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27. 16:11ㆍLife/Christian
2010.3. GBS 4 단상 -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집니다 (2010-03-D)
(막14:27-42) 27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28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29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30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1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32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37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39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41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2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27) VS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29)
이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릴 시간이 다가온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앞으로 올 일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릴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은 흩어질 것이다. 여전히 세속적 승리주의에 빠져있는 제자들에게 이러한 예수의 경고는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제자들은 아직도 누가 예수의 오른편에 앉을 것인지, 누가 왼편을 차지할 것인지를 두고 갈등하고 있었다.
제자들을 보며 목자 잃은 양같이 방황할 것을 본 예수는 그것을 그대로 전달하지만 제자들은 그것을 일종의 구술 시험 정도로 이해한 것 같다. 마치 취업을 위한 면접 자리에서 마음에 없는 충성을 다짐하듯이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은 모두 다 예수를 버릴지라도 자신은 그러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함께 죽을 지언정 부인하지 않겠다고 자신했다. 물론 다른 제자들도 질세라 베드로의 말을 따라한다. 누가 오른편을 차지할 것인지, 누가 왼편을 차지할 것인지가 달린 상황이니, 제자들의 마음은 이제 곧 예수가 잡히고 십자가에 처형당하리라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이라는 가정법을 사용한 면접관의 허황된 질문을 대하듯이 그렇게 예수의 말을 싱겁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무리 대단한 결심을 가지고, 아무리 아름답게 치장된 화려한 미사여구를 사용하더라도, 아무리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기더라도 인간은 결국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자신했던 베드로와 그의 말에 질세라 따라했던 다른 제자들은 정말로 그들의 앞에 다가오는 두려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 두려움은 그들이 장담하듯이 쉽게 넘길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보잘것 없는 두려움이 아니었다.
제자들이 깨닫지 못한 두려움, 곧 그들에게 다가올 두려움은 지금까지 모든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바로 그런 두려움이다. 지금까지 전부라고 여겼던 것, 그것을 다른 사람들도 하나같이 부러워했던 바로 그것을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모든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하듯이 입을 모아 말하는 바로 그런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어제까지 호산나 다윗을 자손이여를 남발하며, 그 앞에서 주여를 반복하며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환호하던 이들이 다음날 손에 돌을 들고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핏줄을 세우며 소리치는 그런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그 상황이 닥치면 모든 제자들은 그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목자 잃은 양처럼 제각각 흩어질 것이다. 예수는 그것을 보았고, 제자들은 그것을 허튼소리, 혹은 그저 말뿐인 시험정도로 가볍게 여겼던 것이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 말에 담긴 예수의 마음은 어떠할까? 차라리 몰랐다면 조금 더 버티기 쉽지 않았을까? 모든 것을 알기에, 죽더라도 결코 떠나지 않겠다고 자신하던 제자들이 모두 떠날 것을 알기에, 예수의 마음은 더욱 고독하고 외로왔다. 슬프고 고통스러웠다.
# 놀람과 슬픔, 인간적 감정을 소유하신 그리스도
종종 그리스도에 대해서 오해하는 것이 있다. 그가 하나님이기에 그는 모든 것을 아시며, 그래서 어떤 일도 슬퍼하지도, 노여워하지도, 놀라지도 않으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잠을 자지도, 먹지도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들이 지나치게 될 때 신비주의 이단에 빠지게 된다. 그리스도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인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말하는 영지주의같은 것이 대표적인 이단이다.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과 동등된 위를 가진 삼위 하나님 중의 한분이시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리스도는 인간의 몸을 입은 철저히 인간의 제한된 한계를 지니신 분이셨다. 노여움, 슬픔, 기쁨만이 아니라 피곤함과 놀라움, 그리고 두려움을 가지신 분이다.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그러기에 더 큰 아픔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드라마중에 히어로즈라는 것이 있다. 거기에 보면 특별한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들이 등장한다. 만약 그 중 누군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에게 하는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면, 그래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면, 과연 그는 이 세상에서 단 한명이라도 친구를 가질 수 있을까? 나를 보는 사람들은 마음이 어떤지 모르기에,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나에 대한 생각을 모르기에 우리는 그 앞에서 자신의 마음도 웃음으로 가장한 얼굴 뒤에 숨기고 웃으며 악수를 할수 있는 것이다. 예수의 제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좌편와 우편의 의자를 두고 싸우고 있었지만 보이는 곳에서는 누가 더 예수에게 충실한 개와 같은 충성을 보일 수 있는지를 두고 경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이 모든 것의 진실을 꿰뚫어보는 하나님이셨다. 그리고 예수는 곧 십자가에 달려서 최고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경험해야만 하는, 죽음을 맛보아야만 하는, 인간의 죄를 대신 자신의 몸에 지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야만 하는 그런 끔찍한 저주받은 인간이기도 하셨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그 고통의 순간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 동시에 이렇게 앞에서는 충성스런 모습을 보이면서 결국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 제자들의 내면의 마음을 안다는 것이 또한 예수를 고통스럽게 했을 것이다.
