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커피를 파는 커피가게
2010. 12. 20. 17:28ㆍLife
지난 3월, 뜻밖의 교통사고를 만나 꽤 오랜 시간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했다. 마치 침대에 묶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다리를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한 달, 두 달 시간이 흘렀다. 다행히 내 무릎은 조금씩 회복되어갔다. 휠체어를 타고 한참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는 목발에 의지하며 걸어 다닐 정도가 되었다. 목발을 딛고 걸어 다닐 정도가 되니 이제 병원 밖 세상으로 다시 나가보고 싶었다. 거기서 하늘을 마음껏 보고 싶었다. 커피를 마시고 싶었고, 공원에 있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싶었다.
입원한지 8개월 만에 처음으로 커피를 마시러갔다. 병원에 설치된 자판기의 커피가 아닌 바리스타가 뽑아주는 신선한 원두의 향, 그리고 그 맛을 다시금 느껴보고 싶었다. 좋은 원두를 그라인더로 갈 때 기분 좋은 향이 내 후각을 마비시킨다. 그 향을 맡는 순간 더 이상 그곳은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게 된다. 그때 그곳은 다른 모든 잡생각과 인체의 모든 감각기관을 일시 정지시키는 특별한 매력을 발산하는 장소가 된다. 커피에 성이 있다면, 그리고 그 성이 여성이라면 난 당연히 팜므파탈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게다. 그만큼 커피는 내게 있어 거부할 수 없는 절대적인 유혹이기도 하다.
작고 예쁜 커피전문점이 있었다. 거기엔 작고 예쁜 바리스타도 있었다. 목발을 짚고, 병원 환자복을 입은 나를 맞이하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커피점을 이용하는 손님이라면 당연히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하고, 주문한 커피를 들고, 자리에 앉아야 한다. 하지만 한손에 목발을 짚고 있는 나를 보고 바리스타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아있으면 커피를 가져다주겠노라고 말을 했다. 그 커피점은 자주 이용하는 곳이 되었다. 갈 때마다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가져다주었고 간단한 인사를 나누곤 했다. 병원을 나와 한 블록을 걷고, 커피를 마신 후, 들고 갔던 책을 읽고 오곤 했다.
어느 날 선물이라며 커피와 함께 도너츠를 내어주었다. 주문한 적도 없는 도너츠를 받았다.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으며, 그 도너츠를 먹었다. 뜻밖의 선물이어서인지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도하지 못한 채 커피점을 나왔다.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다. 왠지 다리가 나은 것 같았다. 작은 호의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다음날 커피를 마시러갔다. 어, 사람이 바뀌었다. 다른 사람이 있다. 혹시 감기라도 든게 아닐까, 주변에 누가 아파서 다른 사람이 대신 나왔나,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 다음날, 다시 커피를 마시러갔다. 여전히 다른 사람이 있다. 물어봤다. 그만 두었다고 했다. 아마도 내게 준 그 도너츠들은 마지막 작별의 선물이었나 보다.
한동안 커피를 마실 때 그녀 생각이 났다. 내 기억속에서 그녀는 커피와 함께 항상 한 잔의 물을 내어주었다. 책을 읽는 동안 말하지 않아도 컵이 비어있지 않도록 물을 계속 따라주었다. 그 가게에서 물은 셀프였다. 유일하게 마시는 물을 리필받았던 것은 나 뿐이었다. 그녀에게 나라는 사람은 어떤 존재였을까? 사고로 다리를 다친 환자, 커피를 좋아하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멀대, 가끔 인사를 하고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했던 그런 좋은 아저씨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비록 마지막 선물은 받았지만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작별인사와 고마움의 표시를 여기서 해야겠다. 고마웠어요. 잘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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