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중요한 것과 하나님께 중요한 것 (2010-01-D)
2010. 1. 23. 12:10ㆍLife/Christian
사람에게 중요한 것과 하나님께 중요한 것 (2010-01-D)
# 가치판단
어느 CEO들을 위한 공개세미나에서 이런 예화를 들었다. 여기 당신은 커다란 빌딩의 꼭대기에 서 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똑같은 크기의 건물이 있다. 두 건물 사이에는 공사장에서 쓰이는 H빔이 놓여있다. 빌딩은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고, 세찬 바람이 불고 있다. 이 상황에서 질문이 던져진다.
만약 이 건물 사이를 폭이 1미터가 될까 말까하는 H빔을 놓고 그곳으로 건너면 10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이 있다면 당신은 그 위험한 길을 건너가겠는가?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100만원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계속해서 질문자는 질문을 한다. 1000만원을 주겠다면? 아직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천만원에 목숨을 걸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1억을 주겠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몇몇의 사람들이 손을 든다. 그 다음 질문자는 이런 질문을 했다. 만약 건너편 빌딩에 흉악범이 칼을 들고 당신의 딸을 잡고있고, 그가 말하기를 이 빔을 건너온다면 딸을 살려주겠다고 한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건너가겠는가? 모든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여기에 하나의 문제를 추가해보자. 만약 거기 잡혀있는 사람이 당신의 딸이 아니라 생판본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 거기에 당신과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잡혀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 돼지 이천 마리 VS 광인 하나
내 딸이라면 내 목숨을 걸고라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상대가 달라진다면 생각이 달라진다. 이천 마리의 돼지는 마을 전체의 재산과도 같다. 마을 전체 사람들의 재산과 그 마을에서 추방된 한 사람의 영혼의 가치를 비교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대부분 답이 있다. 자본주의적 가치관의 지배를 강하게 받고 있는 요즘의 상황 속에서 아무것도 관계되지 않은 영혼의 소중함을 말하는 것은 고귀한 것이 되지만, 돈과 관련된 상황 속에서 보이지 않는 영혼을 운운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 된다. 돼지 이천 마리를 희생한 사람들은 예수가 자신들과 함께 있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예수가 떠나기를 원했고, 그렇게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한다.
# 허락한 것과 허락하지 않은 것
예수는 귀신의 요청을 허락하고 고침받은 사람의 요청을 허락하지 않았다. 귀신의 요청은 돼지 떼에게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었고, 고침받은 사람의 요청은 예수와 함께 떠나고자 하는 것이었다. 왜 예수는 귀신의 요청을 허락했을까? 예수의 권능이라면 얼마든지 귀신들에게 명령하여 그들이 왔던 곳, 바로 음부로 돌려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귀신들의 요청을 허락하고 그들 때문에 돼지 이천 마리가 희생되도록 했다. 이것은 마을의 입장에서는 크나 큰 손실이었다. 왜 예수는 귀신의 요청을 허락했을까?
예수는 자신을 따라오고자 하는 귀신들렸던 사람의 요청을 허락하지 않는다. 얼마든지 그는 간증을 하며 예수를 만나기 전과 후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수를 그를 그의 집으로 돌려보낸다. 왜 그의 요청을 허락하지 않고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을까?
허락한 것과 허락하지 않은 것 사이에서 인간의 가치와 예수의 가치의 차이가 드러난다. 비주얼한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귀신들린 자의 고침받은 사건을 드러내지 않았고, 돼지떼를 희생시키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것을 희생시키면서까지 한 영혼의 가치를 드러냈다.
# 인간에게 중요한 것과 하나님께 중요한 것, 그 사이의 갈등
종종 우리는 나에게 중요한 것을 하나님께도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내 기도는 하나님이 들어주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주장한다. 겸손을 가장한 사람의 마음만큼 이것이 더 크게 작용하는 사람은 없다. 돼지를 희생시키지 않고 귀신을 물리치는 것이 모두를 이기게 만드는 윈-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정한 가치는 무엇을 희생했는가에 의해 매겨진다. 한 영혼의 가치는 수백 마리의 돼지 떼, 마을 전체의 자본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왜냐하면 그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이 세상의 어떤 화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귀중품이기 때문이다. 경제와 자본의 논리가 아닌 성경의 논리에 따른 한 영혼의 가치는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것이다. 돈과 영혼, 모두를 가지게 하는 허무맹랑한 답 대신,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영혼의 가치를 드러낸 것이 바로 예수의 선택이었다. 나에게 중요했던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중요한 것을 나의 중요한 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그때 우리는 예수의 마음에 조금 더 근접한 선택을 하게 된다.
취업을 위해 학원을 다녀야하고, 학비와 학원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영어공부를 해야 하고, 학점을 따기 위해 계절학교를 다녀야 한다. 한 가지 아르바이트만으로 부족해서 두 개, 세 개까지 할 수 있을 때 많이 해 두어야 한다. 우리는 돼지를 한 마리씩 열심히 사 모으는 재미로 재테크를 충실히 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는 우리가 지금껏 모은 돼지떼를 몰사시킨다. 한 영혼이 그 모든 것보다 가치 있다고 가르친다. 인간의 가치와 예수의 가치는 다르다. 인간은 죽어버린 돼지의 시체를 보며 하늘을 원망한다. 하지만 예수는 그것이 합당한 희생이라고 말한다.
그 사이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자는 그리스도를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를 떠나가시게 하는 사람이 된다. 그 갈등을 해결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막5:1-20) 1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2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3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6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7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8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9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10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11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12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13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14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15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16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17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18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19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20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 가치판단
어느 CEO들을 위한 공개세미나에서 이런 예화를 들었다. 여기 당신은 커다란 빌딩의 꼭대기에 서 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똑같은 크기의 건물이 있다. 두 건물 사이에는 공사장에서 쓰이는 H빔이 놓여있다. 빌딩은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고, 세찬 바람이 불고 있다. 이 상황에서 질문이 던져진다.
