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산 책 5권, 루이스, 김용철, 나잔드라 자다브, 암베드카르, 일본의 환경운동가들..
2010. 3. 18. 21:10ㆍ서평/[서평] 인문
오랜만에 책을 샀다. 매달 일정액을 들여 책을 구입하려고 마음을 먹지만 정작 그러지 못했다. 돈이 없어서기도하고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기도 했다. 또 바로 앞에 있는 도서관에서 책을 열권씩 빌릴수 있다는 것도 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번에 구입한 [삼성을 생각한다]는 반드시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책이다. 삼성을 눈치때문에 모든 신문과 광고매체들에서 그 이름이 삭제(?)된 이 책은 책의 제목이 거세된 상태로 신문의 기사로 등장하기까지 했던 어찌보면 우습기도하고, 그 놀라움과 위력을 실감하게 하는 바로 그 책이기도 하다.
잠시 훝어본 바로는 역시 김용철이다 하는 감탄사가 나온다. 스스로 자신의 의인으로 여기지 않고, 또 거기서 보았던 모든 잘못된 것들을 드러낸다. 삼성의 허울이 한꺼풀 벗겨진다. 통쾌하다. 월드컵 4강이 가져올 경제적효과나 김연아의 우승이 가져올 경제적효과가 몇백억이니 어쩌니 하지만 정작 내 주머니속에는 책 다섯권 살 돈도 부담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금메달 딴 다음날 내 통장 계좌에 단돈 일원도 입금되지 않았다. 그것들은 그저 허상일 뿐이다. 나와는, 일반 서민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저 은행권과 기업들과 그 수뇌부들만의 숫자놀음속에서만 존재하는 그런 그림자일 뿐이다. 그 숫자에 울고 웃는 어리석음이여, 우리는 그 돈이 내 주머니를 채울줄 알았지만 여전히 대학생들은 등록금을 내지 못하고 나라에서 하는 금융업자에게 돈을 빌려 그 돈을 내야 한다. 나중에 안되면 배우자에게 받겠다는 소리나 들으며 말이다. 참, 좋은 나라다. 그 나라에 어울리는 기업의 모습이기도 하고...
이 책도 매우 재미있는 책 같아서 구입을 결정했다. 일본의 NGO 활동가들이 직접 보고 경험한 일들을 기록한 이 책은 짧은 내용들의 모음집같이 되어 있다.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쉽게 덮을 수 없는 애절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인도에서 콜라 1리터를 만들기 위해 물 9리터를 쓰고, 그래서 지하수 수위가 지하 45미터에서 150미터로 내려갔다. 260개의 우물이 고갈되고, 결국 민영화된 수도는 아무도 물을 마시지 못하는 상태가 되게 한다. 이제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물은 외국회사에서 만들어 판매하는 광천수다. 콜라 한잔을 만들기 위해 들어온 코카콜라회사의 기업활동은 한 나라의 사람들을 물이 없어 목말라죽게 만들고 있다. 과연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개발이라는 미명의 모든 활동들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일까? 과연 그 일들을 위해, 그렇게 벌어들이고, 그렇게 만들어내는 명성을 위해 이 모든 것을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책은 읽기 시작했고, 아직 끝을 보지는 못했지만 왠지 그 대답을 알것 같아진다.
불가촉천민, 카스트라는 제도권에조차 포함되지 못하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 그들중 하나였던 나렌드라 자다브의 단순한 성공이야기일까? 아직 책을 제대로 읽지 못했으니 뭐라고 언급하기는 곤란하겠다. 다만 조금은 아쉬운 것이 그는 힌두교의 카스트를 버리고 불교도가 되었다. 그리고 힌두교도인 아내와의 결혼을 불교식으로 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그는 힌두교의 신들에 대해서 긍정적인 표현을 쓴다. 그 역시 인도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만 하는 사람이기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둘 어느 쪽이라 하더라도 내게는 못마땅하다. 잘못된 것을 고쳐야 하다. 고칠 수 없다면 폐기해야 한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폐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은 거기 동참하는 것이다. 오히려 면죄부를 주면서 다음에 그것을 폐기하기 위해 애쓸 사람에게 더 큰 짐을 부과하는 것이다. 간디가 그랬듯 말이다.
