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4. 11. 20:19ㆍ서평/[서평] 인문
승자독식사회 - 조금 덜 불평등한 사회는 어디에 있는가?
이 사회는 일등이 모든 것을 가지는 구조로 개편되어 가고 있다. 이등은 일등에 비해 아주 작은, 마소한 차이로 이등을 했더라도 일등은 그 일등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등과는 비교도 될 수 없는 매우 어마어마한 힘과 지위, 그리고 돈을 획득하게 된다. 그래서 이 사회는 이미 20:80 사회를 지나 1:99의 사회로 내 몰리고 있다. 이것을 승리에 대한 정당한 권리로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일등이 되기 위해 노력한 그 피땀의 결과로 얻은 승리와 전리품을 전혀 그 일에 보탬도 되지 못했던 인간들이 왈가왈부 하는 것이 파렴치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승자독식의 구조는 어떤 곳에서는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이를테면 법률시스템이 그렇다. 소송을 담당하는 변호사들에게 있어 그들의 역할은 새로운 부의 창출이 아닌 기존의 부의 재분배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똑똑한 변호사들을 움직이는 힘의 원동력은 그들이 그 케이스를 맡게 됨으로서 얼마나 그들이 그 부의 재편성에 자신이 가담하게 되는지에 담겨있게 된다. 최고의 변호사와 그 다음의 변호사의 몸값은 약간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재분배되는 부는 또 다른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 패자강탈의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진다. 삼성은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어마어마한 액수의 소송을 걸었다. 일개 중소 인터넷 신문사가 감당할 만한 소송이 아닌게다. 이건 또 다른 의미의 협박이다. 함부로 대들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승자의 교만한 포효인 것이다. 한번 승자는 영원한 승자가 된다. 한번 일등은 영원한 일등이 된다. 감히 그 일등에게 반칙을 했다고 대들었다간 당장 그 이빨과 사나운 발톱이 번쩍이며 닥칠 것을 요구받는다. 그래도 계속했다가는? 그 후의 일은 무서워서 말도 못하겠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그래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서 일등을 추구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시스템을 좋은 것으로 간주하는 사회는, 그래서 그 승자에게 그 승리의 댓가 이상의 모든 것을 헌납하는 사회는 더 이상 이등 이하의 존재들이 살아가기에 좋은 토양은 되지 못하고 만다.
이러한 승자독식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없을까? 이 사회가 신자유주의화 되어가며 발생하는 자연적인 흐름으로서의 승자독식은 당연한 귀결일까? 과연 여기에 더 이상의 논의는 필요없는 것일까? FTA는 시대의 흐름이고, 의료보험의 민영화는 선진화로 가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인가?
식코라는 영화를 봤다. 무척 마음에 드는 영화다. 마이클 무어, 그의 작품은 이번이 두 번째로 첫 번째 본 영화는 화씨 9/11이었다. 이 영화에서 마이클 무어는 911테러에 대응하는 부시와 미 행정부의 엉망인 모습을 꼬집고, 오히려 즉각적인 대응보다는 그 사건을 기화로 부시는 평소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 - 이라크 조지기, 중동 석유 뺏기 -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번 식코에서는 미국이라는 사회의 시스템이 얼마나 엉망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아메리카드림의 원조, 지상 천국이라고 불려지는 그 땅이 사실은 자국내 국민들에 대한 건강조차도 책임질 수 없는 그런 척박한 곳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911테러 때 영웅이라고 부르며 여기저기 불려 다녔을 사람들에게 폐에 문제가 생겨도 제대로 된 진료조차 받지 못하게 하고 그들을 내쳤을까? 오죽했으면 그들은 관타나모의 수용소에서 메가폰을 들고 저 수감자만큼만 치료를 받게 해 달라고 소리를 질러대야 했을까? 오죽했으면 그 콧대높은 미국인들이 쿠바라는 지상지옥에 들어가서 거기서 120불에 구해야 하는 약은 단돈 50센트에 구입하며 눈물을 흘려야 했을까? 거기서 미국인들은 미국에서 받지 못했던 의료를 받게 된다.
이 모든 것을 승자독식이라는 시스템에 눈을 돌려 그 영향을 살펴보려는 시도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민영화된 의료보험은 당연히 기업의 이윤을 최대로 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들어올 돈을 확실히 걷되, 나갈 돈은 최소로 줄인다. 어떻게 해서든 고객에게 지불해야 할 의료비는 최소화시킨다. 그래서 의료보험사는 꽤나 멋있는 보험료 지급불가목록을 가지고 있다.
