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좋게 추운 밤이다
2010. 10. 26. 21:10ㆍLife
기분좋게 추운 밤이다.
두 다리로 걷는다는게 이렇게 힘든일이었는지 요즘 깨닫고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일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었음을 이제는 알겠다.
사고가 나고 7개월이 지났다. 이제는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서 멀지않은 거리는 걸어다닐 정도가 되었다. 찬 바람을 맞으며 오랜만에 기분좋은 추위를 느껴본다.
아내와 마트에 들렀다. 아내는 자주는 아니어도 종종 찾아온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혼자서 이사준비를 하느라 바쁘다. 가장이라고 아무것도 돕지못하는 내가 한심하다. 나는 그저 환자일뿐이다. 퇴원을 하더라도 무거운 짐 하나 제대로 나르지 못하는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다. 왼쪽 무릎은 삐걱거리고, 약간의 충격에도 버티지 못하는 유리무릎이 되어 버렸다. 아무짐도 들어주지 못하고 그저 옆에만 있었다. 아이들이 좋아한다며 임연수어(이면수)를 샀다.
아내와 커피를 마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아내는 내가 좋단다. 편하다고 한다. 친부모님께도 못할 이야기가 내게는 부담없이 말할 수 있어 좋다고 한다. 그렇게 많이 싸웠으면서도, 그렇게 많이 울었으면서도 여전히 내가 좋다는 아내의 말을 듣는다.
나는 여전히 고집장이다. 옳다고 생각한 것은 하늘이 두쪽이 나도 옳다. 내 고집은 왠만해서 꺽지못한다. 젊은 시절엔 그 고집 때문에 많이 부딛히기도했다. 나이가 들며 가급적 부딛히지 않고 피하는 방법을 찾았다. 내가 납득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별 큰 상관이 없다면 그 자리에서 조용히 있어준다. 하지만 내 속에 여전히 고집이 있다. 그 고집은 아내도 꺽지 못한다.
이런 고집장이지만 그래도 내가 좋다는 아내가 있고 나를 보고 항상 웃는 아이들이 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다리가 불편한, 그래서 시장바구니 하나 제대로 들지 못하는 다리병신이 된 남편을 보며 여전히 좋다며 웃는 아내 얼굴이 떠오른다. 나도 내 아내가 좋다. 기분 좋은 추위가 스친다. 우린 어지간한 팔불출인가보다. 나는 내 아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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