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30. 01:00ㆍLife/Christian
김동호목사님 페북에 있는 글[원글Link]을 보고...
저는 작은 목사입니다. 큰교회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사람들은 제가 목사인지도 모릅니다. 작은 교회조차 아직 제대로 된 건물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제 아내조차 저를 목사로 취급하지도 않는 그런 작다못해 드러나보이지도 않는 그런 목사입니다.
목사님이 페북에 올린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고 이슈가 되었지만 아마도 제가 쓰는 글은 곧 묻혀질 것입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이나 많은 사람들은 저를 모르고, 저의 생각에 대해서 굳이 알려고 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제가 교회라는 이름의 건물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한가지 잘한것이 있다면 그것은 신학을 공부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신학을 공부했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저를 따르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아직 건물이 없고, 굳이 내가 이 땅에서 또 하나의 건물을 지어 올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고민하며 아직 그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김동호목사님의 설교는 인터넷으로 몇번 들었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사역에 대해서도 무척 감명깊게 주목하고 있습니다. 다른 대형 교회들과는 다른 모습이었기에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제가 목사님께 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 아니라, 지금 무엇이 신학적으로 바른 것이냐고 묻고 싶습니다. 나꼼수에 대해서 김동호라는 한 개인이 개인적 판단을 페북에 올린 것이라면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받아들이겠습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생각이 있고, 그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제한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제 개인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목사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말한다면 그 말에는 신학적 책임의식을 담아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들 역시 한 개인으로서,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육신에 속한 존재로서, 죄를 짓고, 때로는 적절한 못한 관계나 돈에 관련된 죄에 관련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연약함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입에 담고, 신학을 두르고, 자신을 따르는 성도들을 개인의 친위부대인 양 인식하며 권위를 논한다면 그는 더 이상 목사라고 불릴 자격이 없는 존재들 입니다. 목사라는 이름을 가진 이런 이들이 한국교회에 얼마나 많은지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누구보다 더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작은 목사가,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은 후배 목사가 감히 선배 목사님께 신학에 대해 논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목사님이 처음 글을 쓰셨을 때 이정도는 감당하리라 생각하시고 글을 올리셨으리라 사려되어 감히 작은 목사가 글을 씁니다.
목사님의 취향은 어쩌면 저와 비슷합니다. 저도 "나는 꼼수다"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그건 개인의 취향이고, 그 이유가 무엇이든 존중받아야 할 것입니다. 나꼼수가 하나님이 주신 복음이 아닌 다음에서야 그것을 맹목적이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신봉해야 할 어떠한 이유도 우리에겐 없습니다. 충분히 좋아하지 않을 자유가 우리에겐 주어져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나꼼수에 열광하는 이유를 잘 알고 계십니다.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다는 용기, 그 용기가 없었던 일반인들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박수 소리에 나꼼수는 더 용기를 내서 감히 고양이의 이빨 바로 앞까지 다가갔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거기엔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공통적으로 싫어하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바로 목사님이 정확히 지적하신 "빈정거림"입니다.
저도 싫습니다. 빈정거림이 싫고, 시도 때도 없이 나대는 정봉주 의원의 소리도 별롭니다. (이런,... 어떤 사람들이 제게 강력히 항의하는 글을 올릴지도 모르겠군요.. ^^)
빈정거림, 한국 교회의 목회자라면 아마도 백중 아흔아홉은 싫어할 겁니다. 지금까지 배워왔던 것이 어떻게 하면 교양있는 교회와 성도가 되게 할까,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편히 지낼수 있게 할까, 그것에만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목회자들에게 빈정거림은 공동체에 갈등을 낳게 하고, 공동체에 분열이 생기게 하고, 결국 공동체를 와해시키는 7 deadly sins 중 첫번째에 해당하는 교만과도 상통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빈정거림의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빈정거림의 반대편에는 잘 포장된 썩은 내가 나는 회칠한 무덤이 있을 뿐입니다. 이런말이 불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도 빈정거리셨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위선을 욕하며 저주하셨습니다. 독사의 자식, gennamata ekidnon 은 바리새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거침없는 독설이었습니다. 분명히 그들은 겉으로는 겸손한 모습을 보였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예수를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스승으로 인정하듯 행동했을 것입니다. 말로는 그 앞에서 상대를 존중하며 마치 자신들이 잘 모르는 것을 묻기 위해 온 듯 행동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속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속은 죽어있었고, 게다가 상대를 죽이려는 살의 까지 품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교양있는 말을 듣고 예수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마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예수님의 이 말은 당시 세리들이나 창기들의 속된 말에 대한 지적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학식있고, 가장 겸손한 척 하는, 때가 되면 어디서든 기도하는 모범을 보이는 바리새인과 종교지도자들을 향한 말이었습니다.
(마23:1-13)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23:1-13)
말은 그럴듯하게 하나 결코 그들의 말한 바를 지키지 않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에 대해서 예수님은 기꺼이 "화 있을진저"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천국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는 자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그들도 들어가지 못했지요.
9. '나는 꼼수다'가 이야기하는 것과 주장이 다 옳다고하여도그것을 그런식으로 표현하면 안 된다. 내가 오늘 처음 들은 '나는 꼼수다' 방송은 '이 나쁜 새끼들아'로 끝을 맺었다.
이 부분부터 목사님과 제가 조금 틀린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나꼼수에서 하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그것이 문제라고 지적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동의하지 않는다고해서 틀린것은 아닙니다. 토론하며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하는 것이겠죠. 하지만 다음의 문장은 더 비중있게 생각하셨어야 했습니다.
