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기도 (2010-02-C)
2010. 2. 20. 17:45ㆍLife/Christian
믿음과 기도 (2010-02-C)
(막 9:19-29) 19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25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28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1. 믿음이 없는 세대(19) : 믿음은 무엇인가?
예수와 동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은 예수의 기적을 보았다. 그가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심지어 죽은자를 살리는 것을 보았다. 제자들은 누구보다도 더 가까이서 예수의 기적을 목격했다.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의 기적을 맨눈으로 보았던 현장의 증인들이다. 그런 그들의 앞에 한 사람이 자신의 자식을 데리고 왔다. 그 아들은 귀신들려 간질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제자들은 그 아이를 고치지 못한다. 아이와 그 아비는 예수의 앞에 와서 고쳐줄 것을 말한다. 예수는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을 향해 믿음이 없는 세대라는 가슴 아픈 경고를 한다. 그들이 한 아이를 고치지 못한 것은 믿음이 없어서였다. 이 믿음은 무엇일까?
2.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22,23) 모든 것이 가능하다.
아들의 끔찍하리만치 안타까운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예수의 앞에 엎드려 애원한다. 당신이 내 아들을 고칠 능력이 있다면, 제발 내 아들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그의 말을 듣고 예수는 이렇게 답한다. 너는 내가 너의 아들을 고칠 능력이 있다면 이라고 말했다.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헬라어 성경을 직역해 보았습니다. 나를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갑자기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그는 지금까지 예수에게 능력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내 아들을 고칠 능력이 있다면, 그렇다면 그에게 내 아들을 고쳐달라고 말해야지.
그는 갑자기 깨닫는다. 그는 얄팍한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다. 그는 간절하게 믿고 애원해야 할 때다. 서기관들이 그들의 지식을 내세워 예수와 변론하는 그 자리에서 그는 예수가 혹 사기꾼이 아닐까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품었을지 모른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와 분위기속에서 예수도 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사실을 별볼일없는 삼류 사기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을 품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그는 그 자리에서 예수를 보며 당신이 내 아들을 낫게 할 능력이 있다면이라고 예수의 능력에 대한 시험거리를 던진다.
이 시험은 예수앞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던져지는 질문이다. 예수의 기적은 그를 믿는 자들에게 임한다. 어떤 표적도 믿음이 없는 자의 눈에는 보잘것 없는 눈속임이요, 짜고 만들어 낸 마술쇼와도 같게 보여진다. 바리새인들은 죽은 자의 소식과 눈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자, 평생 앉은뱅이였다가 다시 걷게 된 자의 이야기를 들으나 그들은 여전히 믿음을 가지지 못한다. 반면 믿음을 가졌던 회당장과 그의 부인의 눈 앞에서 그들의 딸은 되살아난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이 모든 것 안에는 내가 가진 한계를 뛰어넘는 것들도 포함된다.
3. 다시 한번 믿음에 관해서...
믿음이란 단순히 내가 바라는 것, 내가 가지기를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믿음은 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 그것은 나의 경험의 한계를 뛰어넘고, 나의 지식의 한계를 뛰어넘고, 나의 시공간에 대한 이해를 뛰어넘는 어떤 것이다. 나의 경험과 나의 지식과 나의 판단으로 좋은 것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 다를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그 둘이 다를 때 기꺼이 나의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결정을 나의 결정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배워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믿음은 종종 두 가지 결말을 만들어낸다. 그 첫 번째는 극적인 반전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이고, 두 번째는 고통스런 아픔을 이겨낼 힘을 내면에 주심으로 인해 그 고통을 감내하고 한 개인과 공동체가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바울의 육체의 가시와 그가 곧 로마에서 순교할 것을 알면서도 로마로 가는 것을 통해 바울과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믿음의 큰 성장을 하게 된다.
4.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24)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의 정확한 지적앞에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즉각 고백한다. 그리고 자신이 믿음이 없는 존재인 것을 또한 고백한다. 덧붙여 그 믿음이 없는 것을 도와줄 것을 요청한다. 그의 고백은 정직한 고백이다. 이전까지의 재는 듯한 모습은 사라진다. 제자들이 자신의 아들을 고치지 못한 일에 대한 불평과 예수까지 비난하듯 보던 그 모습은 사라진다. 그는 인간의 가장 겸손한 모습으로 예수의 앞에 엎드린다. 그는 소리친다. 내가 믿나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믿음이 엉터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소리친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정직하게 주께 나가는 것은 중요한다. 때로 있지도 않은 믿음을 마치 있는 것처럼 자신을 속이고 기도하는 것, 예배하는 것, 눈물 흘리면 찬양하는 것은 잠시 자신의 마음을 속일수는 있다. 하지만 예수는 인간의 마음을 중심을 보신다. 그는 속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앞에 와서 제자들의 형편없음을 지적하는 아버지의 마음의 중심을 본다. 예수는 자신을 믿지 않지만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나와 있는 한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그는 나의 마음을 읽는 자이다.
