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2. 09:29ㆍ서평/[서평] 기독교
기본적으로 저자의 필체와 스타일을 어느 정도 다른 책을 통해 알았기에 이 책을 들었을때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 여겼고, 그 생각은 나름 적중했다.
사실 현직 목사로서 청년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어느 정도 집중될 수 밖에 없으며, 그 말을 제대로 전해듣지 못한 이에게 다른 말을 하는 것보다는 다시금 되새기는 말을 반복할 수 밖에 없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그의 필체와 스타일, 글의 내용과 지향점이 크게 바뀌지 않았음에 오히려 안심할 정도라고 하면 조금 실례일려나?
어쨌거나 이 책은 그 제목에서 보이듯 청년들, 특히 스스로를 리더라고 분류할 만한 이들에 대해서 그들이 어떤 마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지를 말해주고 있는 책이다. 얼마든지 세상을 탓할 수 있고, 가정을 탓할 수 있고, 교회를 탓할 수도, 내 옆에 있는 또 다른 이의 책임을 물을수도 있는 곳에서 사자는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극복해 나간다. 그리고, 하이에나처럼 쉽지만 썩은 고기를 얻고 좋다고 꼬리치지는 않는다.
책의 뒷 부분에 길에 대한 문장이 있다.
뻥 뚫린 10차선 도로와 꽉 막힌 도로 중 어느 것이 더 좋은 길인가? 이 질문만으로는 대답할 수 없다. 10차선 도로든 막힌 도로든 목적지로 이끄는 길이 좋은 길이다. 비포장도로에 오솔길이라도 그 길로 갔을 대 원하는 목적지가 나온다면 좋은 길이다. 그러나 아무리 포장이 잘되고 넓은 길이라도 원하는 곳에 다다르지 못한다면 나쁜 길이다. 좋은 길, 나쁜 길, 그 진상이 판명되는 여부는 목적지가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이런 푸념을 한다. "왜 믿지 않는 사람의 길이 평탄한가" 왜 믿음의 길이 이렇게 험난한가?"라고 외친다. 그러나 넓고 평탄한 길의 마지막이 파멸이라면 아무리 넓고 평탄한 길이라도 그 길로 가겠는가? 당장은 좁고 험한 길이라도 이 길의 끝에 푸른 초장과 맑은 시냇물이 있다면 그 길이 좋은 길이다.성도는 '길'을 비교하는 사람이 아니라 '끝'을 비교하는 사람이다. 성도의 길은 마지막에 사는 길, 살리는 길, 생명의 길로 이어져야 한다.
나는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잘못된 권위주의가 바뀌어야 한다고 인식하는 사람이다. 잘못된 인식과 사고가 바뀌어야 한다고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태안의 기름은 책임자의 잘못이 크다고 외치는 사람이고, 그 모든 책임을 태안주민에게 돌리며 운명의 탓을 결코 해서는 안되다고 믿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모든 책임과 할수 있는 일을 미뤄둔 채 손에 붉은 기를 잡고 타도를 외치는 행진이 모든 것의 정답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것도 필요하다. 때로는 책임자의 집 앞에서, 그 회사 앞에서 밤새며 농성하며 소리 높여 우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되지 않을 일을 부딛혀 바위에 계란 던지기라는 헛소리를 증명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바위를 깨뜨릴 정을 날카롭게 가는 선택을 하라고 주장하고 싶다. 이러한 사고는 책의 저자와 내가 가진 공통의 생각이다.
전병욱 목사의 글과 말은 여러 부분 나와 다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결코 나의 부족으로 이해한 적도 없다. 하지만 그 다름은 틀림이 아닌 차별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도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기꺼이 그의 책을 청년들에게 읽으라고 권해줄 수 있다. 동시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기에 책으로 모든 것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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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licleLim(2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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