 시스템의 오류를 고치고 수정해야만 한다. 전체가 엉망이 된 책임을 한 개인에게 돌려서만은 안된다. 제도의 잘못, 시스템의 악은 거기 있는 개인을 오염시킨다. 아무도 지키지 않는 신호등을 보고 거기서 신호를 기다리고만 있다가는 평생토록 출발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수많은 차량의 경적소리만을 듣고 있어야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하나의 상황에 적절한 배려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개인이 모인 것이 공동체가 되지만, 집단화한 공동체는 한 개인의 성향을 넘어서는 이기심을 유발해내고야 만다. 아스퍼스는 그것을 지닌 사람들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 집단속에서 자연스럽게 전염된다는 데에 그 영향력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정의로운 개인이 정의롭지 못한 사회속에 들어갈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우리는 이미 [루시퍼 이펙트]를 통해 보았다.

2008/01/24 - [서평, 영화평] - 나는 결코 그렇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접근하는 악의 치밀함 [서평/루시퍼이펙트]

배려는 누군가를 움직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 자체로 선한 것이기에 그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비록 그것이 얼마나 이 사회의 잘못된 구조를 정화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모른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남탓만 하고 있기 보다는 나로부터 시작하는 하나의 걸음이라도 걸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기도 하다.

책을 다 읽고 느끼는 것은 나름대로 소설을 가장한 경영서적이었지만, 그 나름대로 경계를 뛰어 넘으려는 시도는 괜찮았다. 다만, [청소부 밥]이나 [마시멜로 이야기]처럼 조금 더 친근하게 쓸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바램이다. 글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나름대로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주는 재미있는 요소들이다. 주인공은 [위]라고 불린다. 어쩌면 주인공은 We 이기 때문일까?

배려 - 만화책을 보는 듯이 움직이는 서사를 담은 글로 된 그림책
http://jeliclelim.tistory.com/214
JelicleLim(2008.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