억지로 믿음이 있는 것처럼 자신을 속이는 것은 무의미하다. 아니, 이것은 더 큰 악을 불러일으킨다. 더 큰 어두움을 가져온다. 믿음이 없는 죄인임을 고백했던 세리와 창기들은 예수의 말 앞에 회개하며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있어야 하는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믿음이 있다고 자부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결국 그들의 그 그림자자리로 회귀하고 만다.
내가 믿음이 없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게 믿음을 주소서, 나를 도와주소서. 이것은 믿음이 필요한 사람이 부르짖어야 할 가장 기초적이고 가장 근본적인 기도의 외침이다.
5. 우리는 어찌하여... (28)
쫓겨가는 귀신을 보며 제자들은 예수께 다가와 질문한다. 왜 우리가 했을때는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예수는 답한다. 너희에게 기도가 부족했다.
아들의 비참함을 본 아비는 예수의 질책앞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다시말해 큰 소리로 기도했다. 내 믿음이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보잘것 없습니다.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게 믿음을 주소서.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들의 믿음은 전적으로 주를 신뢰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지닌 힘을 사용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내게 힘이 있고, 그 힘이 귀신조차 쫓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것과 내게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은 전혀 다르다. 제자들은 그 힘을 믿었고, 그 힘이 발동되지 않자 곧 좌절하고 말았다. 제자들에게는 아이 아버지의 간절함이 없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책망을 받으면서도 더 큰 소리를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나아가서 그것조차, 믿음이 없는 것 조차 불쌍히 여겨달라고 모인 모든 사람들의 앞에서 큰 소리로 외친다. 간절하게, 그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아비는 아이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크게 기도한다. 그의 기도의 간절함은 그에게 믿음을 주었으며, 그의 아들의 생명을 살렸다.
6. 간절함을 품은 기도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때까지 고집스럽게 집착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 간절함은 믿음의 부족을 메꾸는 간절함이다. 나의 믿음의 연약함을 보충하는 간절함이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그런 간절함이다.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것은 반대로 내가 원치 않는 그런 결말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모든 일이 가능하기에 나는 그 자리에서 이것이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지 못하니 그 뜻을 깨닫게 해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내가 믿음이 부족하니 내 믿음을 채워달라고 외치는 것이다. 내 아들이 죽어가고 있으니 주의 능력으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다. 여기에 간절함이 빠질 수 없다.
이런 간절함을 품은 기도는 때로는 그 당시로는 원치 않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더 긴 시간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은 그의 간절함을 분명히 믿음의 성장으로 이어가신다.
(막 9:19-29) 19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25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28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1. 믿음이 없는 세대(19) : 믿음은 무엇인가?
예수와 동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은 예수의 기적을 보았다. 그가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심지어 죽은자를 살리는 것을 보았다. 제자들은 누구보다도 더 가까이서 예수의 기적을 목격했다.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의 기적을 맨눈으로 보았던 현장의 증인들이다. 그런 그들의 앞에 한 사람이 자신의 자식을 데리고 왔다. 그 아들은 귀신들려 간질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제자들은 그 아이를 고치지 못한다. 아이와 그 아비는 예수의 앞에 와서 고쳐줄 것을 말한다. 예수는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을 향해 믿음이 없는 세대라는 가슴 아픈 경고를 한다. 그들이 한 아이를 고치지 못한 것은 믿음이 없어서였다. 이 믿음은 무엇일까?
2.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22,23) 모든 것이 가능하다.
아들의 끔찍하리만치 안타까운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예수의 앞에 엎드려 애원한다. 당신이 내 아들을 고칠 능력이 있다면, 제발 내 아들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그의 말을 듣고 예수는 이렇게 답한다. 너는 내가 너의 아들을 고칠 능력이 있다면 이라고 말했다.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헬라어 성경을 직역해 보았습니다. 나를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갑자기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그는 지금까지 예수에게 능력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내 아들을 고칠 능력이 있다면, 그렇다면 그에게 내 아들을 고쳐달라고 말해야지.
그는 갑자기 깨닫는다. 그는 얄팍한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다. 그는 간절하게 믿고 애원해야 할 때다. 서기관들이 그들의 지식을 내세워 예수와 변론하는 그 자리에서 그는 예수가 혹 사기꾼이 아닐까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품었을지 모른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와 분위기속에서 예수도 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사실을 별볼일없는 삼류 사기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을 품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그는 그 자리에서 예수를 보며 당신이 내 아들을 낫게 할 능력이 있다면이라고 예수의 능력에 대한 시험거리를 던진다.
이 시험은 예수앞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던져지는 질문이다. 예수의 기적은 그를 믿는 자들에게 임한다. 어떤 표적도 믿음이 없는 자의 눈에는 보잘것 없는 눈속임이요, 짜고 만들어 낸 마술쇼와도 같게 보여진다. 바리새인들은 죽은 자의 소식과 눈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자, 평생 앉은뱅이였다가 다시 걷게 된 자의 이야기를 들으나 그들은 여전히 믿음을 가지지 못한다. 반면 믿음을 가졌던 회당장과 그의 부인의 눈 앞에서 그들의 딸은 되살아난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이 모든 것 안에는 내가 가진 한계를 뛰어넘는 것들도 포함된다.
