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 24. 12:03ㆍ서평/[서평] 인문
보통 악에 대해서 굳이 왜 그것이 나쁜지를 억지로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은 그것이 악 혹은 잘못임을 안다. 반대로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그것이 악하지 않다고 계속적으로 주장을하기도 한다.
쿠피디타스(cupiditas), 보통 탐욕이라고 불려지는 죄다.
이제는 더 이상 죄라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욕심을 부리는 것, 자신의 마음안에 간직하고 있는 어떤 것을 죄라고는 더 이상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드러나지 않는 한, 그것은 누구에게도 침범되어서는 안될 일종의 권리요, 인권이라고까지 생각한다.
물론 여기서 사상검열을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과거 그러한 이상한 이중적 잣대를 통해 얼마나 이 땅에 아픔과 피흘림이 있었는지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 마음에 담긴 것을 처벌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는 오히려 쿠피디타스(cupiditas)의 죄를 전혀 이해하고 있지 않음을을 의미한다.
다만 전적으로 파괴적인 욕망의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그것을 하나의 권리요, 당연히 추구해야 할, 그리고 누구도 감히 거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해서는 안될 천부인권정도로 여기며 여기에 대해서 원죄니 뭐니 하는 소리를 헛소리로 치부한다면 그는 영원히 죄로 말미암아 얼룩진 세상에 대해서 변명하기 위해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다녀야만 하는 노력을 해야만 할 것이고, 그 결과는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만들어진 신에서 리차드 도킨슨은 모든 죄와 인류의 악의 근원으로 종교를 지적한다. 과연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엄청난 악들이 분명히 있어왔다. 지금도 한 구석에서는 이루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한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으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오히려 필립 진바르도의 루시퍼이펙트에서는 이 모든 것을 단순하게 종교의 탓으로 치부하려는 이의 마음속에 담겨진 자기 합리화의 과정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루시퍼는 신을 뛰어 넘으려 한다. 그는 자신에게 있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만족을 누리고자 한다. 밀턴의 실낙원에서 신에 대항하는 자 사탄은 "천국에서 복종하고 사느니 지옥에서 다스리는 것이 낫다"고 큰소리친다. 단테는 이 죄를 "늑대의 죄(sin of the wolf)"라고 말했으며 중세의 여러 사상가들은 탐욕이라고 불리는 쿠피디타스(cupiditas)를 인간의 가장 내면적이며서도 가장 치명적인 죄로 지적한다. 7 Deadly Sins, 이미 한국에서는 그 일곱가지가 뭔지 알고 있는 사람도 별로 없다. 그 이름은 기억하더라도 그 7가지 요소를 상기하기 위해서는 다시 보조 자료를 찾아야만 한다.
우리는 악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동시에 악에 매력을 느낀다. 사람들은 사악한 음모에 대한 신화를 만들어내고 결국에는 그 신화를 진짜로 믿어버린나머지 악에 대항하고자 무력을 결집하기에 이른다. 타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우리와 다르고 위험한 존재로 간주하여 거부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성적 방탕이나 비도덕적 행동에 대해 생각하면서 짜릿한 흥분을 느낀다1 . [루시퍼 이펙트, p.25]
이 쿠피디타스(cupiditas)의 문제 앞에서 자유로울수 있는 인간은 없다. 환경적으로 그러한 죄를 지을 가능성이 적은 환경에 있는 이들이 때로는 자만함으로 그렇지 못한 이들을 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스스로를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스탠포드 교도소는 그 자체로 하나의 죄의 시스템을 구축해 버렸다. 그 시스템은 근접하는 모두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영향력은 "권위"라는 이름의 힘이다. 모든 사람들은 그 힘에 노예가 되고 만다. 간수 역할을 맡은 이나, 죄수 역할을 맡은 이나 모두 그 힘에 사로잡힌 너무나도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가 되고 만다.
시스템의 악은 너무나 강력하면서도 너무나 치밀하여 실험을 주관했던 필립 짐바르도마저 자신이 그 악에 노출되어 전염되었음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다. 과연 이런 치명적인 악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책의 16장에서 악한 상황에 맞서는 10단계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 제 잘못입니다
- 각별히 유의하겠습니다
- 제 책임입니다
- 나에게는 나만의 정체성이 있다
- 정당한 권위에는 복종을 부당한 권위에는 반항을
- 집단에 속하길 원하되 나의 독립성을 소중하게 여긴다
- 틀에 대해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 균형적인 시간관을 갖는다
- 안보라는 환상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희생하지 않는다
- 나는 부당한 시스템에 반대할 수 있다
물론 이 10단계 프로그램은 책에서도 언급하듯 개인의 저항과 공동체의 탄력을 키우는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노력은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것이 바로 이러한 시스템의 악에 저항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악을 행사하는 이나, 악으로 인해 피해를 당하는 이나 모두 그것이 정당하다고 스스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악의 존재와 그것의 무서움을 지적하는 이 책은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다시 그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의 현상이 현실화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들이 나쁜 기질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환경과 시스템이 그들을 그렇게 끌고 가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악의 무서울 뿐만 아니라, 이제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뿐더라, 모두가 그것을 정당하다고 여길 정도가 되어 버렸다.