암베드카르는 간디와 맞섰던 사람이다. 간디는 많이 알려져있지만 오히려 암베드카르는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다. 간디의 명성은 그의 무폭력주의에 대한 서구적 평가가 지나치게 많이 반영된 탓일게다. 아무리 너희를 혹독하게 고통을 주더라도, 거기에 맞서지 마라. 맞서더라도 절대로 주먹을 쥐지 마라. 아마로 이런 분위기의 동양인에 대한 서구식 사고가 간디라는 한 인물을 거의 신화적 인물로 올린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간디를 평가절하하고픈 마음은 없다. 그는 인도의 지도자였고, 지금도 여러 사람들에게 많은 도전을 주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과연 인도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지도자였을까? 간디는 다만 카스트제도에 속한 이들을 위한 지도자였다. 간디는 영국의 통치는 반대했지만 신들의 통치에 대해서는 수긍했다. 힌두의 신들에게 굴복했고, 그것이 나라를 위하는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암베드카르는 힌두의 신들과 그들의 정신에 대해 반발한다. 그래서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들을 위한 지도자다. 그는 간디조차 건드리지 못했던, 아니 건드리려고 하지 않았던 인도의 가장 근본적인 카스트라는 것을 거부하려고 했던 지도자다. 어쩌면 간디보다 더 유명해 졌었어야 했던 사람이 아닐까는 생각을 해본다.
루이스를 처음 알게 되었던 책이 이 책이다. 예전에 가지고 있던 책을 분실해서 다시 구입했다. 그만큼 옆에 두고 다시, 또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은 여타의 주석가들이 쓰던 그 허울좋은 찬양의 경구들에 대해서 문학가로서 깊이있게 음미하게 해준다. 좋게 해석되게 하기 위해 좋게 해석했던 구절들의 심연에 잠긴 의미들과 시편 각각에 담긴 놀라운 주제들을 보게 해준다. 이 책을 처음 들었을때 머리를 망치로 때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나 역시도 내가 가진 틀 속에서만 시편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 지금까지 볼품없이 그저 지나치던 시편을 읽게 되는 시각이 근본적으로 바뀔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번에 구입한 [삼성을 생각한다]는 반드시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책이다. 삼성을 눈치때문에 모든 신문과 광고매체들에서 그 이름이 삭제(?)된 이 책은 책의 제목이 거세된 상태로 신문의 기사로 등장하기까지 했던 어찌보면 우습기도하고, 그 놀라움과 위력을 실감하게 하는 바로 그 책이기도 하다.
잠시 훝어본 바로는 역시 김용철이다 하는 감탄사가 나온다. 스스로 자신의 의인으로 여기지 않고, 또 거기서 보았던 모든 잘못된 것들을 드러낸다. 삼성의 허울이 한꺼풀 벗겨진다. 통쾌하다. 월드컵 4강이 가져올 경제적효과나 김연아의 우승이 가져올 경제적효과가 몇백억이니 어쩌니 하지만 정작 내 주머니속에는 책 다섯권 살 돈도 부담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금메달 딴 다음날 내 통장 계좌에 단돈 일원도 입금되지 않았다. 그것들은 그저 허상일 뿐이다. 나와는, 일반 서민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저 은행권과 기업들과 그 수뇌부들만의 숫자놀음속에서만 존재하는 그런 그림자일 뿐이다. 그 숫자에 울고 웃는 어리석음이여, 우리는 그 돈이 내 주머니를 채울줄 알았지만 여전히 대학생들은 등록금을 내지 못하고 나라에서 하는 금융업자에게 돈을 빌려 그 돈을 내야 한다. 나중에 안되면 배우자에게 받겠다는 소리나 들으며 말이다. 참, 좋은 나라다. 그 나라에 어울리는 기업의 모습이기도 하고...
