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에 대한 새로운 관점 가지기
2008. 7. 5. 22:40ㆍEye
싸이에 복음주의클럽이란 곳이 있다. 처음 가입하게 된 것은 거기 있는 누구의 추천을 받고 가입했고,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가 이번 미국소 수입관련 된 그들의 입장이 어떤가 들어가보다 요즘은 조금 더 글을 읽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재협상, 그것이 끝일까? 대한민국 헌법 1조 그것이 복음주의 클럽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일까? 그것으로 피어리드를 찍는다면 나는 더 이상 그 클럽에 발을 들일 이유가 없다. 그 말은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 말은 이 밖에서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이고, 그리고 그 말은 나의 존재이유에 대한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쇠고기협상이 다시 제대로 되길 바란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보다 먼저 있어야 하는 중요한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을 제대로 짚어내지 않고 휘둘리는 것, 그것만은 주의해야 한다.
심지어 많은 교회에서는 설교시간에 간디를 언급한다. 간디의 평가절하를 받는 기독교, 그래서 반성해야 한다는 식의 설교 예화들, 처음엔 듣고 아 그런가 했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간디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래 부분은 복음주의 클럽에서 간디의 예화에 다소 반발을 했던 내 말에 또 다른 재반박에 대한 반박의 글(대체 이놈의 글에서 반박은 몇번이나 나오는 겐가? ^^)이다. 참고삼아 여기 다시 올려 둔다.
간디가 신약성경을 종종 언급했던 것도 알고, 그가 특히 산상수훈에 집중했던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정말 그가 기독교가 되지 않은 것이 기독교인들때문 - 식민통치의 영국 기독교 - 이라고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암베드카르라는 사람을 알고, 나랜드라 자다브의 책을 읽고서는 기독교가 간디의 칭찬을 받지 못한 것이 분하고 원통하다는 마음은 싹 씻겼습니다.
실제로 암베드까르평전의 표지에는 대놓고 "간디의 시대는 인도의 암흑기였다." 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가 독립을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요? 맞습니다. 하지만 불가촉천민들에게는 아니었습니다. 카스트로 고생하고 인간이하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간디는 전~혀~ 구세주가 아니었습니다. 간디에 대해서 잘지어낸 책만 읽고 말하기 전에 [암베드까르평전]과 [신도 버린 사람들] 이 두권의 책만 읽어본다면 충분히 다른 생각도 할 수 있게 되리라 생각됩니다. 실제로 간디에 대한 우상화된 책들은 이번 사시합격생들을 교육하는 연수원에서도 필독서로 지정했더군요. 그 책 읽느라 고생하는 제 주변 청년을 생각하면 안스럽기까지 합니다. 제게는 그 책이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와 그리 크게 달라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예화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던 것은 지나친 편집에 따른 오버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영국인 선교사를 알았을까요? 그랬을겁니다. 분명히 그랬겠죠. 그가 교회의 입구에서 문전박대를 받았을까요? 그랬을수도 있습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문전박대받은것 때문에 그 좋다는, 항상 입에 달고 산다는 산상수훈과 예수의 말씀이 있는 곳을 과감히 끊을 결심을 했을까요? 뭔가 앞뒤가 아구가 안맞는다는 생각이 안드십니까? 이런 예화는 미안하지만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나 할만한 예화아닌가요? 저도 이런 예화 많이 들었습니다만, 정말 간디가 그 이유, 교회에 갔다가 문전박대 당했다는 그 이유 때문에 기독교인이 되지 않았다고 아직도 생각하시는지요? 왜, 좋은 선교사 친구가 있는 간디가 그 교회를 고집해서 가려고 하고, 그 많은 교회 중에 박대하는 교회를 트집잡아(물론 많은 교회가 그랬을겁니다마는) 개종을 안했을까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간디는 단식투쟁이라도 하면서 유색인들도 예배에 참석하게 요구할만한 인물이 아닙니까? 여기서 오히려 그가 가지고 있는 사상적 체계로서의 흰두교가 기독교보다 우월하다고 판단하고, 기독교의 산상수훈과 예수의 말씀도 좋지만 카스트와 인도의 기존 질서를 버릴 수 없는 그의 모습을 지적하는 것은 제게는 당연한 것입니다. 위에 소개한 두권 책을 읽을 여유가 없다면 누군가 요약한 것을 잠시 훑어보는 것으로도 사고의 많은 진전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좀 까칠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요즘 시국과 여기 분위기를 보면, 대체 여기가 뭐하는 곳인가 다시 갈등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복음주의란게 뭔지 그 원론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에 관련된 말을 하기에 이 자리는 어울리지 않는 자리라 생각되어 이 다음의 말은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이글을 쓰고 보니 우습군요, 그 말 - 복음주의를 논하기 - 을 하기에 어울리지 않는 자리라...)