칼레의 시민들(로뎅)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 도시 칼레는 영국의 포위를 받고 항복하기에 이른다. 영국왕 에드워드3세는 항복하는 칼레에 6명의 시민대표의 처형을 명하고, 광장에서 그 소식을 들은 한 사람이 일어서서 자신이 그 한명이 되겠다고 말한다. 뒤이어 다섯명의 사람들이 일어나서 스스로 대표가 되어 교수형을 받겠다고 자원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쥬,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를 가리키는 이 말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더 높은 지식을 가졌기에, 더 많은 부를 가졌기에 사람들의 위에서 통치하고 명령하며 사람들의 섬김을 받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람들을 섬기고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것을 희생하는 것, 그것이 칼레 6명의 시민대표들의 모습이었다. 오백년 후 로뎅은 그들의 모습으로 조각을 만든다. 그 조각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고통과 두려움으로 일그러진 모습이었다. 조각을 주문한 이들은 충격을 받았다. 영웅적인 의연함을 담으리라 기대했지만 로뎅은 지극히 사실적인 얼굴을 거기에 새겨놓았다. 죽음의 두려움을 앞둔 사람의 일그러진 얼굴, 쭈그리고 앉아서 고통하는 모습, 그것은 두려움을 아는 사람이 두려움에 직면했을때 드러낼 수 밖에 없는 바로 그 모습이었다.
십자가의 고통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던 예수에게 두려움이 없었을까? 그는 지극히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이 졸며 자는 동안에도 그는 쉬지 못하고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될 때까지 그렇게 기도하고 있었다.
# 흩어지리라(27) & 일어나라, 함께 가자(42)
이제 예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마지막 십자가의 길을 가기 위해, 그는 기도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자들을 향해 담담한 소리로 말한다. 꾸짖지도, 나무라지도 않는다. 제자들의 믿음없음을, 제자들의 이중적인 모습에 대해서도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그저 예수는 제자들을 보며 이제 곧 흩어질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예수는 십자가에 달릴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제자들은 흩어질 것이다. 다른 사람들 모두 그래도 자신은 절대로 안그러겠다고 맹세한 베드로는 여러 사람이 보는 그 앞에서 스승 예수를 부인할 것이다. 예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수는 조금 더 멀리 보고 있었다. 곧 닥칠 십자가와 그 앞에서 흩어질 제자들의 모습이 끝인 것은 아니었다. 베드로는 다시 예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눈물을 흘릴 것이다. 다른 제자들도 정말로 그들의 목숨을 내어 놓으며 기꺼이 복음을 위해, 스승 예수를 위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한 그 소명의 삶을, 그 죽음을 향한 길을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부활 후 예수는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을 것이고, 베드로는 근심하며 답할 것이다. 베드로는 죽을 때까지 마음이 변하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것이다. 그것을 예수는 보고 있었다. 그러기에 지금 예수는 곧 흩어지고, 곧 자신을 모른다고 부인할 제자들을 보고 말한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라고 말이다.
'Life > Christian' 카테고리의 다른 글
ㅅ교회, ㅈ목사, 이거 대체 뭐하자는 건지... (2) | 2010.09.23 |
---|---|
주의 계명을 영원히 소유하는 즐거움 (0) | 2010.04.18 |
세 부류의 사람들(막 14:1-11) (0) | 2010.03.20 |
모든 계명 중에 첫째 (2010-03-B) (0) | 2010.03.13 |
뿌리째 말라 죽은 무화과나무 (0) | 2010.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