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막6:21-29) 헤롯, 헤로디아의 딸, 요한의 제자들

2010. 2. 6. 11:00Life/Christian

(막6:21-29) 21.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22.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23.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24. 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25.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26.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27.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28.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29.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 선악의 판단기준으로 자신이 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헤롯은 자신이 한 말이 곧 자신의 올무가 된다. 그는 두가지 선택에 놓였다. 요한을 죽이고 자신의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던지 혹은 자신의 말이 잘못이었다고 인정하던지 말이다. 성경은 헤롯의 선택이 자신의 말과 논리에 갇혀 결국은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어리석음으로 끝났음을 보인다. 헤롯은 자신의 약속은 실천했을지 모르나 그것은 선도 아니었으며 그것은 지독하고 끔찍한 죄의 결과일 뿐이었다. 헤로디아의 딸이 잘못이 클까 아니면 헤롯의 잘못이 클까? 헤로디아는 가까이 해서는 안될 독을 품은 여인이다. 그러나 그녀를 가까이한 것도 헤롯이요, 요한의 목을 벨것을 최종적으로 명령한 것도 헤롯이다. 아무리 절대권력을 지닌 왕정시대의 왕이라도 그 자신이 선악의 판단의 근거가 될때 얼마나 처첨한 현실이 벌어지고 선과 악이 왜곡되는지를 본문은 그 단면을 보여준다.

# 나라의 절반과 세례요한의 머리
세례요한의 머리는 나라의 절반의 가치가 안되는 것이었을까? 나라의 절반까지도 주겠다는 헤롯의 말과 그 말에 따라 세례요한의 머리를 구한 요구사이에서 잠시 절망하게 된다. 의인의 머리의 가격은 얼마인가? 그녀는 나라의 절반에 해당되는 것까지 구할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구하는 대신 그 어미에게 종속된 모습을 보인다. 심히 중대한 가치판단의 자리에서 그녀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바보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어미에게 쪼르르 달려가 그 어미가 원하는 것을 묻는다. 효성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다. 그녀는 스스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판단하지 못하는 마마걸로 성장했다. 예쁘고 춤을 잘추는 최고의 아이돌같은 외모를 갖췄을지는 모르나 그 머리는 선악간의 일을 분별못하고 심지어 무엇이 더 이익이 되는지에 대한 가치판단마저 하지 못할 정도의 바보다. 어미의 요청이 어리석은 것이라면 당연히 그것을 포기하고 바른 것을 구할수 있어야 했지만 여전히 어미의 한 의인의 생명을 취하고자하는 사악한 복수심을 그대로 듣고 왕에게 전할 정도로 어리석은 여자였다.
헤롯의 생각은 어떠한가? 한 의인의 가치와 나라의 절반의 가치중에 세례 요한의 목숨의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 만일 헤롯이 정말로 세례요한을 뛰어난 존재요 버릴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면, 그래서 나라의 절반 이상의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면 무희의 춤에 대한 보답으로 그의 머리를 넘길수 없었다. 헤롯 역시 어리석은 선택을 한 불쌍한 세상의 통치지에 불과한 사람이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들 한다. 과연 그럴까? 헤롯은 그가 통치하는 나라의 절반과 세례요한을 달아보고 결정했다.

# 의인의 최후를 원하는 사람들, 그것을 거부하지 못하는 사회, 슬퍼하는 소수
오직 요한의 제자들만이 그의 죽음을 슬퍼한다. 그의 시체로 장사한다. 의인의 죽음을 바라는 이들이 있으며, 그들은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의인의 소리를 왜곡하려하고 심지어 죽음이라는 방법까지도 동원해서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한다. 그리고 사회는 그들의 방법을 거부하지 못한다. 그들은 입에 바른 소리를 내며 그들은 아름다운 춤으로 눈을 현혹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우리를 기쁨중에 보이지 않는 어두움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거기서 세상의 절반과 의인의 외침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한다. 많은 이들은 양심의 소리에 아파하면서도 세상의 절반을 선택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행복이라고 배워왔기때문이다. 헤로디아의 딸처럼 우리는 세상이라는 잘못된 어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헤롯처럼 무엇이 옳은지를 알지만 세상의 절반의 가치에 마음을 돌린다. 하지만 거기에 슬퍼하는 소수가 남아있다는 것이 아직 이 땅을 살아있게 한다. 남은 것은 슬퍼하는 소수다. 그 슬퍼할줄 아는 소수가 되는 것, 그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가 있어야 하는 위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