재협상, 그것이 끝일까? 대한민국 헌법 1조 그것이 복음주의 클럽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일까? 그것으로 피어리드를 찍는다면 나는 더 이상 그 클럽에 발을 들일 이유가 없다. 그 말은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 말은 이 밖에서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이고, 그리고 그 말은 나의 존재이유에 대한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쇠고기협상이 다시 제대로 되길 바란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보다 먼저 있어야 하는 중요한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을 제대로 짚어내지 않고 휘둘리는 것, 그것만은 주의해야 한다.
심지어 많은 교회에서는 설교시간에 간디를 언급한다. 간디의 평가절하를 받는 기독교, 그래서 반성해야 한다는 식의 설교 예화들, 처음엔 듣고 아 그런가 했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간디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래 부분은 복음주의 클럽에서 간디의 예화에 다소 반발을 했던 내 말에 또 다른 재반박에 대한 반박의 글(대체 이놈의 글에서 반박은 몇번이나 나오는 겐가? ^^)이다. 참고삼아 여기 다시 올려 둔다.
-------------------->> 여기서부터 <<--------------------
간디가 신약성경을 종종 언급했던 것도 알고, 그가 특히 산상수훈에 집중했던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정말 그가 기독교가 되지 않은 것이 기독교인들때문 - 식민통치의 영국 기독교 - 이라고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암베드카르라는 사람을 알고, 나랜드라 자다브의 책을 읽고서는 기독교가 간디의 칭찬을 받지 못한 것이 분하고 원통하다는 마음은 싹 씻겼습니다.
실제로 암베드까르평전의 표지에는 대놓고 "간디의 시대는 인도의 암흑기였다." 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가 독립을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요? 맞습니다. 하지만 불가촉천민들에게는 아니었습니다. 카스트로 고생하고 인간이하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간디는 전~혀~ 구세주가 아니었습니다. 간디에 대해서 잘지어낸 책만 읽고 말하기 전에 [암베드까르평전]과 [신도 버린 사람들] 이 두권의 책만 읽어본다면 충분히 다른 생각도 할 수 있게 되리라 생각됩니다. 실제로 간디에 대한 우상화된 책들은 이번 사시합격생들을 교육하는 연수원에서도 필독서로 지정했더군요. 그 책 읽느라 고생하는 제 주변 청년을 생각하면 안스럽기까지 합니다. 제게는 그 책이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와 그리 크게 달라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예화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던 것은 지나친 편집에 따른 오버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영국인 선교사를 알았을까요? 그랬을겁니다. 분명히 그랬겠죠. 그가 교회의 입구에서 문전박대를 받았을까요? 그랬을수도 있습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문전박대받은것 때문에 그 좋다는, 항상 입에 달고 산다는 산상수훈과 예수의 말씀이 있는 곳을 과감히 끊을 결심을 했을까요? 뭔가 앞뒤가 아구가 안맞는다는 생각이 안드십니까? 이런 예화는 미안하지만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나 할만한 예화아닌가요? 저도 이런 예화 많이 들었습니다만, 정말 간디가 그 이유, 교회에 갔다가 문전박대 당했다는 그 이유 때문에 기독교인이 되지 않았다고 아직도 생각하시는지요? 왜, 좋은 선교사 친구가 있는 간디가 그 교회를 고집해서 가려고 하고, 그 많은 교회 중에 박대하는 교회를 트집잡아(물론 많은 교회가 그랬을겁니다마는) 개종을 안했을까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간디는 단식투쟁이라도 하면서 유색인들도 예배에 참석하게 요구할만한 인물이 아닙니까? 여기서 오히려 그가 가지고 있는 사상적 체계로서의 흰두교가 기독교보다 우월하다고 판단하고, 기독교의 산상수훈과 예수의 말씀도 좋지만 카스트와 인도의 기존 질서를 버릴 수 없는 그의 모습을 지적하는 것은 제게는 당연한 것입니다. 위에 소개한 두권 책을 읽을 여유가 없다면 누군가 요약한 것을 잠시 훑어보는 것으로도 사고의 많은 진전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좀 까칠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요즘 시국과 여기 분위기를 보면, 대체 여기가 뭐하는 곳인가 다시 갈등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복음주의란게 뭔지 그 원론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에 관련된 말을 하기에 이 자리는 어울리지 않는 자리라 생각되어 이 다음의 말은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이글을 쓰고 보니 우습군요, 그 말 - 복음주의를 논하기 - 을 하기에 어울리지 않는 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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