현실에 존재하는 악의 실체에 조금 더 근접한 책, 무척 유용한 책이지만 이 책 자체로는 악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나 희망을 품기는 어려운 책이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인간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 / 무엇이 선을 악으로 내모는가?
2장 | 실험의 시작
대낮의 몰래카메라 / 충돌이 시작되다 / 돌발상황 / 자원자 모집 / 첫 번째 체포 / 혐의는 주거침입죄 / 체포 완료
3장 | 일요일: 굴욕적 의식이 시작되다
교도소의 규칙 / 폭동의 징후 / 교도관 오리엔테이션
4장 | 월요일: 폭동 발생
반란 / 동요하는 수감자들 / 고통스러운 야간 점호
5장 | 화요일: 면회와 습격 위협
새로운 규칙 / 교도소의 안전 확보 / 방문자를 맞이하기 위한 연극 / 침입에 대비하다
6장 | 수요일: 통제불능 상태
신부님의 방문 / 두 번째 가석방 / 새로 온 수감자를 환영합니다! / 견디기 힘든 밤 / 병장, 새로운 정체성을 드러내다 / 소시지가 가져온 불행 / 더러운 담요 흥정
7장 | 가석방의 힘
첫 번째 가석방위원회 / 첫 번째 가석방 심리가 보여준 것 / 목요일의 가석방위원회
8장 | 목요일: 폭력사태와 성적 학대
폭력 사건이 발생하다 / 당신은 이들에게 끔찍한 짓을 하고 있어요! / 너는 수컷 낙타다. 암컷 위에 올라타라
9장 | 금요일: 모든 것이 끝나다
마지막 점호 / 변호사의 방문 / ‘실험’은 끝났습니다. 여러분은 자유입니다! / 시스템의 힘 / 모두 한 자리에 / 수감자 혹은 교도관이 된다는 것의 의미 / 6일 동안의 성격 변환
10장 |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이 남긴 것
실험에 대한 개요 / 데이터가 의미하는 것 /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의 의미 / 왜 상황이 중요한가? / 사회적 현실의 재구성 / SPE, 유명세를 타다 / SPE의 시대배경 / 왜 시스템이 가장 중요한가?
11장 |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의 가치
인간의 능력은 어떻게 오용되는가 / SPE에 대한 윤리적 고민 / 개입의 윤리 / 절대적 윤리 / 상대적 윤리 / 실험의 재현과 확장 / 작은 실험이 전설로 남기까지
12장 | 권위, 동조, 복종에 관한 다양한 연구
상황의 힘에 관한 연구 / 밀그램의 연구: 권위에 대한 맹종 / 나치 만들기 / 악의 평범성 / 권위에 굴복한 존스타운
13장 | 탈개인화, 비인간화, 행동하지 않는 악에 대한 연구
탈개인화: 익명성과 파괴성 / 비인간화와 도덕적 해이 / 행동하지 않는 악 / 상황과 시스템 / 아부그라이브 교도소로 떠나기 전에
14장 | 부활한 SPE: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학대 행위가 알려지기까지 /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 사건의 중심 인물, 칩 프레더릭 / 1A동에서 일어난 악몽 / 전리품 사진 / 재판에 회부된 프레더릭 하사 / 교도관에서 수감자로 / 이 장을 마치면서
15장 | 시스템을 재판정에 세우다
보고서에 나타난 시스템 결함 / 휴먼라이츠워치 보고서 / 도처에서 자행된 고문 / 딕 체니와 조지 부시의 책임을 묻다 / 평결의 시간 / 어둠을 밝혀줄 빛
16장 | ‘루시퍼 이펙트’ 벗어나기
원치 않는 영향력에 저항하기 / 상황을 넘어 영웅으로 / 비범한 영웅과 평범한 영웅 / 영웅적 행위가 의미하는 것
http://jeliclelim.tistory.com/157
JelicleLim(2008.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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