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구절] 합력하여 선을 이룸
2007. 9. 17. 17:52ㆍLife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And we know that in all things God works for the good of those who love him, who have been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Romans 8:28)
보통 우리는 [선]의 개념을 잘못 이해할 때가 많다. 특히 개인의 이익이 관계될 때 우리는 종종 내가 경제적인 이익을 얻는 것을 [선]이라고 착각할 때가 많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종종 등장하는 어구가, "하나님이 있으면 어떻게 이럴수가 있어?" 이다.
이 구절은 시간 되면 가끔 교회에 나오기도 하고, 가끔 교회에 나와서 목사 설교도 들어주고, 가끔 주머니에 있는 푼돈 적선하듯 내주면 장사가 잘 되게 해주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복권에 당첨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는게 아니란 말이다. 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가, 그 선을 위해 [합력]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그런자들의 입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불렀다고 스스로 소리높이는 것은 꼴불견이기도 하다.
이 문장의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여기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와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는 같은 사람임을 알수 있다. 하나님을 부르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부른 자다. 그런 부름을 받은 자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이 나를 불렀는지 어떻게 알수 있는가? 이 문장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부를 통해 하나님의 부름을 알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부른 자는 하나님을 사랑할수 있는 자다. 아니, 부름을 받은 자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척만 하는가? 나는 내 모든것을 잃더라도 하나님이 계시기때문에 만족할 수 있는가? 이정도되면 광신도 소리를 들을만 하다. 하지만, 그런 소리를 듣건 어쩌건 신앙이란 취미활동처럼 적당히 어찌해볼수 있는 소일거리는 아닌 것이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가말이다. 만약 그가 나더러 저 아프간에 가라고 하면 갈수 있느냔 말이다. 국적을 버리라면 국적을 버릴수 있느냔 말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만약 그럴수 없는 이유를 생각하고 있고, 그 이유가 타당한 것이라고 스스로 여긴다면 과연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다시 물어봐야한다. 왜냐하면 예수는 우리에게 십자가를 면제해 준적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누가복음 14:27)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올것을 명한다. 예수는 우리 대신 십자가를 졌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져야 할 십자가를 면제해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십자가는 따로 있다. 예수의 십자가만큼의 중대한 십자가는 아닐지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내가 져야할 십자가가 있다는 것이다. 고작해야 가족의 무관심, 친구들의 놀림정도를 십자가로 치부하지 말자. 그걸 언급하려고 예수가 십자가라는 어마어마한 말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십자가라는 단어를 썼다는 것은 이미 그 의미가 우리가 가볍게 생각하는 생활중에 있을 작은 어려움 정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하나님은 오버쟁이가 아니다, 그는 지극히 현실적이며 지극히 구체적이다.
우리가 이루어야 할 선은 무엇인가? 이 선의 개념은 어쩌면 세상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좋은 것의 개념을 상위한 개념이다. 적어도 그저 좋은 어떤 것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란말이다. 상식적에서 좋은 것 정도로 그치는 선이 아니라, 그 상식을 초월한 선을 의미한다. 상식에 반대되는 개념은 몰상식과 초상식으로 나눠보자. 몰상식은 상식이라는 기본 개념조차 미치지 못하는 어리석고도 유치한 것이라면 초상식은 상식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보다 큰 선을 향한 목숨을 건 항쟁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선은 모든것이 합력되어 이루어진다. 이 모든 것에는 포함되지 않는 것이 없다. 심지어 세상의 악 조차도 이 모든 것 안에는 포함되고 만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선은 세상의 변질된 것까지 사용해서 극상의 선을 만들고 마는 그런 선인 것이다. 그런 존재기에 그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다는 것은 지극히 영광스러운 것이고, 동시에 지극히 부담스러운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당신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그래서 지금 당신의 주변에 있는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마저도 하나님이 끝내는 사용하셔서 마침내 극상의 선을 이루실 것을 믿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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