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문화? 트윗? 신뢰관계? #1원의행복_ , 차이 인정하기, 그에 대한 짧은 단상
2009. 10. 27. 14:16ㆍEye
사실 한국의 트윗문화는 오래되지 않았다. 트위터들이 모여서 나눔을 시작했던 첫 아나바다에 참석할까 생각했고 가려고 했지만 결국 급하게 결혼식에 가야하는 일정이 충돌해서 참석을 하지 못했다. 그때 과연 이 아나바다가 무엇을 하는 것인가를 두고 그곳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분에게 이런 질문을 드렸다.
기부한 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입니까? 그것을 집행할 사람들은 충분히 신뢰할 만한 사람들입니까?
그 두가지가 나에게는 중요했다. 기부를 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충분히 많다. 적어도 억지로 눈을 돌리지 않는이상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지고 있는 작은 정성, 이타심을 발휘해서 또 다른 이들을 돕고자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널린것도 이 사회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목사라는 이름으로 사기를 치거나, 가난한 이들을 돕겠다고 나서서 그 돈을 횡령하거나, 국세청이나 국정원의 이름으로 보이스피싱을 하는 많은 사기꾼이 있음을 안다. 트위터에서 시작된 작은 기부문화의 모습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이 또 다른 사기의 피해를 입어 많은 이들이 더 이상 기부라는 말에 진저리를 치기전에 스스로 자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도 또한 필요하다.
첫번 아나바다의 기부금의 활용처는 구체적으로 행사전에 공지되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 기부하는지도 모른채 그저 기부라는 행위 자체를 통해 스스로 위안받으려는 모습으로 점철되었다. 이것은 기부가 아니다. 자기만족이요, 자위일 뿐이다. 처음이었으니 그럴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지속되어서는 안된다. 적어도 그 다음번에는 그보다는 좀 더 정돈되고 질서가 잡힌 모양새를 갖춰야한다. 한번 되었으니 계속될거라고 믿는다면 그 믿음은 다음번에는 여지없이 깨어지는 모습을 보이게 될것이다. .... 이미 그런 형상이 드러나고 있다.
가끔 서울시내를 나가면 길거리에서 모금함을 든 노인들을 본다. 지하철에서 구걸하며 다니는 이들을 만난다. 자는척하지도 않는다. 당당하게 거기에 돈을 내지 않는다. 그렇게 걷혀진 돈이 정말 그들의 복지를 위해, 사회의 빈자들을 위한 위안이 될지 확신할 수 없다. 아니 거의 확신하는 바 그것과는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부를 전혀하지 않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오히려 매월 정기적으로 일정금액을 기부한다. 필요하면 더 하기도 한다. 전달하는 통로의 확실성과 그것을 전달받는 이들이 분명하고, 그 목적이 타당하다고 여겨지는 일들을 하는 기관들이 있다. 그들을 통해 나는 기꺼이 내가 가진 작은 부분을 전달한다.
1원의행복(트윗검색 #1원의행복_)이라는 운동을 누군가 하기 시작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누군지 모르니 나는 그 운동에 동참하지도 RT를 날리지도 않았다. 그저 또 다른 어떤 움직임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옆에서 관망하기만 한다. 나는 그다지 트위터세계에서 영향력이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나에게 동참을 요구하는 소리는 없다. 하거나 말거나 나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아도 별 상관이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있다.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 어떤 요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운동에 동참해야만 한다는,
어쩌면 처음 정중한 거절로 시작을 했을게다. 직접적이지 않게, 기분 상하지 않게 ...
하지만 어떤 이들은 정중한 거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이 선한일에 동참하지 않는 이를 달갑지않게 생각했을게다. 그래서 더 공격적인 표현들이 드러났을게다. 그러니 조금 더 분명하게 동참하지 않는 입장을 드러내야했고, 그런 와중에 되어지는 일을 분명히 알지 못하는 이들로 인해 드러나는 팔로잉숫자 많으면 다냐, 듣지도 않으면서 그런말 하면 되겠냐라는 제 3의 의견들이 드러나기도 했다.
트위터는 그 자체로 정화기능을 가지지는 못한다. 이것은 그저 글을 쓰는 또 하나의 툴일 뿐이다. 그 속에서 어떤 글을 쓰느냐, 어떤 생각을 하느냐는 전적으로 사람에게 달려있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많은 사람이 존재한다. 때로는 그들에게 내 생각을 잘 전달하고 싶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내 생각에 동감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어서는 안된다. 서로의 생각이 전달되고 때로는 서로가 절충안이 없는 평행선을 그을수도 있다. 그것때문에 상대에게 화를 내어서는 안된다. 내 주장을 강력히 말하는 것과 상대를 비하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종종 우리는 이 부분에서 실수한다. 상대를 바보로 만들면 내 말이 진리가 될거라고 착각하며 산다. 하지만 옳은것은 모두가 그르다고해도 옳은 것이요, 그른것은 모두가 옳다고 해도 그른것이다. 말의 논리를 따라가지 못하고 다른 것으로 상대를 비난하는 것만큼 토론 자체를 흐리는 것은 없다.