이 동영상을 가져 가기 원하시는 분은 다음 주소에 가셔서 코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혹시나 공개된 영상이 잘못될 경우를 대비해 두번 올렸고, 여긴 비공개된 곳으로 두었습니다. (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7547115 )
영화 식코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영화를 꼭 보시기 바란다. 만약 영화를 보고 싶으되 돈이 없으신 분을 위해서 기꺼이 영화비를 지불할 용의도 있다. 난 영화를 선전하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다. 게다가 영화를 많이 보게 해서 거기서 어떤 인센티브를 얻는 등의 직업을 가진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이 영화는 꼭 돈을 주고 보더라도 결코 후회가 없는 영화라는 것을 알릴 뿐이다. 문제는 이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이 너무 부족하다는데 있다. 주변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어디서 이 영화를 하는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참고로 17일 이후 영화관 상영이 끝나면 이동상영관이 순회할 예정이라고 한다. 27개 극장에서밖에 개봉하지 않았다니, 극장에서도 승자독식의 사회상은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을 반증하는 것인가? 여기서 내용을 확인하고 나중에라도 이 영화를 꼭 볼 수 있기를 바란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47204)
의료보험 콜센터에서 일했던 이 여성은 자신을 Bitch 라고 부른다.
그저 의자에 앉아서 전화를 받고 그들에게 보험혜택을 줄 수 없는 이유를 늘어놓는 형편없는 개x이라고 자신을 폄하한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한 신혼부부의 전화속 인사를 듣고 감격하고 그들과 교감할수 있는 여성을 왜 이런 개x으로 만들어 버렸을까? 필자는 여러 미국인들을 알고 지낸다. 모두가 너무나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다. 내가 아는 미국인들은 자신의 누릴수 있는 행복을 기꺼이 접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일생을 바치는 그런 사람들이다. 너무나 숭고한 그 인생 앞에서 항상 내 머리가 숙여지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여기 나온 이 여성도 그런 사람이 될수 있었을 것이다. 그 눈물을 보고 있지만 그 마음이 느껴지는 듯 하다. 도와주지 못하는 심정이 너무 가슴아파서 자신을 Bitch 라고 부르고, 의자에만 앉아서 사람들 인생에 이제는 더 이상 상관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누가 이 여성의 마음을 이렇게 황폐하게 했는가?혹시 주변 극장에서 이 영화를 하고 있다면 영화를 보기 적극 추천한다. 영화를 보고 마음에 들었다면 감사의 댓글 하나 남겨주면 되고, 마음에 안들면 영화표를 우편으로 보내주면 그 액수를 보내주겠다. 일인 2매까지 가능하다. ^^
조금 덜 불평등한 사회, 그것이 승자독식사회의 저자가 말하는 현 시스템에 대한 대책이다. 끊임없이 절벽으로 치달아가는 이 사회속에서 최고가 되려는 다수의 경주자들 틈에서 계속적으로 벌어지는 일등과 이등의 실력차가 아닌 평가와 부의 차이는 이 사회가 이제는 평등이라는 단어를 빨갱이나 공산주의자에게만 사용해야 하는 과거로의 회귀를 보이고 있다는 착각이 들게 할 정도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에게서 노력을 빼앗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최선을 다하고, 그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 최선의 결과로서의 더 큰 파이를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일등이 모든 파이를 다 가지고 단 한 조각을 가지고 이등 이하 모든 이들이 나눠먹으라는 것은 더 이상 최선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그것은 독재를 넘은 독식의 시작이다. 독식은 폭식으로 이어지고, 거기엔 일곱 가지 원죄에 대한 저주가 따라온다.
필자 어릴 적엔 길 모르는 사람이 길을 물어오면 친절히 그 길을 안내해 주곤 했다. 지금은? 필자 어린 아들에게 누가 친절히 굴거나 말을 걸더라도 절대로 따라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있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이런 모습이 되었는가? 1%의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 승리자가 되고, 나머지 99%는 패자가 되는 이 시스템은 우리 모두를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 우리 모두를 형편없는 쓰레기로 취급한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조금 덜 불평등한, 최선을 모르겠다면 차선이라도, 차선도 모르겠다면 최악을 피할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한다. ... 그런데 한국 사회는 과연 최선과 차선, 차악과 최악 중 무슨 선택을 한 것일까? 이번 선거의 결과를 귀동냥으로 들으며 지금껏 한번도 투표할 권리를 포기한적이 없건만 내 마음이 답답해 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신자유주의, 의료보험민영화, FTA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가 살기 위한 것인가? 상위 1%를 위한 사회, 그것이 대한민국이 미국을 보며 배워야하는 것인가? 난 더 이상 미국인과 미국이라는 나라를 동일시 하지 않고자 한다. 미국은 이미 배울것이 없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그 안에 미국인들이 있다. 하루빨리 그들이 그들의 나라를 그들이 하찮게 여겼던 쿠바보다 나은 나라로 인정받는 그런 개혁을 단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승자독식사회에서 식코를 보다 (사람들 인생에 관여하기 싫어하는 Bitch ?)
http://jeliclelim.tistory.com/208
JelicleLim(2008.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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