아마도 개인적으로 그렇게 끝을 맺지 않았으면 더 좋겠다는 의도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끝을 맺지 않았으면 저도 듣기 더 편했을 겁니다(물론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겁니다. 이런 욕을 하는게 더 편하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아마 더 많을 겁니다). 그리고 아마도 목사님께서 처음부터 차근차근 들으신게 아니라 바로 그 감정이 격양된 부분을 처음 들었기 때문에 더 충격이 크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1. 아무리 화가나고 분통이 터져도 그렇다고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저들이 가두고 싶어하는 거짓만큼이나 옳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나쁜 것이라는 사실을 저들은 모르는 것 같다.
12. '나는 꼼수다'는 악을 악으로 이기려고 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였는데 말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솔직히 목사님께 실망했습니다.
중요한 부분이니 이 부분은 목사님의 방식대로 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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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저들이 가두고 싶어하는 거짓보다 더 나쁜것이 '이 나쁜 새끼들아'처럼 말하는 방식이라고 한다면 예수의 말("이 독사의 자식들아")은 바리새인들에게 면책권을 주어도 될만큼 중요한 큰 범죄를 저지른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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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목사님의 말이 맞다면,) 그렇게 큰 죄를 지은 예수는 인류의 죄를 용서하기는 커녕 자신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처형당했다는 억지 논리까지 가져다 붙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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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래서 목사님의 신학은 성경에 근거하지 않았다고 감히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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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그 근거는 목사님의 글속에서 보여지는 예수의 모습은 거룩한 상태에서 어떤 잘못이나 죄를 보고도 근엄한 표정으로 "그러지마라"라고 말하는 움직이기조차 힘들어하는 노인의 모습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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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괴물을 쫓는 자,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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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이 말은 괴물을 상대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괴물이 가진 어떤 습성, 괴물이 괴물되게 하는 그 습성을 자연스럽게 익힌다는 말입니다(목사님은 아시겠지만 이 글을 읽을 또 다른 사람을 위해 글이 늘어지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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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현정부를 상대하는 나꼼수는 분명히 자신들이 그들을 닮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되어 간다면 목사님을 포함해서 누군가 그 사실을 분명히 지적하는 것이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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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지만 목사님이 괴물을 닮아간다는 생각도 하셔야 합니다. 지금까지 목사님은 한국교회라는 울타리 안에만 있었습니다. 비록 교회를 개혁한다는 좋은 뜻을 품으셨고 그것을 지금까지 관철해오셨습니다만 그것이 목사님으로 하여금 한국 교회가 지닌 괴물의 습성을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하는 시간이 될수도 있었고, 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음을 인정하셔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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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래서 성경에 근거하지 않고 한국이라는 토양위에 정착한 조직으로서의 교회에 기반한 신학이라면 버리셔야 합니다. 목사는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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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분명히 나꼼수는 복음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도 아닙니다. 어쩌면 나꼼수는 이 시대가 만들어낸 사생아와 같습니다. 사실은 나오지 않았어야 했는데, 어쩔수 없이 나온 그런 존재입니다. 언론이 제 역할을 했더라면, 교회가 바른 소리를 전했더라면, 나는 꼼수다 같은 사생아는 한국땅에 출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사실은 나꼼수도 알고, 일반 시민들도 알고, 어쩌면 현 정권을 잡은 사람들도 알겁니다. 조중동은 10년 후에도 있겠지만 나꼼수는 10년 뒤에는 그저 한 시대의 유별난 특징으로서 기억하는 정도로만 남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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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SNS 공간에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더 정확히는 구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악을 악으로 알아야 그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악을 분별해 낼 수 있어야 그것에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선하게 이기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고민을 목사가 알아서 해줍니다. 그리고 무엇이 악인지를 아주 간단하게 말해줍니다. 사실은 자신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교주가 따로 없지요. 그리고 그 잘못된 판단에 "아멘"이라고 답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강요합니다. 저도 목사지만 SNS공간에서 보는 교회 다니는 청년들 중에는 정말 생각없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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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해아래 새것이 없다고 했는데... 이런 생각도 가끔 듭니다. 하지만 선지자가 선지자인 이유는 그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다닌다고 해서가 아니라 그가 해야만 하는 말을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기 때문이듯, 목사는 바뀔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무엇이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고, 무엇이 하나님이 진정으로 미워하는 악인지를 말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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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한국교회를 보며 좋은 면이든 나쁜 면이든 닮아가는 모습은 제게도 있습니다. 그래서 잠시 한국교회를 떠나서 성경의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보려고 합니다. 저 개인의 선택이지요. 조직화된 교회 공동체를 떠나서 작은 소수의 사람으로 예배하며 어떤 형식과 구성에 매이지 않고 성경을 봅니다. 그랬더니 한국교회가 얼마나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지 눈에 들어오더군요. 괴물을 쫒는다고 지금까지 생각했던 제가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걸 깨닫게 되니 다시 예전으론 돌아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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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저는 한국교회가 치료할 수 있는 단계를 이미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교회는 다시 부활할 수 있습니다. 이미 썩어서 회칠한 무덤과 같은 존재에게 반찬고와 영양제 주사를 놓는다고 다시 살아날리 없겠지요. 말 그대로 완전한 바닥으로 가서 요나와 갈은 심연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죽음을 인정하고,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였을때에만 한국 교회는 다시 하나님의 은혜로 부활할 수 있습니다. 제 마음속에 그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더군요.
제 글이 목사님의 심기를 심하게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충분히 많은 댓글들을 보셨을테니 어느정도는 면역이 되셨겠지만 그래도 이런 글을 많이 보는게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요.
이글 올리는게 쉽지는 않군요. 어쨌거나 생계형 목사의 길을 포기한 상태라 마음은 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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