기부한 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입니까? 그것을 집행할 사람들은 충분히 신뢰할 만한 사람들입니까?
그 두가지가 나에게는 중요했다. 기부를 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충분히 많다. 적어도 억지로 눈을 돌리지 않는이상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지고 있는 작은 정성, 이타심을 발휘해서 또 다른 이들을 돕고자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널린것도 이 사회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목사라는 이름으로 사기를 치거나, 가난한 이들을 돕겠다고 나서서 그 돈을 횡령하거나, 국세청이나 국정원의 이름으로 보이스피싱을 하는 많은 사기꾼이 있음을 안다. 트위터에서 시작된 작은 기부문화의 모습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이 또 다른 사기의 피해를 입어 많은 이들이 더 이상 기부라는 말에 진저리를 치기전에 스스로 자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도 또한 필요하다.
첫번 아나바다의 기부금의 활용처는 구체적으로 행사전에 공지되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 기부하는지도 모른채 그저 기부라는 행위 자체를 통해 스스로 위안받으려는 모습으로 점철되었다. 이것은 기부가 아니다. 자기만족이요, 자위일 뿐이다. 처음이었으니 그럴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지속되어서는 안된다. 적어도 그 다음번에는 그보다는 좀 더 정돈되고 질서가 잡힌 모양새를 갖춰야한다. 한번 되었으니 계속될거라고 믿는다면 그 믿음은 다음번에는 여지없이 깨어지는 모습을 보이게 될것이다. .... 이미 그런 형상이 드러나고 있다.
가끔 서울시내를 나가면 길거리에서 모금함을 든 노인들을 본다. 지하철에서 구걸하며 다니는 이들을 만난다. 자는척하지도 않는다. 당당하게 거기에 돈을 내지 않는다. 그렇게 걷혀진 돈이 정말 그들의 복지를 위해, 사회의 빈자들을 위한 위안이 될지 확신할 수 없다. 아니 거의 확신하는 바 그것과는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부를 전혀하지 않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오히려 매월 정기적으로 일정금액을 기부한다. 필요하면 더 하기도 한다. 전달하는 통로의 확실성과 그것을 전달받는 이들이 분명하고, 그 목적이 타당하다고 여겨지는 일들을 하는 기관들이 있다. 그들을 통해 나는 기꺼이 내가 가진 작은 부분을 전달한다.
1원의행복(트윗검색 #1원의행복_)이라는 운동을 누군가 하기 시작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누군지 모르니 나는 그 운동에 동참하지도 RT를 날리지도 않았다. 그저 또 다른 어떤 움직임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옆에서 관망하기만 한다. 나는 그다지 트위터세계에서 영향력이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나에게 동참을 요구하는 소리는 없다. 하거나 말거나 나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아도 별 상관이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있다.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 어떤 요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운동에 동참해야만 한다는,
어쩌면 처음 정중한 거절로 시작을 했을게다. 직접적이지 않게, 기분 상하지 않게 ...
하지만 어떤 이들은 정중한 거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이 선한일에 동참하지 않는 이를 달갑지않게 생각했을게다. 그래서 더 공격적인 표현들이 드러났을게다. 그러니 조금 더 분명하게 동참하지 않는 입장을 드러내야했고, 그런 와중에 되어지는 일을 분명히 알지 못하는 이들로 인해 드러나는 팔로잉숫자 많으면 다냐, 듣지도 않으면서 그런말 하면 되겠냐라는 제 3의 의견들이 드러나기도 했다.
트위터는 그 자체로 정화기능을 가지지는 못한다. 이것은 그저 글을 쓰는 또 하나의 툴일 뿐이다. 그 속에서 어떤 글을 쓰느냐, 어떤 생각을 하느냐는 전적으로 사람에게 달려있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많은 사람이 존재한다. 때로는 그들에게 내 생각을 잘 전달하고 싶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내 생각에 동감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어서는 안된다. 서로의 생각이 전달되고 때로는 서로가 절충안이 없는 평행선을 그을수도 있다. 그것때문에 상대에게 화를 내어서는 안된다. 내 주장을 강력히 말하는 것과 상대를 비하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종종 우리는 이 부분에서 실수한다. 상대를 바보로 만들면 내 말이 진리가 될거라고 착각하며 산다. 하지만 옳은것은 모두가 그르다고해도 옳은 것이요, 그른것은 모두가 옳다고 해도 그른것이다. 말의 논리를 따라가지 못하고 다른 것으로 상대를 비난하는 것만큼 토론 자체를 흐리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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