이 책도 매우 재미있는 책 같아서 구입을 결정했다. 일본의 NGO 활동가들이 직접 보고 경험한 일들을 기록한 이 책은 짧은 내용들의 모음집같이 되어 있다.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쉽게 덮을 수 없는 애절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인도에서 콜라 1리터를 만들기 위해 물 9리터를 쓰고, 그래서 지하수 수위가 지하 45미터에서 150미터로 내려갔다. 260개의 우물이 고갈되고, 결국 민영화된 수도는 아무도 물을 마시지 못하는 상태가 되게 한다. 이제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물은 외국회사에서 만들어 판매하는 광천수다. 콜라 한잔을 만들기 위해 들어온 코카콜라회사의 기업활동은 한 나라의 사람들을 물이 없어 목말라죽게 만들고 있다. 과연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개발이라는 미명의 모든 활동들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일까? 과연 그 일들을 위해, 그렇게 벌어들이고, 그렇게 만들어내는 명성을 위해 이 모든 것을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책은 읽기 시작했고, 아직 끝을 보지는 못했지만 왠지 그 대답을 알것 같아진다.
불가촉천민, 카스트라는 제도권에조차 포함되지 못하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 그들중 하나였던 나렌드라 자다브의 단순한 성공이야기일까? 아직 책을 제대로 읽지 못했으니 뭐라고 언급하기는 곤란하겠다. 다만 조금은 아쉬운 것이 그는 힌두교의 카스트를 버리고 불교도가 되었다. 그리고 힌두교도인 아내와의 결혼을 불교식으로 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그는 힌두교의 신들에 대해서 긍정적인 표현을 쓴다. 그 역시 인도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만 하는 사람이기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둘 어느 쪽이라 하더라도 내게는 못마땅하다. 잘못된 것을 고쳐야 하다. 고칠 수 없다면 폐기해야 한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폐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은 거기 동참하는 것이다. 오히려 면죄부를 주면서 다음에 그것을 폐기하기 위해 애쓸 사람에게 더 큰 짐을 부과하는 것이다. 간디가 그랬듯 말이다.
암베드카르는 간디와 맞섰던 사람이다. 간디는 많이 알려져있지만 오히려 암베드카르는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다. 간디의 명성은 그의 무폭력주의에 대한 서구적 평가가 지나치게 많이 반영된 탓일게다. 아무리 너희를 혹독하게 고통을 주더라도, 거기에 맞서지 마라. 맞서더라도 절대로 주먹을 쥐지 마라. 아마로 이런 분위기의 동양인에 대한 서구식 사고가 간디라는 한 인물을 거의 신화적 인물로 올린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간디를 평가절하하고픈 마음은 없다. 그는 인도의 지도자였고, 지금도 여러 사람들에게 많은 도전을 주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과연 인도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지도자였을까? 간디는 다만 카스트제도에 속한 이들을 위한 지도자였다. 간디는 영국의 통치는 반대했지만 신들의 통치에 대해서는 수긍했다. 힌두의 신들에게 굴복했고, 그것이 나라를 위하는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암베드카르는 힌두의 신들과 그들의 정신에 대해 반발한다. 그래서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들을 위한 지도자다. 그는 간디조차 건드리지 못했던, 아니 건드리려고 하지 않았던 인도의 가장 근본적인 카스트라는 것을 거부하려고 했던 지도자다. 어쩌면 간디보다 더 유명해 졌었어야 했던 사람이 아닐까는 생각을 해본다.
루이스를 처음 알게 되었던 책이 이 책이다. 예전에 가지고 있던 책을 분실해서 다시 구입했다. 그만큼 옆에 두고 다시, 또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은 여타의 주석가들이 쓰던 그 허울좋은 찬양의 경구들에 대해서 문학가로서 깊이있게 음미하게 해준다. 좋게 해석되게 하기 위해 좋게 해석했던 구절들의 심연에 잠긴 의미들과 시편 각각에 담긴 놀라운 주제들을 보게 해준다. 이 책을 처음 들었을때 머리를 망치로 때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나 역시도 내가 가진 틀 속에서만 시편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 지금까지 볼품없이 그저 지나치던 시편을 읽게 되는 시각이 근본적으로 바뀔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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