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어키 여행중 만난 알리의 추억

2007. 9. 12. 16:44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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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다닐 때였다. 꽤나 오래된 것 같은데도 왠지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난 젊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쨌거나 젊은 시절,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던 탓에 돈은 없어도 어찌어찌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중에 터어키를 갔던 시간이 문득 떠 오른다.


다른 것은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다리를 직접 발로 걸어가며 건너보았고, 건너면서 낚시에 여념이 없는 분들과 인사도 나누었지만, 그건 그때 뿐이었다. 불루모스크(아래에 있는 사진이 그것 같다)와 소피아사원도 황혼이 지는 저녁에 멋진 장관을 보았지만, 지금의 기억으로는 그저 그때 그런 일이 있었다는 정도일뿐...


그런데 유난히 기억되는 일이 있다. 두명의 알리와의 만남이었다.

공원에 혼자 앉아 불루모스크를 구경하고 있었다. 일행이 있기는 했지만, 혼자 다니며 구경하기를 좋아하는 터라, 그 날은 일행과 저녁에 만나기로 하고 하루종일 혼자 다니던 중이었다. 이스탄불 거리를 혼자서 공원도 가고, 사람도 만나고, 인사도 하고, 점심도 먹으며 지냈다.

주변에 지나는 사람들, 공원에는 주섬 주섬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한 사람이 내게 인사를 청했다. 나이도 지긋한 분이었고, 나를 보고 웃으며 인사를 해 주었다. 물론 짧은 영어로....


우리는 거기서 한동안 짧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자신을 알리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알리는 나의 종교를 물었고, 자신의 무슬림이라고 소개했다. 우리는 터어키와 한국에 대해서, 그리고 공원과 거기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알리가 알려주는 공원과 거기 있는 사람들에 대해 듣고 있었다. 알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는 것을 보며 알려주었다. 그들은 한 남자와 부인들이라고, ... 알고는 있었지만 저렇게 무리지어 다니고 있는 것을 보며 약간의 문화충격을 느꼈다. 마치 한국에서처럼 이런 일부다처제에 속한 사람들은 집속에 숨어 바깥에는 나오지 않으리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그들은 공원에 나와 돌아다니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내가 가진 문화에 대한 오해요 선입관이었다.


이슬람문화권에서 일부다처제는 남자를 위해 시작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전후, 많은 미망인들이 생겼고, 그들은 남편의 도움이 없이는 거지가 되거나 거리에서 몸을 파는 여자가 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들에 대한 배려는 이슬람문화권에서 일부다처제도를 시작하게 했다고 한다. 다른 설도 있겠지만 우선은 그들의 문화에 대해 이해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했으니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더 이상 전쟁으로 인해 남녀간 성비율이 더 이상 차이나지 않게 된 지금 이 일부다처제는 그대로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보잘것 없는 남자들이 결혼마저 할 기회를 앗아가는 것이 되고 있다고 한다. 시작은 좋은 의도였으나 시간이 지나며 오히려 그 부작용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알리는 친구가 된 기념으로 좋은 것을 보여주겠다면 가방에 있는 책을 꺼냈다. 그 책은 우리가 흔히 도색잡지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친구가 되었기에 이런 것 까지 보여줄수 있다는 그의 마음은 고마왔고 또 한번 보고 싶은 마음도 동했지만, 터어키까지 가서 그 책을 보며 킬킬대기는 왠지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에 감사하지만 보지 않겠다고 정중히 거절을 했다. ㅜ.ㅜ No, thanks ... ㅜ.ㅜ


알리와 헤어지고 다시 여행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어떤 가게 옆을 지나가다 문득 그 가게에 특이한 간판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한국인 환영"

대체 이 집의 주인은 누구기에 한국인을 환영한다는 소리를 가게 앞에 써 붙여 놓았을까? 궁금해졌다. 주인을 만나고, 주인의 저녁을 함께 하자는 식사초대를 했다. 일행이 있기에, 함께 저녁을 먹을 사람들이 있기에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아들이지는 못했지만, 그 후에 와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겠노라 대답했다.


저녁시간, 그의 가게로 갔고, 거기서 그의 집으로 안내되어 갔다. 집에는 아내와 모든 가족들이 모여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6.25 전쟁때 한국에 왔었다. 자신이 싸웠던 그 나라의 사람들을 보면 형제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날 우리는 차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알리는 우리가 함께 저녁을 먹지 못한 것을 끝까지 아쉬워했다. 알리는 한국을 위해 싸웠던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우리는 그날 저녁 알리의 아쉬워하는 접대를 받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새벽, 우리는 다음 여행지를 향해 떠나려고 차에 올랐다. 그때 우리의 눈에 알리가 들어왔다. 알리는 이른 새벽, 우리가 갈 길에 먹을 음식을 손수 준비해 왔던 것이다. 일행 중 여자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런 친절을 먼 이국땅에서 만나보다니,...


그날, 그 음식을 먹으며 한국전에 참전했던, 그리고 한국인을 형제같이 여기며 고작해서 여행객에 불과한 우리에게 그같은 친절과 환대를 보여준 알리를 나는 잊지 못한다. 보스포러스의 장관이나, 불루모스크와 성소피아 사원이 아무리 아름답고 뛰어나더라도 나는 거기서 만난 두 알리와의 추억보다 더 귀한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나의 친구이고, 나 또한 그의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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