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한번 볼만한 영화 크로싱.
2008. 7. 12. 04:16ㆍEye
꼭한번 볼만한 영화 크로싱.
영화 크로싱을 봤습니다.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차인표는 과거 007 20편의 출연을 제의받았었지만 그 영화가 북한의 본질을 호도한다는 이유로 섭외를 거절했었습니다. 그리고 대신 선택한 것이 바로 이 영화, 크로싱이었습니다.
그가 보는 북한의 모습, 김태균 감독이 보는 북한의 사람들과 사회상,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실상과 그들의 실날같은 희망, 그리고 절망의 현실이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물론 감독이 스스로 말하듯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필름은 아닙니다. 고발성 짙은 뉴스를 찍는 대신에 그는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한편의 네러티브를 제공해주었고, 어찌하면 조금이라도 더 관객들이 들어올지를 알면서도 그것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픔은 아픔으로 받아들이라고, 함께 울수 있다면 함께 울자고 그는 우리를 울음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그것이 바로 크로싱이라는 영화가 우리에게 주고 있는 자리입니다.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계절, 그래서 감히 제작비가 떨어지는 한국영화는 가급적 피하고 싶은 이 시기에 크로싱은 극장에 올랐습니다. 재미도 없는, 그래서 아픈 머리 식히려 갈 사람이라면 굳이 피하고 싶은 영화가 극장에 올랐습니다. 시작부터 망할 결심을 하고 만들었고, 간판도 금방 내릴 각오를 하고 올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내러티브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나 봅니다. 시간을 두고 그래도 우리가 제대로 된 영화 한편은 만들었다고 남길 수 있는 그런 영화를 찍기위해 원래 계획된 예산의 절반도 안되는 돈으로 영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영화의 결말은 해피엔딩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루어지고 현실을 보면 결코 해피엔딩일 수 없기 때문인 것이죠. 마지막 회상은 단순한 과거의 기억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준이가 가끔 읖조렸던 그 말이 사실이라면 아니, 사실이 되어야한다면 말입니다.
엔딩은 정해져 있지만 그것이 해피인지 아닌지를 논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이 영화의 관객의 몫도, 감독의 역할도 아닌것이 되어있습니다.
그저 우리는 이 영화의 주제곡(Cry with us)처럼 함께 울 따름입니다.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할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지도 못할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울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울음의 뒤편에 새로운 희망이 싹트기만을 바랄뿐입니다.
다른 대작영화들에 가려 그다지 큰 흥행실적을 올리지 못했고, 그래서 상영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영화, 아마도 곧 영화는 막을 내리겠지요. 하지만 이 영화만큼은 꼭 극장에서 볼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블록버스터라서 대형스크린에서 봐야만 맛이 나기 때문은 아닙니다. 다른 영화보다 훨씬 뛰어난 기법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중요한 것이 두가지 있습니다. 그 하나는 하나는 진실이고, 또 하나는 그 진실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내러티브입니다. 더 아프고, 더 혐오스런 진실이 있지만, 그것은 충격을 덜기위해 다듬어져서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동시에 더 고통스럽고, 더 울음이 나오도록 내러티브는 희망과 절망을 교차시켜가며 그것을 증폭시킵니다. 무슨말이냐고요? 영화를 보십시오. 그러면 알게될 것입니다.
'Ey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자식은 내가 잘 알아 (0) | 2008.09.02 |
---|---|
반 헬몬트의 실험 (1) | 2008.08.13 |
[기고] SBS스페셜, "신의 길 인간의 길"에 대하여 (2) | 2008.07.10 |
차인표와 나오미의 거위의 꿈 (0) | 2008.07.09 |
바보아냐? (0) | 2008.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