3. 다시 한번 믿음에 관해서...
믿음이란 단순히 내가 바라는 것, 내가 가지기를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믿음은 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 그것은 나의 경험의 한계를 뛰어넘고, 나의 지식의 한계를 뛰어넘고, 나의 시공간에 대한 이해를 뛰어넘는 어떤 것이다. 나의 경험과 나의 지식과 나의 판단으로 좋은 것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 다를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그 둘이 다를 때 기꺼이 나의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결정을 나의 결정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배워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믿음은 종종 두 가지 결말을 만들어낸다. 그 첫 번째는 극적인 반전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이고, 두 번째는 고통스런 아픔을 이겨낼 힘을 내면에 주심으로 인해 그 고통을 감내하고 한 개인과 공동체가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바울의 육체의 가시와 그가 곧 로마에서 순교할 것을 알면서도 로마로 가는 것을 통해 바울과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믿음의 큰 성장을 하게 된다.
4.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24)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의 정확한 지적앞에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즉각 고백한다. 그리고 자신이 믿음이 없는 존재인 것을 또한 고백한다. 덧붙여 그 믿음이 없는 것을 도와줄 것을 요청한다. 그의 고백은 정직한 고백이다. 이전까지의 재는 듯한 모습은 사라진다. 제자들이 자신의 아들을 고치지 못한 일에 대한 불평과 예수까지 비난하듯 보던 그 모습은 사라진다. 그는 인간의 가장 겸손한 모습으로 예수의 앞에 엎드린다. 그는 소리친다. 내가 믿나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믿음이 엉터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소리친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정직하게 주께 나가는 것은 중요한다. 때로 있지도 않은 믿음을 마치 있는 것처럼 자신을 속이고 기도하는 것, 예배하는 것, 눈물 흘리면 찬양하는 것은 잠시 자신의 마음을 속일수는 있다. 하지만 예수는 인간의 마음을 중심을 보신다. 그는 속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앞에 와서 제자들의 형편없음을 지적하는 아버지의 마음의 중심을 본다. 예수는 자신을 믿지 않지만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나와 있는 한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 그는 나의 마음을 읽는 자이다.
억지로 믿음이 있는 것처럼 자신을 속이는 것은 무의미하다. 아니, 이것은 더 큰 악을 불러일으킨다. 더 큰 어두움을 가져온다. 믿음이 없는 죄인임을 고백했던 세리와 창기들은 예수의 말 앞에 회개하며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있어야 하는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믿음이 있다고 자부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결국 그들의 그 그림자자리로 회귀하고 만다.
내가 믿음이 없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게 믿음을 주소서, 나를 도와주소서. 이것은 믿음이 필요한 사람이 부르짖어야 할 가장 기초적이고 가장 근본적인 기도의 외침이다.
5. 우리는 어찌하여... (28)
쫓겨가는 귀신을 보며 제자들은 예수께 다가와 질문한다. 왜 우리가 했을때는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예수는 답한다. 너희에게 기도가 부족했다.
아들의 비참함을 본 아비는 예수의 질책앞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다시말해 큰 소리로 기도했다. 내 믿음이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보잘것 없습니다.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게 믿음을 주소서.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들의 믿음은 전적으로 주를 신뢰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지닌 힘을 사용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내게 힘이 있고, 그 힘이 귀신조차 쫓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것과 내게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은 전혀 다르다. 제자들은 그 힘을 믿었고, 그 힘이 발동되지 않자 곧 좌절하고 말았다. 제자들에게는 아이 아버지의 간절함이 없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책망을 받으면서도 더 큰 소리를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나아가서 그것조차, 믿음이 없는 것 조차 불쌍히 여겨달라고 모인 모든 사람들의 앞에서 큰 소리로 외친다. 간절하게, 그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아비는 아이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크게 기도한다. 그의 기도의 간절함은 그에게 믿음을 주었으며, 그의 아들의 생명을 살렸다.
6. 간절함을 품은 기도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때까지 고집스럽게 집착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 간절함은 믿음의 부족을 메꾸는 간절함이다. 나의 믿음의 연약함을 보충하는 간절함이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그런 간절함이다.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것은 반대로 내가 원치 않는 그런 결말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모든 일이 가능하기에 나는 그 자리에서 이것이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지 못하니 그 뜻을 깨닫게 해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내가 믿음이 부족하니 내 믿음을 채워달라고 외치는 것이다. 내 아들이 죽어가고 있으니 주의 능력으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다. 여기에 간절함이 빠질 수 없다.
이런 간절함을 품은 기도는 때로는 그 당시로는 원치 않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더 긴 시간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은 그의 간절함을 분명히 믿음의 성장으로 이어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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