만약 이 건물 사이를 폭이 1미터가 될까 말까하는 H빔을 놓고 그곳으로 건너면 10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이 있다면 당신은 그 위험한 길을 건너가겠는가?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100만원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계속해서 질문자는 질문을 한다. 1000만원을 주겠다면? 아직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천만원에 목숨을 걸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1억을 주겠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몇몇의 사람들이 손을 든다. 그 다음 질문자는 이런 질문을 했다. 만약 건너편 빌딩에 흉악범이 칼을 들고 당신의 딸을 잡고있고, 그가 말하기를 이 빔을 건너온다면 딸을 살려주겠다고 한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건너가겠는가? 모든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여기에 하나의 문제를 추가해보자. 만약 거기 잡혀있는 사람이 당신의 딸이 아니라 생판본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 거기에 당신과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잡혀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 돼지 이천 마리 VS 광인 하나
내 딸이라면 내 목숨을 걸고라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상대가 달라진다면 생각이 달라진다. 이천 마리의 돼지는 마을 전체의 재산과도 같다. 마을 전체 사람들의 재산과 그 마을에서 추방된 한 사람의 영혼의 가치를 비교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대부분 답이 있다. 자본주의적 가치관의 지배를 강하게 받고 있는 요즘의 상황 속에서 아무것도 관계되지 않은 영혼의 소중함을 말하는 것은 고귀한 것이 되지만, 돈과 관련된 상황 속에서 보이지 않는 영혼을 운운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 된다. 돼지 이천 마리를 희생한 사람들은 예수가 자신들과 함께 있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예수가 떠나기를 원했고, 그렇게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한다.
# 허락한 것과 허락하지 않은 것
예수는 귀신의 요청을 허락하고 고침받은 사람의 요청을 허락하지 않았다. 귀신의 요청은 돼지 떼에게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었고, 고침받은 사람의 요청은 예수와 함께 떠나고자 하는 것이었다. 왜 예수는 귀신의 요청을 허락했을까? 예수의 권능이라면 얼마든지 귀신들에게 명령하여 그들이 왔던 곳, 바로 음부로 돌려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귀신들의 요청을 허락하고 그들 때문에 돼지 이천 마리가 희생되도록 했다. 이것은 마을의 입장에서는 크나 큰 손실이었다. 왜 예수는 귀신의 요청을 허락했을까?
(막5: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예수는 자신을 따라오고자 하는 귀신들렸던 사람의 요청을 허락하지 않는다. 얼마든지 그는 간증을 하며 예수를 만나기 전과 후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수를 그를 그의 집으로 돌려보낸다. 왜 그의 요청을 허락하지 않고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을까?
(막5:19)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허락한 것과 허락하지 않은 것 사이에서 인간의 가치와 예수의 가치의 차이가 드러난다. 비주얼한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귀신들린 자의 고침받은 사건을 드러내지 않았고, 돼지떼를 희생시키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것을 희생시키면서까지 한 영혼의 가치를 드러냈다.
# 인간에게 중요한 것과 하나님께 중요한 것, 그 사이의 갈등
종종 우리는 나에게 중요한 것을 하나님께도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내 기도는 하나님이 들어주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주장한다. 겸손을 가장한 사람의 마음만큼 이것이 더 크게 작용하는 사람은 없다. 돼지를 희생시키지 않고 귀신을 물리치는 것이 모두를 이기게 만드는 윈-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정한 가치는 무엇을 희생했는가에 의해 매겨진다. 한 영혼의 가치는 수백 마리의 돼지 떼, 마을 전체의 자본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왜냐하면 그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이 세상의 어떤 화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귀중품이기 때문이다. 경제와 자본의 논리가 아닌 성경의 논리에 따른 한 영혼의 가치는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것이다. 돈과 영혼, 모두를 가지게 하는 허무맹랑한 답 대신,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영혼의 가치를 드러낸 것이 바로 예수의 선택이었다. 나에게 중요했던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중요한 것을 나의 중요한 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그때 우리는 예수의 마음에 조금 더 근접한 선택을 하게 된다.
취업을 위해 학원을 다녀야하고, 학비와 학원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영어공부를 해야 하고, 학점을 따기 위해 계절학교를 다녀야 한다. 한 가지 아르바이트만으로 부족해서 두 개, 세 개까지 할 수 있을 때 많이 해 두어야 한다. 우리는 돼지를 한 마리씩 열심히 사 모으는 재미로 재테크를 충실히 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는 우리가 지금껏 모은 돼지떼를 몰사시킨다. 한 영혼이 그 모든 것보다 가치 있다고 가르친다. 인간의 가치와 예수의 가치는 다르다. 인간은 죽어버린 돼지의 시체를 보며 하늘을 원망한다. 하지만 예수는 그것이 합당한 희생이라고 말한다.
그 사이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자는 그리스도를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를 떠나가시게 하는 사람이 된다. 그 갈등을 해결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Life > Christian' 카테고리의 다른 글
QT (막6:21-29) 헤롯, 헤로디아의 딸, 요한의 제자들 (0) | 2010.02.06 |
---|---|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2010-01-E) (0) | 2010.01.30 |
주의 길을 준비하라 (2010-01-C) (0) | 2010.01.16 |
쉬지 않고 일하시는 메시아 (2010-01-B) (1) | 2010.01.16 |
주의 길을 준비하라 (2010-01-A) (0) | 2010.01.16 |